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미안하다- 박용수 수필가·동신여고 교사
2025년 05월 26일(월) 00:00 가가
잠을 며칠 설쳤다.
오월이 오면 조강일 친구가 생각난다. 광주 진흥고 동창이다. 망월 묘지에 누운 그를 막걸리 몇 잔으로 사갑(死甲)을 대신했다. 교회 등사기를 빌려 오월의 진실을 알리려다 집까지 추적해 온 형사들의 눈을 피해 부산으로 함평으로 피신했던 그 친구의 형형한 눈망울이 선하다. 5·18이 끝나고 교실에서 만난 그는 조용한 친구가 되어 있었다. 숱하게 고문을 당하고 감시를 받고 있다는 걸 그땐 몰랐다. 1986년 스물넷, 그는 결국 육신을 이기지 못했다.
그가 죽고 오랜 후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 생전 그의 모습이 너무 또렷해서 오랫동안 자괴감에 시달렸다. 미안하다. 오월이 되면 교실에 무력하게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이 나를 붙잡는다. 1980년 고2 때였다. 그 맑고 선한 그의 눈빛은 45년이 흐른 지금 고등학생 제자들의 눈빛으로 되살아나서 반짝반짝 다가온다.
녀석들은 오월이 되면 광주보다 스승의 날을 먼저 기억한다. 전화나 문자가 온다. 몇은 찾아뵙겠다는 걸, 거듭 사양하고 혼자 오월을 맞이한다. 새 학기마다 새로운 만남, 수많은 만남은 희망이자 자랑이고 삶의 에너지였다. 그 속에 이별의 씨앗이 들어있음을 알고 나니 만남이 더욱 소중하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그리 보면 교직은 천직이 아니라 극한직업이다.
교사라는 직분으로 세상 모르는 이가 세상을 가르쳤으니 실수투성이였다. 성적 중심의 광풍이 한바탕 지나갔고 그 속에서 나도 회오리쳤다. 한 반에 50명이 훌쩍 넘었으니 사건도 많았다. 학생 수가 많다는 이유로 개인 인권은 무시되었다. 자율학습은 자율이 없었고, 야간 학습은 물론 토요일 일요일까지 모두를 강제 등교시켰다. 나도 오월을 망각한 작은 독재자였다. 그런데도 여전히 못난 사람을 존경한다는 그들에게 감사하고 거듭 미안할 뿐이다.
이젠 어른이 되었건만, 어디서든 “선생님!”하고 달려든다. 하지만 그들에 비해 내 기억은 형편없다. 고작 몇 년도 졸업생이고, 담임은 누구였고 반장이 누구였는지나 확인하고 헤어지면서 나는 꼭 이 말을 잊지 않는다. 미안하다. 그리고 조강일 친구처럼 험한 세상을 살지 말고, 좋은 세상에서 잘 살라며 등을 토닥여 준다.
졸업식 노래가 그치기도 전에 교정을 박차고 나갔던 녀석들, 이제나마 따뜻한 포옹, 따듯한 이별을 보낸다. 나이를 먹고 보니 만남보다 더 소중한 걸 깨닫는다. 아름다운 이별 말이다.
5월은 온통 그리운 이들의 이름을 불러보는 달이다. 어버이날은 돌아가신 선친을, 스승의 날엔 옛 선생님들이 그리워진다. 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들고 있던 꼬마 아이도 지난한 45년이 지났으니 벌써 그때 그 아버지 나이가 되었고, 사랑하는 남편이나 젊은 자식을 잃고 울부짖던 부모도 45년을 더했으니 지금은 구순 노인이거나 상당수 고인이 되었다.
조강일 친구 아버지는 당신 집 주소조차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셨다. 그리움 반 눈물 반으로 사신 노인을 위로하려다 혹여 고통을 줄까 싶어서 전화를 더는 하지 못했다. 죽은 자식을 두고 사는 이의 고통을 누가 알까. 죽음도 그리움을 어찌하지 못할 것 같은데, 정말 죽으면 그리움만이라도 끝났으면 좋겠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흔히 인생을 일장춘몽이라고 한다. 한 갑자를 넘고 나니 그 의미를 조금 알겠다. 젊은 날 아무리 국어 선생님이 잘 설명해 주었어도 그 푸릇푸릇한 청춘들이 어찌 이 문장의 깊이를 헤아렸겠는가. 떠오른 햇살보다 지는 노을이 백배 천배는 더 아름다워 보인다.
돌아보면 제자들이 어른이 되었고, 지금은 그 녀석들의 아이를 가르치고 있다. 주변 사람들 상당수도 세상에서 증발했다. 인생은 한바탕의 꿈! 그 꿈을 이루었건 못 이루었건 서쪽 하늘에 아름답게 노을이 지도록 5·18 가해자들, 공수부대원들, 고문했던 이들 모두 미안하다고 진실로 사죄하고 그 무게를 털고 갔으면 좋겠다. 그게 내 친구 조강일은 물론 오월 광주 사람들에게 용서받고, 본인에게도 아름답고 가장 예쁘게 헤어지는 길이 아닐까.
이별은 누구나 슬프고 누구나 간다. 그 고통이 아물도록 폭력을 가했던 이들이 먼저 다가와 미안하다고 용서를 빌고 가면 좋겠다.
미안하다. 곰곰이 친구 생각, 인생 생각으로 잠 못 드는 오월이다.
오월이 오면 조강일 친구가 생각난다. 광주 진흥고 동창이다. 망월 묘지에 누운 그를 막걸리 몇 잔으로 사갑(死甲)을 대신했다. 교회 등사기를 빌려 오월의 진실을 알리려다 집까지 추적해 온 형사들의 눈을 피해 부산으로 함평으로 피신했던 그 친구의 형형한 눈망울이 선하다. 5·18이 끝나고 교실에서 만난 그는 조용한 친구가 되어 있었다. 숱하게 고문을 당하고 감시를 받고 있다는 걸 그땐 몰랐다. 1986년 스물넷, 그는 결국 육신을 이기지 못했다.
이젠 어른이 되었건만, 어디서든 “선생님!”하고 달려든다. 하지만 그들에 비해 내 기억은 형편없다. 고작 몇 년도 졸업생이고, 담임은 누구였고 반장이 누구였는지나 확인하고 헤어지면서 나는 꼭 이 말을 잊지 않는다. 미안하다. 그리고 조강일 친구처럼 험한 세상을 살지 말고, 좋은 세상에서 잘 살라며 등을 토닥여 준다.
졸업식 노래가 그치기도 전에 교정을 박차고 나갔던 녀석들, 이제나마 따뜻한 포옹, 따듯한 이별을 보낸다. 나이를 먹고 보니 만남보다 더 소중한 걸 깨닫는다. 아름다운 이별 말이다.
5월은 온통 그리운 이들의 이름을 불러보는 달이다. 어버이날은 돌아가신 선친을, 스승의 날엔 옛 선생님들이 그리워진다. 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들고 있던 꼬마 아이도 지난한 45년이 지났으니 벌써 그때 그 아버지 나이가 되었고, 사랑하는 남편이나 젊은 자식을 잃고 울부짖던 부모도 45년을 더했으니 지금은 구순 노인이거나 상당수 고인이 되었다.
조강일 친구 아버지는 당신 집 주소조차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셨다. 그리움 반 눈물 반으로 사신 노인을 위로하려다 혹여 고통을 줄까 싶어서 전화를 더는 하지 못했다. 죽은 자식을 두고 사는 이의 고통을 누가 알까. 죽음도 그리움을 어찌하지 못할 것 같은데, 정말 죽으면 그리움만이라도 끝났으면 좋겠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흔히 인생을 일장춘몽이라고 한다. 한 갑자를 넘고 나니 그 의미를 조금 알겠다. 젊은 날 아무리 국어 선생님이 잘 설명해 주었어도 그 푸릇푸릇한 청춘들이 어찌 이 문장의 깊이를 헤아렸겠는가. 떠오른 햇살보다 지는 노을이 백배 천배는 더 아름다워 보인다.
돌아보면 제자들이 어른이 되었고, 지금은 그 녀석들의 아이를 가르치고 있다. 주변 사람들 상당수도 세상에서 증발했다. 인생은 한바탕의 꿈! 그 꿈을 이루었건 못 이루었건 서쪽 하늘에 아름답게 노을이 지도록 5·18 가해자들, 공수부대원들, 고문했던 이들 모두 미안하다고 진실로 사죄하고 그 무게를 털고 갔으면 좋겠다. 그게 내 친구 조강일은 물론 오월 광주 사람들에게 용서받고, 본인에게도 아름답고 가장 예쁘게 헤어지는 길이 아닐까.
이별은 누구나 슬프고 누구나 간다. 그 고통이 아물도록 폭력을 가했던 이들이 먼저 다가와 미안하다고 용서를 빌고 가면 좋겠다.
미안하다. 곰곰이 친구 생각, 인생 생각으로 잠 못 드는 오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