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365편 외우는 칠순의 세무사
2025년 04월 27일(일) 20:36
5월 7일 광주 드멩아트홀서 시암송 행사 갖는 박성춘 세무사
빚보증 힘들 때 위로 받아…TV 출연·암송시집 출간
시암송국민운동본부 주최…5월 4일까지 참가 신청
서울에서 33년째 세무사로 활동하는 박성춘(71·사진)씨는 하루 100여편 씩 시를 외운다. 시암송은 그의 취미이자 일상이다. 지난 2012년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를 외우기 시작한 후 그가 암송하는 시는 무려 1365편에 달한다. 그의 시암송은 TV프로그램에 소개돼 화제를 모았고, 오는 5월에는 광주에서 시암송 행사도 갖는다.

영암 출신으로 광주상고, 조선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그는 광주서광주세무소 등에서 근무하다 지난 1986년 서울로 올라갔다. 그와 시의 인연은 친구의 빚보증에서 시작됐다. 보증을 섰던 친구가 부도를 내면서 빚을 떠맡게 된 그는 시를 외우며 힘들었던 시절을 견뎠다.

“당시 눈 앞이 깜깜했지요. 술 먹으며 신세 한탄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좀처럼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그 때 아는 분이 마음이 복잡할 때는 시를 읽고 외워보면 좋을 거라고 권했어요. 시를 외우다 보니 집중이 되고 마음도 추스릴 수 있었습니다. 시를 외우며 많은 위로를 받았죠.”

그는 외운 시를 묶어 세권의 책을 펴냈다. 첫번째 책 ‘나의 암송 시 518선’에는 교과서에 수록된 시를 실었고, ‘박성춘 암송시 1000선’, ‘박성춘 암송시 1365-꿈은 이루어진다’ 등을 출간했다. 책에 실린 시인은 모두 574명으로 첫 번째 시는 윤동주의 ‘서시’, 마지막 시는 구자옥의 ‘여한가(餘恨歌)’다.

시암송이 화제가 되면서 그는 지난 2017년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를 시작으로 TV조선 ‘내몸 플러스’(2017),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2019)에도 출연했다.

그는 올해부터 새로운 시를 암기하기보다는 2주에 걸쳐, 하루에 100여개씩 1365편의 시를 다시 외우는 시간을 갖는다. 집에서 시간을 정해 암송하고 출근길 택시 안에서 30편 정도를 외운다.

“시를 외우기 전 시인의 생년월일과 고향을 꼭 파악합니다. 시라는 것은 작가의 성장과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죠. 암송하고 싶은 시를 발견하면 문맥을 고려해 저만의 방식으로 문단화 작업을 합니다. 그러면 머릿 속에 구조가 잡혀 좀 더 쉽게 외울 수 있지요. 칠십을 넘긴 나이에 1365편의 시를 외우다니, 내 스스로 작은 기적을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가슴이 벅차오르며 마음속 깊이 희열을 느끼기도 하지요.”

많은 시 가운데서도 부모 세대들의 삶과 한이 녹아든 작품을 선호하는 그가 특히 마음에 담아둔 작가는 문병란 시인으로 ‘인연서설’ 등을 좋아한다. 또 ‘기미독립선언문’, 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꾸며’, 민태원의 ‘청춘예찬’ 등 수필도 암송한다. 그는 자식들에게 묘비명도 언급해두었다. “시는 시공을 넘나들며 언어의 신비로 조각된 언어 예술의 극치이다”라고.

박씨는 오는 5월 7일(오전 10시 30분 광주 드맹아트홀) 시암송국민운동본부(대표 문길섭 드맹아트홀 관장)가 주최하는 ‘시암송 대중화를 위한 애송시 발표회’에 참여한다. 이날 행사에서는 박씨가 31편, 문 대표가 20편의 시를 번갈아가며 암송한다. 박 씨는 이해인 수녀의 ‘오월의 시’, 웃음이 터지는 이정록의 ‘참 빨랐지 그 양반’ 등을 들려준다.

“이런 무대가 첨이라 기대도 되고 떨리기도 합니다. 오신 분들이 저처럼 칠십이 넘은 사람도 외우는데 우리도 한번 외워보자 하는 마음을 가지셨으면 합니다. 좋아하는 시부터 외워보시기 바랍니다. 시를 암송하지 않더라도, 아름다운 시로 만든 노래 10곡만 부를 수 있어도 좋습니다.”

이날 행사에서는 주옥련·문은자·김선옥씨도 특별 출연, 드라마 ‘눈이 부시게’ 대사 등을 암송할 예정이다. 참가신청은 5월4일까지다.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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