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문화공간, 도시의 미래가 되다] 개관 10년만에 1억명 돌파…글로벌 명소 이끈 ‘콘텐츠의 힘’
2025년 08월 24일(일) 19:50
(4) 서울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도심 속 불시착 UFO 연상시키는 건축물
이라크 세계적 건축가 故 자하 하디드 설계
곡선 등 이음새 없는 외관, 한국 지형 연상
색깔있는 전시·프로그램 전세계 명성
연말 ‘서울라이트’, 관람객 동원 일등공신
동대문역사공원 일대도 ‘축제의 장’으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계단에 설치된 하트 조형물.

서울 지하철 동대문 역사공원역에 내려 1번 출구로 나오자 영화의 세트장을 방불케 하는 풍경이 펼쳐졌다. 마치 공상과학(SF)영화의 거대한 우주선으로 들어온 듯 했다. 바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다. 이라크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1950~2016)가 옛 동대문 운동장 터에 들어서는 건축물의 역사성을 살리기 위해 ‘환유의 풍경’이라는 주제로 설계한 곳이다. 그래서인지 곡선과 곡면, 사면 등 이음새 없이 이어진 DDP 외관은 언덕이 많은 우리나라의 지형을 연상시킨다.

인상적인 건 드넓은 광장에 설치된 형형색색의 파라솔과 사람들이었다. 취재차 방문했던 날, 한낮의 온도가 36도를 웃도는 폭염에도 불구하고 파라솔 아래에서 더위를 피하는 이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특히 휴가시즌을 맞아 한국을 찾은 듯한 외국 관광객들은 ‘범상치 않은’ 건축물을 흥미로운 시선으로 둘러봤다. 압도적인 스케일과 건물 외관을 둘러싼 4만5000여 장의 알루미늄 패널은 새삼 건축가의 명성을 느끼게 했다. 지난 2014년 개관과 동시에 논란의 중심에 섰던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변화다.

MZ세대 포토존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플라워 오브제.
그도 그럴것이 2만6000평(8만 6574㎡) 부지에 지하 3층 지상 4층(최고 높이 29m) 규모로 건립된 건축물이 도심 주변과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5년 동안 4800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건축비를 들였지만 국적 불명의 난해한 UFO를 떠올리게 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DDP는 초기 랜드마크 논란을 딛고 개관 10년 만에 누적 방문객 1억 명(2024년 6월 기준)을 돌파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부상했다. 개관 첫해인 2014년 688만 명이 찾은 데 이어 지난해에는 1729만 명이 방문했다.

올 여름 51만 명의 방문객을 불러 모은 ‘서울 라이트 DDP 여름’.
올해로 개관 11주년을 맞은 DDP가 세계 유일의 디자인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잡은 데에는 독창적인 콘텐츠가 있다. 디자인, 창조산업, 전시, 공연, 축제 등이 어우러진 공간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는 DDP의 시설 가동률에서 잘 드러난다. 운영을 맡고 있는 서울시 산하 디자인재단은 평균 79.9%(2024년 기준)이라는 높은 가동률을 자랑하고 있다. 강남 코엑스 75%, 일산 킨텍스 49.4%, 부산 벡스코 64%, 대구 엑스코 52%의 가동률을 훌쩍 뛰어 넘는 실적이다. 또한 지난 10년간 1000건 이상의 전시가 개최됐는 가 하면 오는 2027년까지 대관 일정이 예약돼 있는 등 사실상 풀가동 수준이다. 자체 수입은 지난해 153억 원으로 평균 98%의 재정자립도에 이어 올해는 100%를 넘어섰다.

상공에서 내려다 본 DDP 전경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 명품브랜드들의 러브콜도 이어지고 있다. 샤넬 크루즈 컬렉션, ‘Esprit Dior-디올 정신전’, 알렉산드로 멘디니 회고전, 장 폴 고티에전 등 세계적인 브랜드와 아티스트들이 DDP를 찾고 있는 것이다. 유명 아티스트들의 전시는 관람객들의 미적 안목을 끌어 올리는 교육의 장 역할을 톡톡히 한다. DDP 이전에는 경험하기 힘든 퀄리티 높은 콘텐츠와 전시연출은 공간에 대한 이해와 디자인의 매력을 이끌어 내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DDP의 공간 특성에 맞는 ‘색깔있는’ 전시와 프로그램은 누적 방문객 1억 명을 불러 모은 일등공신이다. 아트홀(4953㎡), 뮤지엄(7928㎡), 디자인랩(8206㎡), 어울림 광장(2351㎡), 동대문 역사공원(4110) 등 5개 시설과 15개 공간에서 동시에 최대 10개의 전시가 열리는 등 1년 365일 ‘성업중’이다.

그중에서 메인 공간은 ‘디자인 뮤지엄’이다. 벽면만 있으면 모든 곳이 갤러리라고 할 만큼 전시1, 2관, 디자인 둘레길, 둘레길 갤러리 등 4개의 전시장을 갖추고 있다. 지하 2층의 전시 1관에서 지상 4층의 디자인 놀이터로 이어지는 총 533m의 디자인 둘레길은 ‘세계에서 가장 긴 전시장’으로 불린다. 방문객들은 지하 2층에서 나선형의 계단을 타고 전시1, 2관, 둘레길 갤러리, 디자인 놀이터에서 열리는 다양한 전시들을 ‘산책하듯’ 감상할 수 있다. 이 가운데 뮤지엄 3층 둘레길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시대의 언어’(7월14일~10월10일)는 일상적인 오브제에 담긴 시대정신을 조명하는 뜻깊은 전시다. 서울디자인재단이 여름 시즌에 맞춰 전시와 포럼. 디자인스토어를 묶는 이벤트로 기획한 전시로, 시대에 따라 발전해온 타자기, 라디오, TV 등 근현대 생활기기 130점이 출품됐다.

DDP 야경. <서울디자인재단 제공>
흥미로운 건, 특별전 ‘시대의 언어’와의 시너지 효과를 얻기 위해 세계 최초의 의자 전문 잡지 매거진 ‘C’와 공동으로 기획한 ‘What’s your favorite chair?’전(7월17일 ~8월30일)이다. 장 프루베의 장 스탠더드 체어, 미하엘 토네트의 14번 의자, 르 코르뷔지에의 포퇴유 그랑 콩포르 등 세계적 디자이너들의 아이코닉 체어를 중심으로 좋은 디자인의 조건과 디자이너의 실험정신, 의자가 지닌 라이프스타일적 상징성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DDP의 진가가 널리 알린 대표적인 콘텐츠는 지난 2019년 첫선을 보인 ‘서울라이트 (Light)’다. 연말연시 분위기를 살리기위해 12월 중순부터 DDP의 외관을 글로벌 아티스트의 작품으로 물들이는 미디어아트 페스티벌로 매년 수십 만명의 관람객이 몰린다. 축제기간인 12월31일에는 보신각 타종행사 대신 DDP에서 미디어아트로 신년을 맞이하는 새로운 문화가 생겨날 정도다.

독특한 조형미를 자랑하는 DDP 계단.
서울라이트가 시민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면서 인근 동대문역사공원 일대를 축제의 무대로 끌어 들이는 등 외연을 넓혀가고 있다. 특히 올해 처음으로 열린 ‘서울 라이트 DDP 여름’은 11일간의 축제 기간동안 국내외에서 51만 명이 방문했다. 서울디자인재단은 여름 시즌의 기세를 이어가기 위해 오는 28일부터 내달 9월14일까지 DDP를 거대한 야외미술관으로 꾸미는 ‘디자인 & 아트’를 개최할 예정이다. 한국 신진 디자이너 35명의 기획전에서부터 프랑스, 호주 작가들의 대형야외설치 작품,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디자인계의 아트페어인 ‘디자인 마이애미’(9월1일~14일)와의 연계를 통해 글로벌 디자인 메카로 비상한다는 전략이다.

또한 DDP가 디자인의 허브가 된 데에는 ‘유네스코 디자인 창의도시’의 후광 효과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2010년 디자인 분야에선 국내 최초로, 부에노스아이레스, 베를린, 몬트리올, 나고야, 상하이에 이어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차강희 서울디자인재단 대표이사는 “DDP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서울의 창의성과 디자인 역량을 세계에 보여주는 공공 문화플랫폼”이라면서 ““올해는 디자인 마이애미와 함께 서울이 명실상부한 글로벌 디자인 발신지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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