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형 자율주행 승부수는 ‘수요 맞춤형 차’와 ‘피지컬 AI’
2025년 12월 04일(목) 19:15
획일화된 승용차 아닌 고객 니즈에 맞춘 특수 목적 차량 수요 급증
제조업 체질 개선…하청기업들 AI 기술 탑재한 ‘솔루션 기업’으로

광주시청 전경.

광주가 그리는 미래차 산업 지도는 단순히 ‘자동차를 더 많이 만드는 것’을 넘어선다.

과거의 자동차 산업이 소품종 대량생산의 수직적 구조였다면, 광주가 지향하는 미래는‘다품종 소량생산(HMLV)’과 ‘피지컬 AI(Physical AI)’가 결합된 유연하고 지능적인 생태계다.

이번 마스터플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전략적 변화는 생산 방식의 혁신이다.

광주시는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대량생산에서 고객 맞춤형인 HMLV(High-Mix Low-Volume)로 이동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는 목적 기반 모빌리티(PBV) 시장의 폭발적 성장과 궤를 같이한다.

완전 자율주행 시대가 도래하면 운전석이 사라지고 차량 내부는 이동형 사무실, 병원, 물류 창고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된다는 것이다. 즉, 획일화된 승용차가 아니라 고객의 니즈에 맞춘 특수 목적 차량(PBV)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는 판단이다.

이에 위탁생산 체제를 갖춘 GGM을 기반으로, 광주는 팹리스(Fabless, 설계 전문) 모빌리티 제조 모델을 구상하고 있다.

기업이 아이디어와 설계를 가져오면 광주 지역 기업들이 신속하게 부품을 조달하고 제작해주는 ‘모빌리티 파운드리’ 모델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차세대 팹리스(Fabless) 자율주행 모빌리티 제조 기반 구축’ 사업을 통해 금형, 성형 등 지역 뿌리 산업의 기술력을 고도화하고, 라인을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는 유연 생산 시스템을 도입하여 글로벌 틈새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대기업 의존도를 낮추고 지역 중소기업들의 독자적인 생존력을 키우는 핵심 열쇠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다.

‘AI 중심도시’를 표방하는 광주의 정체성은 미래차 산업에서도 핵심 무기가 된다.

광주시의 마스터플랜은 ‘피지컬 AI 기반 제조혁신 SDF(Software Defined Factory) 실증지원’을 핵심 기술 과제로 제시했다. 총사업비 850억 원 규모로 기획된 이 사업은 광주 제조업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꿀 잠재력을 지녔다.

피지컬 AI는 모니터 속의 AI가 아니라, 현실 세계의 로봇과 자동차를 직접 제어하고 상호작용하는 AI를 말한다.

광주 국가AI데이터센터의 막대한 컴퓨팅 파워를 활용해 자율주행 데이터를 학습시키고, 이를 지역 부품 기업의 공정에 적용한다.

예를 들어, AI가 실시간으로 불량을 검출하고 생산 라인을 최적화하는 스마트 팩토리를 구축해, 단순 하청 제조에 머물렀던 지역 기업들을 AI 기술을 탑재한 ‘솔루션 기업’으로 체질 개선 시키는 것이다.

이는 자율주행차 자체가 도로 위를 달리는 AI 로봇이라는 점과 일맥상통하며, 광주만의 차별화된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자동차 산업은 완성차 업체가 정점에 있고 부품사가 종속되는 수직 계열화 구조였다. 그러나 기술 융합이 필수적인 자율주행 시대에는 이러한 구조가 혁신의 장애물이 된다. 광주시의 마스터플랜은 ‘개방형 혁신 생태계’를 해법으로 제시한다.

지역 앵커기업(LG이노텍, 현대모비스, 한국알프스 등)이 기술 개발의 방향성과 스펙을 제시하면, 지역 중소기업이 이에 맞춰 부품을 개발하고, 공공연구기관(한국자동차연구원, 한국광기술원 등)이 이를 실증·인증해주는 ‘삼각 협력’ 체계다.

앵커기업이 도메인별 역할을 맡고, 중소기업·연구기관과의 공동 연구(R&D) 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현대모비스가 자율주행 제어 기술을, LG이노텍이 인지 센서 기술을 이끌면, 지역 내 중소기업들이 관련 부품을 공급하는 식이다.

공동연구와 성능 기반 구매 등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마스터플랜의 분석이다.

이는 지역 기업들이 단순 납품을 넘어 기술 파트너로서의 위상을 확보하게 해 줄 것이라는 점에서다.

장밋빛 비전에도 불구하고 넘어야 할 산은 높다. 현장 기업들이 호소하는 가장 큰 애로사항은 자금 부족과 더불어 ‘전문 인력의 부재’다. 수도권으로의 인재 유출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고도화된 SW 인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마스터플랜은 2035년까지의 단계별 기술 로드맵(TRM)을 제시했다.

단기(2026~2028)에는 고해상도 카메라와 4D 이미징 레이더 등 단일 센서 기술을 확보하고, 중기(2029~2032)에는 센서 퓨전과 데이터 통합 분석 알고리즘 등 지능형 소프트웨어를 고도화한다. 장기(2033~2035)에는 센서, 정밀지도, 디지털 트윈이 결합된 협동 인지 기술과 완전 전자화 섀시 플랫폼을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총괄하기 위해 가칭 ‘국립 인공지능 모빌리티 진흥원’ 설립이 필요하다는 것이 광주시의 설명이다.

이는 단순한 기관 유치가 아니라, 흩어진 R&D 역량을 결집하고 국가 차원의 예산과 인력을 끌어올 수 있는 ‘파이프라인’을 만드는 작업이라는 점에서다.

진흥원이 설립돼야만 광주가 단순한 생산 기지를 넘어 대한민국 미래차 산업의 R&D 헤드쿼터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 광주시의 판단이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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