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 수도 질 수도 없었던…‘광주고보 야구사건’ 만화로 부활
2025년 11월 13일(목) 19:35 가가
송재영 작가, 1924년 ‘광주고보 vs 일본야구단’ 다룬 ‘볼셋!국용’ 출간
선수 연행 반발 동맹 휴학, ‘광주학생독립운동’ 촉발…크라우드펀딩 시작
선수 연행 반발 동맹 휴학, ‘광주학생독립운동’ 촉발…크라우드펀딩 시작
![]() ![]() |
| ‘볼셋! 국용’의 한 장면. |
1924년 일제강점기, 광주고등보통학교(광주고보·현 광주일고)와 일본인 야구단의 승부가 펼쳐졌다. 일장기와 태극기가 운동장에 나란히 걸렸다.
당시 경기에서 승리의 순간은 소요로 번졌다. 일본팀 단장 안도 스스무가 경기 운영에 항의하며 폭력을 행사했고, 400여 명의 학생과 관중이 뒤엉키며 아수라장이 됐다. 경찰은 광주고보 선수 9명을 모두 연행했다.
작품 속 줄거리는 이렇다. 왕년에 야구천재였지만 지금은 평범한 백수 아저씨가 된 ‘한국용’. 시한부 판정을 받은 어느 날 그의 머리 위로 붉은 야구공이 떨어지고, 정체불명의 혼령 ‘홍구신’과 함께 100년 전 조선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곳에서 한국용이 마주한 것은 일본팀과의 운명의 경기를 앞둔 광주고보 야구부 학생들이다. 일본과의 대결에서 질 수는 없지만 이기면 어떤 보복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 한국용과 홍구신은 학생들을 돕기 위해 야구를 가르치며 함께 ‘진정한 의미의 승리’를 찾기 시작한다.
“상관없어 보이는 과거 누군가의 옳은 선택이, 지금 내 삶을 바꿀 수 있을까?” 송 작가는 이 같은 질문이 단초가 됐다고 말한다.
그는 2021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 단죄비 투어’에 참여했다가 광주제일고 졸업생 어르신에게서 ‘광주고보 야구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단순한 역사적 일화가 아니라 “현재를 바꾸는 과거의 선택”이라는 메시지로 이 사건을 풀어보고 싶었다.
이후 202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창작 아카데미의 지원을 받아 단편소설 ‘붉은 공’을 완성했고, 이듬해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의 기획창작스튜디오 지원을 받아 만화로 확장했다.
작품에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지도자 중 한 명인 장재성 선생의 사연도 깊이 녹아 있다. ‘볼셋! 국용’ 속 잘생기고 총명한 야구부 주장 ‘한해성’은 장재성을 모티브로 했다. 광주고보 재학 시절 장 선생은 성진회·독서회 등 항일조직을 조직하며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일제로부터 징역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해방 후 분단 반대 운동을 펼친다는 이유로 다시 수형 생활을 했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 재판 없이 사형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송 작가는 “장재성 선생의 가족들이 연좌제로 오랫동안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옳은 일을 한 사람들이 잠시 실패한 것처럼 보여도 결국 더 나은 현재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서울 출신의 송 작가는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 2012년 광주로 내려온 뒤 지역 이야기를 발굴하는 작업에 빠져들었다. 100년 된 수동 타자기로 시민들의 기억을 받아 적는 ‘유랑기억 보관소 프로젝트’, 광주시립미술관 5·18 40주년 기획전 ‘별이 된 사람들’ 영상 기획, 너릿재 학살 생존자의 삶을 좇은 소설 ‘소년에서 먼빛까지’ 등이 있다.
그는 “타지에서 온 작가의 눈으로 보면 광주는 이야기들이 가득한 도시였다”며 “이번 작품이 언젠가 영화로 이어져 더 많은 이들에게 ‘광주고보 야구사건’을 알릴 수 있었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