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자가에 지방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박진표 경제부장
2025년 11월 12일(수) 00:20
전 세계 자산시장이 유례없는 상승 랠리를 이어가고 있다. 코스피는 ‘10만 삼성전자’에 힘입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비트코인은 한때 1억7000만원을 돌파했다. 금값과 뉴욕 증시, 글로벌 주식시장도 들썩이긴 마찬가지다.

TV를 켜도 신문을 펼쳐도 SNS를 클릭해도 온통 돈이 돈을 버는 얘기 뿐이다.

그런데 이쯤에서 ‘광주 자가(自家)에 지방기업 다니는 김부장’은 배알이 뒤틀려 온다. 그렇다고 옛 속담인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처럼 다른 사람들의 자산 폭등에 질투가 나 아픈 배는 아니다.

수도권 중심으로 부동산과 금융자산이 폭등하는 동안 지방에 사는 자신만 소외되고 있다는 절망감이 복통의 주원인이다.



부의 수도권 쏠림, 광주의 절망

사회심리학과 행동경제학에선 이런 현상을 ‘부의 상대성 스트레스(Wealth-Relative Stress)’라고 부른다. 절대적 소득보다 타인과의 비교에서 느끼는 박탈감이 인간의 행복과 불안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개념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김부장처럼 광주에 살면서 아파트 한 채와 안정된 직장만 있으면 별다른 노후걱정을 하지 않았다. 서울 사는 사람을 부러움의 대상이 아닌 교통난과 높은 물가로 고생하는 불행한 이들로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충장로·금남로 등 주요 상권엔 빈 점포가 급증하고 끝 없이 오를 것 같던 신규 아파트는 미분양이 속출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 9월 광주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전년 대비 -1.85% 하락했다. 같은 기간 전국은 0.09% 상승했다. 광주의 상업용 오피스 공실률은 19.6%로 전국 평균(8.6%)의 두 배다. 특히 충장로·금남로 중심상권의 공실률은 40%에 이르고 첨단·운암 등 외곽 상가도 그야말로 텅텅 비어 있다.

전남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다. 9월 기준 전남 주요 도시의 미분양 주택 수는 7200세대에 달했다.

반면 수도권 부동산 열기는 식지 않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었지만 강남을 중심으로 고가 아파트는 여전히 급등하고 있다.

정부가 집값을 잡는다며 2030년까지 수도권에 135만호, 연평균 27만호의 신규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오히려 지역민을 허탈하게 한다. 수도권의 과열을 잡겠다는 명분 아래 시행되는 각종 부동산 규제와 금융정책이 오히려 지방의 거래절벽을 심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정부의 수도권 135만호 신축 발표 후 주요 건설사들은 수익성이 낮은 지방 신축 사업을 포기하고 정부 지원이 집중된 수도권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대표 사례가 최근 포스코 건설의 전방·일신방직 4300여 세대 아파트 신축 사업 포기다.

지역 건설업계에선 2029년 이후 광주에는 아파트 신축 물량이 아예 없다며 이미 설계, 골조, 자재업체 등 지역 건설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국가균형발전은 꿈인가

지역민이 느끼는 정서도 단순한 ‘박탈감’을 넘어 ‘분노’로 번지고 있다.

2025 광주시민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경제적 이유로 불안·우울을 느꼈다’는 응답은 63%, ‘주변 부를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는 응답은 48%에 달했다. 소비심리도 급속히 위축되고 있다. 신용카드 사용액은 줄고 외식·쇼핑은 감소세다. 소득은 제자리인데 자산은 줄어드니 소비를 줄이고, 상권이 붕괴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지금 광주의 경제 상황은 단순한 경기 침체가 아닌 정책 불균형이 낳은 구조적 불평등이라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광주 등 비수도권 지역에 지금 당장 필요한 정부 정책은 ‘서울을 식히는 정책’이 아니라 ‘지방을 살리는 정책’이다. 정부는 지역민이 자산형성의 사다리를 오를 수 있도록 지역특화 금융상품, 지방기업 투자 촉진, 상가·오피스 재생 프로젝트 등 모든 정책 지원을 총동원해야 한다. 지방을 계속 소외한다면 지역간 불균형은 심화하고 국가의 미래도 암울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지역 산업구조의 혁신 작업도 서둘러야 한다. 광주는 현재 인공지능, 미래차, 그린에너지 등 신산업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지만 정부의 정책 외면 탓에 아직 지역민이 체감할 만한 효과는 미미하다.

이제 국가균형발전은 선택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린 생존의 과제다. 이재명 정부가 지역의 절박함을 외면하지 않고 광주·전남의 경제와 주민들의 삶을 되살리는 진정한 ‘국가 균형의 시대’를 열어주길 기대해 본다.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