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원 지키는 청년 공무원들, 식물처럼 뿌리내리다
2025년 06월 24일(화) 10:45
일하는 청년, 빛나는 미래-광주시립수목원
광주시립수목원 지키는 청년 공무원 3인의 진심과 고민

광주시립수목원에서 근무하는 이지영(왼쪽부터)·양우형·김세진씨가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광주시 남구 양과동 끝자락 광주시립수목원에는 매일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묵묵히 현장을 지키는 이들이 있다. 개원 2년도 채 되지 않은 수목원을 정성껏 가꾸고 제도를 정비하고, 시민 맞이 준비를 해온 청년 공무원들이다.

유전자원 수집부터 수목 식재, 수목원 등록 요건 충족, 행정 처리, 각종 인증 준비까지 다양한 업무가 이들의 손끝에서 이뤄진다.

누군가는 야근이 잦던 민간 회사를 떠나 안정된 삶을 택했고, 누군가는 전공을 살리고자 수목원을 선택했다. 각기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광주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간다는 점에서 이들의 이야기는 많은 지역 청년에게 공감을 준다.

이들의 노력 덕분에 2023년 10월 개원한 광주시립수목원은 지난달 기준 누적 방문객이 33만 7760명에 이를 정도로 광주의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광주 최초의 시립수목원을 만들어가고 있는 양우형(여·33·녹지연구사)씨는 5년 차, 이지영(여·31·녹지직)·김세진(29·녹지직)씨는 4년 차 공무원이다.

양씨는 수목원 내 교육 프로그램과 식물 유전자원 채집·관리, 식물 종 리스트 정리 등 전반적인 연구와 기록을 담담하고 있다. 이씨는 수목원 등록 업무를 비롯한 공유재산, 시설물 관리, BF 인증 관련 행정 업무까지, 내부 시스템을 뒷받침한다. 김씨는 식재·관리 업무를 맡아 수목과 초화류를 심고 현장을 지휘하며, 기간제 근로자 운영 등 실무도 함께 챙기고 있다.

이지영씨는 “수목원 등록을 위해서는 식물 유전자원이 1000종 이상 확보돼야 한다”며 “올해 안에 목표 수종을 확보하고 등록을 추진할 계획”이라며 바쁜 일상을 전했다.

이들이 이 자리에 오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고 한다. 녹지직은 일반 행정직과 달리 채용 공고가 매우 적고, 직무도 제한적인 경우가 많아 진입장벽이 높기 때문이다.

양우형씨는 대학원에서 연구자의 길을 걷다 건강 문제로 방향을 틀었다고 한다. 양씨는 “처음엔 부모님이 더 기뻐하셨다. 빨리 취업해 광주로 돌아오니까 좋아하시더라”고 말했다.

이지영씨는 민간 조경설계 사무소에서 근무하며 야근을 반복하다가 안정적인 삶을 위해 공직을 택했다. 그는 “3년 동안 공부하면서 하루 15시간씩 책상 앞에 앉았던 적도 있었다. 마지막엔 ‘떨어지면 망한다’는 절박한 마음이었다”며 고된 수험생활을 떠올렸다.

임학(林學)을 전공한 김세진씨 역시 진로를 고민하다 지역에서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직업으로 공무원을 선택했다. 군 복무 이후 공부에 매진했고, 6개월간 규칙적인 수험 생활을 거쳐 합격했다. 김씨는 “공무원은 일이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웃음), 들어와 보니 모두 바쁘게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이 광주에서 직장을 선택한 데는 단순한 출신지 이상의 이유가 있다. 고향은 광주이지만 경상도에서 대학을 졸업했다는 양씨는 “부모님과 함께 광주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며 “지금도 아침마다 엄마 밥을 먹고 출근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씨는 “광주는 교통도 괜찮고 주말엔 근교로 나들이 가기에도 좋은 도시”라며 광주의 일상을 만족스럽게 여긴다. 김씨 역시 “광주에서 자라고 공부한 만큼 다른 선택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광주시립수목원에서 근무하는 이지영(왼쪽부터)·양우형·김세진씨가 수목원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공무원이라고 하면 흔히 ‘안정적이고 편한 직업’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수목원에서의 일은 조금 다르다는 게 이들의 말이다.

현장과 사무실을 오가며 계절마다 다른 환경에 적응해야 하고, 때로는 예상치 못한 문제도 맞닥뜨린다. 김씨는 “현장 중심의 업무가 많아 활동적인 성향과 잘 맞는 업무”라면서 “식물을 좋아하고 관심이 많으면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최근 현장을 벗어난 내부 행정 업무를 맡기 시작하면서 법률 검토 등 익숙하지 않은 분야에 도전 중인 데 쉽지 않다고 했다.

양씨는 “설계 업체가 제안한 식재안을 보고 ‘이 식물은 이러한 환경을 좋아하니 이곳에 심어달라’, ‘이 토양은 여기 환경과 맞지 않으니 빼달라’ 등의 제안 정도는 할 수 있는 식물 지식이 필요하다”며 실무자의 책임감과 전문성을 강조했다.

이들은 진로를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조언도 남겼다. 세 사람은 수목원 업무의 특성상 식물에 대한 이해는 물론 조경 내역서와 도면 해석 등 실무 능력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씨는 “학교 다닐 때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해두면 수험생활과 실무에 모두 도움이 된다. 특히 공무원 시험을 위해 영어 공부는 미리미리 해두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양씨는 “녹지직도 도시마다 다르다. 광역시는 조경공사가 많아 설계나 내역서 해석이 필수인데, 임학과 출신이면 조경학 복수전공이 큰 무기가 될 수 있다”며 실질적인 적응 꿀팁을 제시했다

수목원에 대한 시민 인식·홍보 부족 등은 개선점으로 꼽았다.

이씨는 “얼마 전 행사할 때 수목원 인근 대촌에 사는 시민이 오셨는데, 개원 2년이 지났는데도 이런 곳이 있는지 몰랐다고 말씀하셔서 속상했다”며 “열심히 홍보해서 수목원을 더 알려야겠다고 느꼈다”고 전했다.

수목원 조성 초기부터 함께했다는 이들은 “그래도 매년 놀라울 정도로 수목원이 성장하고 변하고 있다”면서 “광주에도 이렇게 멋진 수목원이 있다는 걸 시민들이 더 많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이들은 또 “시민들이 내가 심은 식물을 보고 즐긴다고 생각하니 책임감이 생긴다”면서 “수목원에서 일한다는 건 단순한 업무를 넘어서 시민의 공간을 만든다는 자부심”이라고 말했다.

수목원을 지키는 청년 공무원 3인방의 삶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들이 걸어온 길은 단순히 공무원이 되는 과정이 아니라, 지역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수많은 청년들이 서울로 향하는 요즘, 광주에 남아 녹색 미래를 가꾸는 이들의 활약이 기대된다.

/김해나 기자 khn@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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