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시리즈로 역사 잊으면 반복된다는 교훈 전하고 싶어”
2025년 07월 17일(목) 20:14
이경혜 작가, 5·18 연작 ‘명령’·‘그는 오지 않았다’ 출간
80년 5월 청소년 희생자 소재…매년 2권씩 총 8권 계획
광주출신 대학 동기 증언·외신기자 영상 보고 실상 알아
2011년 연희동 옆집에 전두환 살아 작품 써야겠다 다짐
1980년 ‘서울의 봄’을 외치며 서울역 시위에 참여했던 한 여대생은 30여년이 흐른 후 전두환의 옆집에 살게 된다. 그는 늙은 독재자와 벽 하나를 맞대고 5월을 보내며 1980년 5월 민중항쟁 당시 스러져간 어린 희생자들을 위한 책을 쓰기로 마음 먹는다.

청소년 소설을 꾸준히 써온 이경혜(여·65·사진) 작가는 “이야기란 어떤 영혼이 작가의 몸을 통로로 삼아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라 믿었기에 가엾은 영혼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들려주고 싶었다.

그는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쳐 지난 5월 18일 광주 연작 시리즈 ‘명령’과 ‘그는 오지 않았다’(바람의 아이들)를 출간했다.

‘명령’은 책방 앞에서 계엄군의 몽둥이에 맞아 숨진 동신고 3학년 박기현, ‘그는 오지 않았다’는 계엄군의 M16 총탄에 맞아 사망한 17살 자개 공장 노동자 박인배를 모델로 삼았다. 이 작가는 앞으로 4년간 매년 5월 18일에 맞춰 2권씩 총 8권을 선보일 계획이다.

1980년 5·18 민주항쟁은 당시 한국외대 불문과 2학년이던 이 작가의 삶을 송두리채 바꿔놓았다. 언론에는 한 줄도 보도되지 않았지만 광주 출신 대학 동기들의 증언과 외신기자들이 찍은 영상을 보고 실상을 알게 된 그는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안양노동상담소에서 ‘광주의 밤’ 행사를 열고 음악극, 합창,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5·18을 알렸다.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그는 지난 2011년 서울연희문학창작촌에 머물며 작품을 집필했다. 연희창작촌 터는 과거 전두환 경호원들이 거주하던 자리로 서울시에 압수되면서 작가들의 거주 공간이 됐다. 창작촌 옆집에는 전두환이 여전히 살고 있었다.

“창문을 열 때마다 기분이 이상했어요. 특히 그해 5월 5·18 행사를 치르고 먹먹한 가슴을 안고 집에 돌아왔는데, 바로 옆집에 전두환이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복받쳐 올랐습니다. ”

이 작가는 6·25를 겪은 작가들이 끊임없이 6·25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5·18을 겪은 작가로서 5·18을 작품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다. 하지만 잘 써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섣불리 글을 시작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신문 한 켠에서 희생자 151명의 삶이 담긴 5·18 증언록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를 접했다.이 작가는 이 모든 게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5·18 청소년 희생자들을 다룬 소설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소설인 만큼 픽션이 가미됐다. ‘그는 오지 않았다’의 소년공 박인배는 월급 받기 사흘 전 총에 맞아 숨졌지만 ‘월급을 받게 해주고 싶었다’는 바램을 담아 소설에서는 월급날을 앞당겼다. 또 ‘순미’라는 여주인공을 만들어 박인배의 삶에 분홍빛 이야기를 덧붙이기도 했다.

또 독자들이 망월동 민주묘지에 묻힌 그들을 찾아가 기억하고 다독여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가의 말 뒤에 박기현과 박인배의 무덤 번호를 적었다.

“ ‘그들이 이런 삶을 살고 싶었던게 아닐까’ 상상하며 못다한 생의 뒷 이야기를 그려냈습니다. 이번 시리즈가 5·18 청소년 희생자들과 세상을 연결하는 통로가 돼 그들의 존재가 알려지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이 작가는 “시리즈를 통해 5·18 희생자들의 존재를 알리고 역사를 잊으면 반복될 수 있다는 12·3 계엄의 교훈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다인 기자 kd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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