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갚으려거든 사회에 갚아라” 진정한 어른 김장하 발자취
2025년 04월 22일(화) 20:00
김현지 감독 다큐 ‘어른 김장하’
광주독립영화관서 관객과의 대화
수익금, 사회에 환원 ‘지역 독지가’
문형배 전 헌재 권한대행에 장학금

‘어른 김장하’ 스틸컷

“나는 이 사회의 것을 너에게 주었으니 갚으려거든 내가 아니라 이 사회에 갚아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계기로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에 대한 관심이 쏠리면서, 그에게 장학금을 주고 지원한 김장하(81) 선생의 이야기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김장하 선생은 경남 진주에서 60여 년간 ‘남성당 한약방’을 운영하며 얻은 수익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해온 지역의 독지가다. 사재 110억여원을 들여 진주 명신고를 설립한 후 국가에 헌납했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해왔다. 진주신문 후원은 물론, 여성 인권, 환경, 문화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조용히 힘을 보탠 지역의 큰 어른이었다.

광주독립영화관에서 지난 21일 저녁 ‘어른 김장하’ 상영회와 GV가 진행됐다. 영화에서 취재를 담당한 김주완 기자(왼쪽)과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현지 감독의 ‘어른 김장하’는 평생 사회적 약자에게 헌신해온 김장하 선생의 삶을 조명한 다큐멘터리다. 지난 21일 저녁 광주독립영화관에서는 상영회와 관객과의 만남(GV) 행사가 열려 눈길을 끌었다. 이날 GV에는 영화에서 김장하 선생을 취재한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기자가 참석해 관객들과 대화를 나눴으며,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이 진행을 맡았다.

지난 2023년 11월 개봉한 이 영화는 최근 넷플릭스 ‘오늘 대한민국의 TOP10 시리즈’ 5위까지 오르는 등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번 광주독립영화관 상영 역시 시민들의 재개봉 요청에 따라 마련됐다.

김장하 선생의 삶을 다룬 영화이지만 정작 선생의 인터뷰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나를 우상화하지 말라”며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김주완 기자가 퇴직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30여년간 지역 언론사에 몸 담으며 토착 비리를 파헤치는 등 각종 특종을 이어왔던 김 기자는 퇴직 후 “좋은 어른을 취재해 널리 알리는 것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방법”이라며 김장하 선생을 취재하기로 결심한다.

김 기자의 방문 당시, 김장하 선생은 “백수라면서요?” 하고 웃으며 먼저 말을 건넨다. 하지만 “지금까지 몇 명의 장학생을 지원했는가”, “지원한 금액은 어느 정도인가” 같은 질문에는 입을 꾹 다물고 만다. 결국 김 기자는 선생의 주변인들을 만나며 그의 삶을 하나씩 짚어 나가기로 한다.

“보통 기자가 취재에 돌입하면 일반인들은 피하거나 부담스러워하기 마련인데, 김장하 선생 이야기를 꺼내자 그렇지 않았다. 다들 ‘잘했다, 꼭 알려야 할 분이다’라며 기꺼이 취재에 도움을 줬다”고 김 기자는 당시를 떠올린다. 결국 주변에 소문이 나면서 김장하 선생 주변인들이 식사 자리마다 불러줬다는 것이다.

동네 주민들과 한약방 직원, 명신고의 옛 교사와 학생들, 그리고 ‘김장하 장학생’들까지. 모두가 “선생님은 정말 대단한 분이다.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었을까”라며 “그분을 떠올리면 내 삶이 부끄러워진다”고 입을 모았다.

김장하 선생은 “내가 돈을 벌었다면, 결국 아프고 괴로운 사람을 상대로 돈을 번 것이다. 그 소중한 돈을 함부로 쓸 수 없어 차곡차곡 모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이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어른 김장하’ 스틸컷
그는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했다. 필요하면 고등학교, 대학교는 물론 대학원까지 지원하고 생활비와 용돈까지 주면서도 “공부 열심히 해라”는 등 잔소리는 일절 하지 않았다.

2022년 5월, 한약방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들은 한 장학생이 찾아와 “장학금을 받고도 특별한 인물이 되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장하 선생이 “그런 것을 바란 적 없다.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 것”이라며 담담히 말하는 장면은 잔잔한 울림을 준다.

김 기자는 그 점이 바로 어른과 꼰대의 차이라고 짚었다. 꼰대는 말로 상대를 가르치려 하지만, 어른은 말을 아끼고 행동과 삶 자체가 모범이 되는 이를 가르킨다는 것이다.

넷플릭스를 통해 영화를 여러차례 봤다는 한 관객은 “새삼 영화관에서 보니 안 보이는 장면이 보이더라. 많은 사람들이 김장하 선생을 생불이나 신으로 묘사했지만 한편으로 한 명의 인간으로서 많이 외로우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김장하 선생께 강상호 열사가 롤모델이듯, 젊은 우리에게도 아직 선생님 같은 어른이 필요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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