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키세스와 어묵
2025년 06월 05일(목) 00:00
선거가 끝났다. 오랜 고통의 종말을 알리는 새 시대가 오길 바란다. 지난 일이니 몇 가지 후회가 밀려든다. 저 내란 정국에 요리사로서, 한 시민으로서 할 일을 더 하지 못했다는 자책이다. 은박지로 된 세모꼴 초콜릿에서 따온 키세스 신화를 아실 것이다. 그 공포의 추위와 눈발을 딛고 시민들이, 방한용품도 없이 한 겹 은박지 같은 깔개를 둘러쓰고 연좌농성을 하던 장면 말이다. 그때 어묵 리어카라도 만들어서 현장에 갔어야 했다. 뜨거운 국물을 나눠야 했다. 그러지 못했다. 그저 빵 봉지를 들고 가서 나누었을 뿐이었다.

어떤 시민이 더운 커리를 준비하고 컵라면을 나눠주는 걸 보았다. 부끄러웠다. 내 밥차는 왜 없었을까. 그 일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자책을 거듭했다. 예전에 유럽에서 오랫동안 미국 주도의 자본 세계화에 항의하는 시위가 있었다. 그때 많은 이들이 거리에 나왔다. 춥고 배고픈 시위가 며칠이고 이어졌다. 뜻있는 사람들이 밥차를 몰고 나왔다. 스프를 끓이고 빵을 나눠주었다. 마치 1980년 광주의 주먹밥 함지 같은 것이었다. 싸우려면 먹어야 한다.

선거 며칠 전에 한 인터넷 방송에 출연했다. 진행자가 “보통 선거가 되면 정치인이 시장에 가서 떡볶이와 어묵을 먹는 장면을 찍잖아요. 왜 그런 겁니까”하고 묻는 것이었다. 표를 얻기 위해 정치인들이 그런 현장을 만드는 건 나쁜 일은 아니다. 다만 진정성이 있느냐 우리가 살펴야 된다고 했다. 딱 한 마디로 답했다.

“먹는 건 좋은 일인데, 과연 어묵과 떡볶이 값은 알고나 하는 걸까요.”

방송을 본 많은 지인들이 좋은 답이었다고 칭찬했다. 디테일에서 정치가 시작된다. 공감이 정치라는 뜻이다. 본디 부자로 자라서 거리에서 그런 ‘불량식품’(예전에는 이런 음식을 그리 불렀고 툭하면 단속을 했다)을 안 먹고 자랐다면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를 하겠다면 알아야 한다. 공감과 이해는 접점이 있어야 생긴다. 안아보고 접촉하면서 발생한다. 어묵 국물의 온도를 모르고, 한겨울 서서 먹는 포장마차의 국물 한 입의 온기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에게 우리는 미래를 맡기고 싶다. 그게 사람의 정서다. 다행히 그런 결과가 나왔다.

왕년에 내 친구는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당에서 당보 만드는 일을 했다. 매일 아침 당무회의에 참석해서 취재했다. 우리는 텔레비전이나 신문을 보고 DJ를 이해했다. 보통 뉴스에서는 정치적인 ‘현안’을 주로 다룬다. 정치적 메시지를 DJ의 입을 통해서 듣고 기록하고 보도한다. 묵직한 정치적 주제를 말하는 DJ만 보아왔던 것이다. 하지만 지근거리에서 DJ를 보았던 친구의 말을 듣고 나는 좀 놀랐다.

“뉴스에는 그런 내용이 나가지. 헌데 실제로는 살림에 관한 게 대부분이야. 그때 무슨 돈이 있겠어, 야당이. 쪼들리지. 야당 도왔다고 기업이 사라졌던 시대인데. 그러니 선생님(김대중총재)은 회사 운영하듯이 회계를 따지더라고. 말단 당무직원 한 명의 퇴직금이라거나, 전기세 끝자리 몇 원까지 다 따져. 어찌 보면 뭐 저런 것까지 다 보시나 싶었지. 그게 아니야 나중에 보니. 그 디테일이 나라 살림에도 그대로 나타나는 거야.”

디테일이 있어야 전체 그림도 있다. 붓질 한번이 겹쳐야 명화를 만든다.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의 키세스 사진은 풀리쳐 상을 받아도 될만한 걸작이었다. 그 사진이 훌륭했던 건 추위를 이기고 긍정의 시대를 열어갈 이미지의 힘을 보여주었다는 점이었다. 사진 속의 시민들은 극단의 추위에서도 낙관을 잊지 않고 있었다.

다시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이이지만, 그런 상황이 생긴다면 나는 어묵 리어카든 밥차든 끌고 가고자 한다. 그 약속을 드린다.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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