강물이 전해주는 순정한 시어
2025년 12월 29일(월) 18:45
홍관희 시인 네 번째 시집 ‘그림자 속에 숨겨 두었다’ 펴내
홍관희시인. <문학들 제공>
14세 까까머리 소년은 중학교 진학을 미루고 어머니가 끄는 연탄 수레를 밀며 학비를 마련했다. 그에게는 남모를 가족사가 있었다. 연탄을 나르고 수레를 밀며 소년공은 어느 날 시인이 됐다.

시보다 시적인 삶이 있기 마련이다. 어떤 시인들은 시보다 더 시적인 삶을 산다. 지나온 시간이, 현재가, 아니 미래의 어느 순간이 그런 시적인 삶이 될 수 있다.

광주 송정리 출신 홍관희 시인의 삶은 ‘한 편의 시’다. 어려웠던 청소년기를 지나 이후 30년간 KT에 다녔다. 그리고 지금은 남평 드들강 징검다리 위에서 ‘시어’(詩語)를 낚으며 유유자적의 일상을 보내고 있다. 북카페 ‘강물 위에 쓴 시’를 운영하며 지역문화운동을 펼쳐오고 있다.

그에게 시는 흘러가는 강물과도 같은 것인지 모른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감성은 깊으면서도 잔잔하게 출렁거렸을 것이다.

홍 시인이 네 번째 시집 ‘그림자 속에 숨겨 두었다’(문학들)을 발간해 눈길을 끈다.

지난 82년 ‘한국시학’을 통해 창작활동을 시작한 그는 그동안 ‘그대 가슴 부르고 싶다’, ‘홀로 무엇을 하리’ 등 세 권의 시집을 펴낸 바 있다.

그의 시는 감성과 심미안이 깃든 잠언이나 금언처럼 다가온다. 물 흐르듯 흘러가지만 자꾸 뒤를 돌아보게 만든다. 막연히 흘려보낼 수 없어, 독자들은 독자들대로 그의 시어(詩語)를 낚게 된다.

“키 작은 내가/ 곁에 있는 키가 큰 너희를/ 날마다/ 내 그림자 감옥에 가두지 않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키가 작아서 다행이다”(‘키 작은 나무’)

“강을 건너기 전에는/ 강은 한 번만 건너는 것인 줄 알았다// 너를 닮은 꽃은 언제나/ 강 너머에 있었다”(‘너를 닮은 꽃’)

화자는 가급적 노래하는 대상보다 낮은 곳에 자리한다. 멀찍이 떨어져서 그저 바라본다. 그렇다고 대상을 어줍지 않게 포용한다는 말로 품지도 않는다. 낮게, 숨죽인 채, 타자를 향해 건네는 위로는 강물이 전해주는 순정한 시어에 다름 아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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