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강한 정보가 일상을 지배하는 시대. 하지만 그렇게 쏟아지는 수많은 콘텐츠 속에서 정작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있을까. 과잉된 콘텐츠 소비가 낳는 ‘정보 피로’ 현상이 현대인의 일상을 잠식하고 있다.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 틱톡 등 짧은 영상들이 하루의 틈을 촘촘히 채우고 있다. 스마트폰의 시청 기록을 살펴보면 수십 개의 영상은 기본이고 수백 개에 이르는 날도 드물지 않다. 이처럼 무의식적으로 끊임없이 콘텐츠를 소비하지만 정작 기억에 남는 것은 거의 없다.

가끔은 시청 기록을 다시 들여다보며 ‘내가 이걸 봤었나?’ 하고 놀라는 순간도 있다. 짧고 강한 자극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우리의 뇌는 점점 피로해지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피곤함을 넘어선 ‘정보 피로’라는 사회적 문제로 번지고 있다.

우리는 종종 지인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다. “하루에 수십개 숏폼 영상을 보는 것 같은데 봤던 내용이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보는 순간에는 재미있지만 이후에는 공허함과 자괴감이 밀려오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스마트폰 중독이나 컨텐츠 중독이 아닌 정보 과잉에 따른 뇌의 과부하라고 진단한다. 이를 ‘정보 피로’(information fatigue)라고 정의하며 과도한 정보 노출로 인한 집중력 저하, 판단력 약화, 감정적 무기력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정보 피로’라는 개념은 이미 1990년대, 본격적인 정보화 시대가 시작되며 등장한 새로운 현대병이다. 전문가들은 정보 피로가 단순히 피곤함을 넘어 인지 기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대표적인 증상으로는 분석력 저하, 불안감의 증가, 자기 확신의 약화 등이 있으며 이는 종종 책임을 회피하거나 외부로 전가하려는 심리적 반응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와 같은 변화는 결과적으로 업무 결정의 지연, 비효율적인 시간 사용, 스트레스 증가, 나아가 신체적 질환과 잘못된 판단으로까지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시대일수록 정보를 ‘얼마나 많이’ 소비하느냐보다 ‘어떻게’ 소비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자극적인 콘텐츠를 무작정 받아들이기보다는 정보의 맥락을 파악하고 스스로 취사선택하는 미디어 감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짧고 강한 콘텐츠가 주류가 된 지금, 우리는 오히려 속도를 늦추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에 서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등장한 것이 ‘디지털 디톡스’다. 몰입이 필요한 시간에는 푸시 알림을 끄고 방해 금지 모드를 설정하는 사소한 실천 하나하나가 모여 과잉 정보 속에서 나 자신을 지켜내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

우리는 정보의 미로를 걷고 있다. 무작정 나아가기보다는 한 걸음 멈춰 방향을 살피고 새길 정보와 놓아줄 정보를 결정하는 능력이 이 시대의 진정한 나를 위한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