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963' 와이어공장에서 문화공장으로
2025년 07월 15일(화) 00:00
‘문턱 낮은’ 대중 친화적 공간을 경험 하다
[복합문화공간, 도시의 미래가 되다] (2) 부산 F1963
대형 크레인 자리에 거대한 북타워
공장 천장 걷어낸 중정은 문화난장
공장 앞마당은 대나무 빽빽한 숲길
뒷마당은 사계절 풍광 비밀의 정원
수영구 양미동에 2019년 개관

지난 2019년 옛 고려철강을 리모델링해 문을 연 ‘F1963’은 10여 개의 시설들을 유치해 부산 시민들의 문화놀이터이자 부산관광의 거점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브랜드 스페이스인 ‘현대모터스튜디오 부산’ 전경. <사진제공=부산 F1963>

미술, 음악, 사진, 건축 관련 서적들을 비치한 예술도서관.
방문객들 쉼터로 사랑받고 있는 수(水)정원.
Yes 24서점 내부 모습.
정연두 작가의 전시가 열리고 있는 국제갤러리 부산점.


대형 크레인이 매달려 있던 자리에는 거대한 북타워가 들어섰고, 낡은 공장의 천장을 걷어낸 중정은 문화난장으로 변신했다. 완성된 제품을 출고하던 공장의 뒷마당은 사계절의 풍광을 즐기는 비밀의 정원으로, 방치됐던 앞마당은 대나무가 빽빽한 숲길이 됐다. 60여년 전 쇠를 녹이던 철강 공장은 개관 9년만에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부산시 수영구 양미동에 위치한 F1963은 명실상부한 문화발전소다. 부산에 가면 반드시 들러야 할 곳으로 통할 만큼 전국에서 방문객들이 줄을 잇는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화려한 건축미는 없지만 ‘세상에 하나 뿐인’ 특별한 공간이 됐다.

F1963이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데에는 지난 2016년 개최된 부산비엔날레가 계기가 됐다. 당시 전시감독을 맡은 윤재갑씨는 본전시, 특별전로 나뉜 기존의 구성과 달리 과감하게 두개의 전시(Project 1, Project 2)와 이를 비교·연구하는 Project 3로 나눠 꾸렸다. 전시장 역시 기존의 부산시립미술관 이외에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던 폐공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프로젝트 2의 무대로 이곳을 선택한 건 ‘날 것’이 묻어나는 거친 공간에 실험적인 예술작품을 접목시켜 폭발적인 시너지를 연출하기 위해서다.

이같은 그의 기획은 17만 명의 관람객을 유치하는 등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에 고려철강은 2008년 이후 불꺼진 공장에 숨결을 불어 넣기 위해 유명건축가 조병수씨에게 의뢰를 맡겨 지난 2019년 공장의 창립연도를 딴 ‘F1963’를 탄생시켰다.

F1963은 여타 도시의 그것들과는 스케일이 다르다. 대부분의 복합문화공간이 전시장, 공연장 등 2~3개 시설을 갖추고 있다면 이 곳은 전시관, 공연장, 서점, 도서관, 현대모터 스튜디오, 금난새 뮤직센터(GMC), 카페, 레스토랑, 유리온실, 정원 등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또한 매년 국내외에서 40여 만 명의 방문객이 찾는 등 흡인력이 뛰어나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이었던 2020~2021년에도 60만 여 명이 방문해 화제를 모았다.

F1963 앞에 서면 마치 하늘색 철제옷을 입고 있는 듯한 외관이 시선을 잡아 끈다. 지난달 초, 기자가 가장 먼저 들른 곳은 국제갤러리 부산점. 취재차 방문했던 날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미디어 아티스트 정연두의 개인전 ‘불가피한 상황과 피치 못할 사정들’이 열리고 있었다. 전시장 곳곳에 설치된 대형 화면 속에는 보컬(하현진), 콘트라베이스(레이 설), 색소폰(코이 시먼즈), 오르간(이효주), 드럼(박서연) 등 각자의 상황에 맞춰 연주하는 어색하지만 묘한 어울림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각자의 ‘불가피한 상황과 피치 못할 사정들’에서 그래도 적응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오버랩된다.

F1963이 개관 7년만에 부산의 명소로 자리잡은 데에는 국제갤러리의 공도 빼놓을 수 없다. 연중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전시회를 기획하는 이 곳은 복합문화공간인 F1963의 품격을 한단계 높여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F1963의 운영을 맡은 ‘문화재단 1963’은 복합문화시설의 핵심인 전시공간을 유치하기 위해 국내 정상급인 국제갤러리 부산점(330㎡)을 입점시켰다. 갤러리는 외부에서 보면 F1963의 오른쪽에 위치해 건물 내외부로 연결되는 장소적 특성을 자랑한다. 이같은 개방성은 미술품 구매를 위해 방문하는 컬렉터뿐 아니라 다른 목적으로 F1963을 방문한 관광객들도 전시장으로 끌어 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F1963이 지닌 강점은 대중 친화적인 공간 구성이다. 바로 서점과 도서관, 카페, 레스토랑 등 ‘문턱이 낮은’ 시설들이다. 전시장과 공연장은 특정 기간이나 시간에만 즐길 수 있는 반면 이들 편의시설 들은 언제든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기 때문이다. 개관과 동시에 문을 연 카페 ‘테라로사’, 레스토랑인 ‘프라하 999’는 9년째 제 자리를 지키고 있고 복순도가, 화수목 등 새로 들어선 식음료 시설들도 가족이나 친구, 모임 장소로 인기가 높다.

지난 2017년 입접한 국내 최대 규모의 중고서점 ‘Yes 24’도 흥미로운 공간이다. 1983㎡(600평) 규모를 자랑하는 이 곳은 문학, 인문, 역사, 경제 등 24개의 분야별 중고도서 약 20만권을 갖춰 일반 시민들의 발길을 끌어 모은다. 특히 저자 초청 행사와 북콘서트, 아이돌 그룹의 팝업스토어는 한류팬들을 불러 들이는 아지트다.

지난 2019년 ‘예술전문 도서관’을 모토로 개관한 예술도서관은 또 다른 매력을 지닌 곳이다. 일단 내부에 들어서면 색다른 분위기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수많은 책들로 둘러싸인 공간은 방문객들이 번잡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독서를 통해 사색과 명상을 즐길 수 있을 만큼 정적이다. 미술·사진·음악·건축 등 4개 장르의 책을 비치한 이 곳은 세계 미술의 역사와 주요 사조를 대표하는 작품집과 국내외 유명 미술관에서 발행한 전시 도록, 분야별 예술인문학도 갖추고 있다. 1만3000권의 소장도서 가운데 80% 이상이 외국출판물이다.

지난 2021년 문을 연 ‘금난새 뮤직센터’(Gum Nanse Music Center·GMC)는 F1963의 ‘진화’를 보여주는 곳이다. 부산 출신 마에스트로의 철학인 클래식 대중화를 구현하기 위해 지역의 청소년과 음악학도, 부산 시민들이 언제든지 쉽게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단순히 공연예술교육장이 아닌 금남새 지휘자가 직접 지휘를 맡아 수준높은 실내악 무대를 선보이는, 말 그대로 뮤직센터로 운영하기 위해서다.

올해로 개관 4주년을 맞는 ‘현대모터스튜디오 부산’은 서울·경기권을 제외한 지역에 만나는 첫 현대차의 브랜드 스페이스다. 현대차의 정체성을 담은 ‘모터’와 창조, 실험의 공간을 상징하는 ‘스튜디오’를 결합한 개념으로 전시작품과 연계해 현대차의 미래비전을 보여주는 콘셉트카, 아트 콜라보레이션차 등을 주로 전시한다.

이와함께 F1963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은 도심속 정원들이다. 와이어의 곧고 유연한 속성을 닮은 대나무 숲길, 낮보다 밤이 더 좋은 달빛가든, 그늘과 바람이 있는 단풍가든 등 3개의 주제로 구성된 정원은 다양한 식물과 조경시설을 갖춰 지난해 부산시로 부터 ‘제1호 민간정원’으로 선정, 등록되기도 했다.

이안기 F1963 이사는 “F1963이 개관이후 매년 방문객이 늘어나고 있는 이유는 지속 가능한 디자인을 통해 확장된 새로운 공간에서 다양한 경험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면서 “F1963이 자리 잡으면서 인근에 카페, 서점, 문화공간들로 밀집된 ‘망미단길’과 수영구 고가도로 하부의 유휴 공간을 활용해 만든 복합문화시설인 ‘비콘그라운드’가 속속 들어서는 등 부산관광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 기자 jhpark@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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