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가 스며든다] 병원 같지 않은 요양원, 보호 아닌 공존의 돌봄
2025년 07월 29일(화) 08:20
(7) 선진국 사례-日 후쿠오카 ‘요리 아이’
日, 2005년 세계 최초 초고령사회 진입
치매 443만명…고령자 8명 중 1명 투병
주택가 2층 집에 어르신 26명 공동 생활
취침·식사·외출, 정해진 일정표 없어
환자를 ‘관리’ 대상 아닌 ‘인격체’로 존중
직원들 업무 분장 없이 1.3대 1 인력 배치

일본 후쿠오카시 조난구에 위치한 ‘요리아이의 숲(よりあいの森)‘전경. 중앙에 위치한 2층 목조 건물은 어르신들이 묵는 곳으로 가정집을 개조해 만들었다.

정해진 식사 시간도, 일괄적인 기상·취침 시간도 없는 요양원. 걷고 싶을 때 걷고, 먹고 싶을 때 먹는, 치매 어르신들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공간이 있다.

일본 후쿠오카시 조난구에 위치한 ‘요리아이의 숲(よりあいの森)’이다.

한국은 지난해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서며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특히 광주·전남의 경우 초고령화가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전남은 고령 인구 비율이 27.2%로 전국에서 가장 높고, 광주도 17.5%에 달한다. 고령 인구가 늘면서 치매 환자 수도 자연스럽게 증가하고 있다. 광주·전남의 경우 65세 이상 인구 10명 중 1명은 치매를 앓고 있다.

일본은 우리보다 앞서 2005년 세계 최초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2024년 기준 고령화율은 29.3%로, 매년 사상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2022년 기준 65세 이상 치매 환자 수는 약 443만 명, 유병률은 12.3%에 이른다. 고령자 8명 중 1명이 치매를 앓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일본은 최근 치매 돌봄의 방향을 ‘보호’에서 ‘공존’으로 전환하는 시도를 시작했다. 단순히 안전하게 돌보는 것을 넘어, ‘어떻게 치매 환자와 함께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 것이다.

광주일보 취재진은 일본을 찾아 치매 관련 시설을 둘러보고, 환자 돌봄 체계와 정책 방향을 살펴봤다.

일본 요리아이의 숲은 ‘지역밀착형 개호(介護)노인복지시설’로 현재 총 26명의 어르신이 생활하고 있다.

주택가 한가운데 자리한 시설은 얼핏 보면 일반 가정집과 다르지 않았다. 간판이나 병원 표식은 없었고, 담 너머로 나무로 된 2층 집이 들어서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요양원 특유의 소독약·오물 냄새 대신 은은한 나무 향과 된장국 냄새가 풍겼다.

1층 거실에는 병상이나 안전바 대신 오래된 나무 의자와 소파, 손때 묻은 가구들로 채워져 있다.
내부에는 한국 요양병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CCTV·병상·안전바를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인 나무 의자들과 색이 바랜 소파, 손때 묻은 목재 가구들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요양시설이라기보다 오래전부터 누군가 살며 가꿔온 주택의 분위기에 가까웠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어르신들은 환자복을 입지 않았다. 직원들 역시 근무복 대신 앞치마나 평상복 차림이었다. 이들은 함께 소파에 둘러앉아 빨래를 개고, 수다를 떨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복장뿐 아니라, 이곳에는 정해진 규칙 자체가 없다.

요리아이 홈페이지에는 시설의 일과를 “와글와글 수다 떨고, 느긋하게 살아갑니다. 함께 모여 노래 부르고, 때로는 외출하세요”라고 소개하고 있다.

무라세 다카오 소장은 “이곳에는 일정표가 없고, 직원에게도 역할을 나누지 않는다”며 “점심 즈음 어르신이 식당으로 나와 각자의 속도로 식사하며, 도중에 잠들었다가 다시 식사를 이어가는 경우도 있다. 식사가 세 시간 이상 걸려도 문제 삼지 않는다”고 말했다.

청결 관리 역시 병원이 아닌 ‘일반 가정 수준’을 기준으로 유지한다. 소독약 사용은 최소화하며, 가능한 한 기저귀 대신 화장실 이용을 유도한다. 무라세 소장은 “생활의 주도권을 어르신에게 두는 것이 기본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요리아이는 어르신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대상’이 아니라, 개별적 욕구와 일상을 존중해야 할 ‘인격체’로 본다.

병원의 일과표에 맞춘 운영은 직원의 업무 효율만을 위한 것이고 치매환자들을 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병원 시스템은 어르신을 재촉하게 만들고, 때로는 약물 투여나 속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지금 먹고 싶다’, ‘지금 자고 싶다’, ‘지금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인간의 당연한 욕구에도 타이밍이 있다는 것이 시설 측 설명이다.

“치매 환자의 특성상 배회나 신체·언어적 폭력이 나타날 수 있는데,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질문에 무라세 소장은 “우선 배고픔, 갈증, 온도 등 생리적 불편을 점검한다. 배회의 경우 직원이 함께 동행하며 한두 시간씩 걷기도 한다”며 “경험적으로 생리적 욕구가 해소되면 폭력 행동도 대부분 완화된다”고 답했다.

이 시설은 1991년 “시설엔 가기 싫다”며 집에 남은 92세 할머니를 위해, 세 명의 주민이 함께 돌봄을 시작한 것이 출발점이 됐다.

2층에 위치한 ‘왓쇼이(わっしょい)’유닛. 왓쇼이는 일본의 감탄사로 ‘영차’의 뜻과 비슷하다.
‘요리아이(よりあい)’는 일본어로 ‘모임’을 뜻하며, 처음에는 법인 없이 자원봉사 형태로 운영됐다. 이후 사회복지법인 후쿠오카히카리복지협회 산하로 들어가 장기요양보험 체계에 편입됐으며, 현재는 단기 입소시설인 요리아이의 숲 외에 데이서비스를 제공하는 ‘탁로소(託老所) 요리아이’, ‘제2 탁로소 요리아이’ 등 총 3개 시설을 운영 중이다.

이와 같은 형태는 일본 내에서도 일반적인 사례는 아니다. 대부분의 요양시설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보험 급여 기준에 맞춰 인력과 서비스를 최소화하고 있으며, 일부는 민간 기업이 수익사업 형태로 운영한다.

무라세 소장은 “수익성 극대화를 위해 최소 인력으로 최대 인원을 수용하다 보면 노인학대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개호보험 도입 이후 요양서비스의 사업화가 빠르게 진행됐다”고 말했다.

요리아이는 하루 목표나 업무 분장이 없어 직원들이 어르신의 생활 리듬에 맞춰 움직인다. 현재 인력 배치는 1.3대 1 수준이다. 하지만 이처럼 여유 있는 돌봄 방식은 보험 급여만으로는 유지가 어렵다. 요리아이는 지역 축제 참여, 직원들의 가공식품 판매, 가족회 활동 등을 통해 운영 재원을 일부 보완하고 있다.

요리아이는 병원 중심의 통제 방식에서 벗어나, 생활 기반의 자율적 돌봄을 실천하는 사례다. 치매가 있어도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구조, 공동체의 일원으로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을 실험하고 있다.

무라세 소장은 “치매가 있다고 해서 일상이 끝나는 건 아니다”라며 “누군가의 보호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일상을 선택하고 유지할 수 있어야 사람답게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효율보다 사람을 중심에 두는 방식이 지속 가능하냐는 질문을 자주 받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다”고 덧붙였다.

/후쿠오카=글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사진=박연수 기자 training@kwangju.co.kr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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