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왔지만…일감 뚝 끊긴 인력시장은 여전히 ‘한파’
2025년 03월 05일(수) 19:15
르포-광주 신안동 인력사무소 가보니
이른 새벽부터 2시간 기다렸지만
50여명 중 20명만 일거리 받아
“지난주 이틀 일했는데 오늘도 허탕”
건설 불황에 일자리 찾기 별따기
“나만 바라보는 가족 어쩌나” 한숨

5일 새벽 광주시 북구 신안동 태봉근로자대기소에서 일용직 노동자 10여명이 일거리가 주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도 허탕이네요. 가족들은 나만 바라보고 있는데 일거리는 없으니 죽을 맛입니다.”

5일 새벽 5시 30분. 광주시 북구 신안동 태봉근로자대기소에는 새벽부터 일거리를 찾아 모여든 50여명의 일용직 노동자들이 서로 눈치싸움을 하기에 바빴다.

광주·전남 건설경기가 최악인 상황에서 일감이 없어 오늘도 허탕칠수 없다는 간절함에 같은 처지임에도 앞다퉈 일자리를 얻기 위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른 아침부터 50여명의 일용직 노동자들은 인력사무소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16㎥(5평) 남짓 사무실에는 난로를 중심으로 노동자들이 모여 앉아 일감이 주어지기를 기다렸고, 앉을 자리를 찾지 못한 20여명은 사무실 밖으로 긴 줄을 이뤘다.

평소 같으면 도란도란 서로 안부를 묻고 농담을 주고받는 소리로 시끌벅적했을 일용직 노동자들은 이날 말 없이 신문을 펼치거나 휴대전화만 하염없이 들여다 보고 있었다. 최근 일감이 뚝 끊겨 일을 못나가는 날이 길어지자 일용직 노동자들은 “오늘은 일을 할 수 있을까”하며 침울해했다.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시기인 경칩(驚蟄)이 지나 봄이 찾아왔지만 광주지역 인력시장에는 여전히 찬바람이 불고 있다. 건설경기 불황이 이어지면서 일용직 노동자들을 찾는 신축 공사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30여년간 공사현장에서 일했다는 강민준(60)씨는 “지난주에도 2번밖에 일을 하지 못했는데 오늘은 일감이 있을지 모르겠다”며 “하루 일당이 16만원 정도인데 10% 수수료를 떼고나면 한달 150만원도 벌기 힘들 지경이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인력사무소 ‘터줏대감’이라는 안모씨(63) 역시 “재작년만해도 상황이 괜찮았지만 작년부터 점차 일이 줄더니 올 겨울에는 70% 가까이 줄었다. 이 인력사무소가 비교적 일감이 있는 편인데도 오늘 모인 사람 중 절반 이상이 공치고 돌아갈 것”이라며 “수입은 절반 이상 줄어드는데 물가는 계속 오르니 만원 하는 국밥 한 그릇 사먹기도 부담이다”고 한탄했다.

국가기술자격증도 얼어붙은 인력시장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용접기능사 자격증이 있다는 김덕민(42)씨도 일거리를 찾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다. 바쁠 때는 일주일에 5번씩 일을 나갔다는 김씨는 최근 일거리가 절반 이상 줄어들자 지난 주말 택배 일을 하기 위해 대전에 다녀왔다. 김씨는 “일 안하고 노느니 가능하면 택배 상하차라도 계속 하고 싶지만, 그쪽에도 대기하는 사람이 많은 듯하고, 농번기 농촌에 일감이 많다고 해 알아보니 대부분 외국인들이더라”며 “원래도 겨울철 일이 없기는 했지만 경기가 안좋다보니 최근에는 일거리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다”고 고개를 저었다.

송주찬(64) 인력사무소장은 “경기가 안좋은데다 금리가 높으니 신축 공사를 꺼리는 분위기다. 철거나 리모델링 공사 등에서 인력을 찾기도 하지만 2~3년 전과 비교하면 절반 가까이 줄었다”며 “전국적으로 상황이 안좋으니 일감을 찾아 타지역에서 찾아오기도 하고 전화도 오지만 ‘찾아와도 일을 못 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밖에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송 소장은 “경기가 괜찮을 때는 일은 많은데 사람이 없어 다른 인력사무소에 지원을 요청할 정도였는데 최근에는 꾸준히 나오는 사람들도 일을 못하고 있다”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 새벽같이 나와 기다리는데 대부분 일감을 받지 못하고 돌아가니 미안해서 눈을 못 마주치겠다”고 털어놨다.

일거리 분배가 거의 마무리되는 오전 7시께 호명된 이들은 짐을 챙겨 공사현장으로 떠났지만, 이름이 불리지 못한 이들은 줄담배를 피울 뿐이었다. 결국 이날 인력사무소에 모인 이들 중 20여명만이 일거리를 받았다. 그나마도 10여명은 공사현장에서 지명하는 ‘고정’인력으로, 대부분의 일용직 노동자들은 빈 손으로 돌아가야 했다.

새벽부터 나와 해가 뜰 때까지 2시간 가량을 기다렸던 20년 경력의 목수 조종필(66)씨도 결국 일감을 구하지 못하고 귀가했다. 조씨는 “목수 일이 없을 때는 인력사무소에 나오는데, 최근에는 목수 일도 일용직 일거리도 없다”며 “지난해 일하다 다쳐 몇개월을 쉬는 바람에 경제적 부담이 큰데 일이 없으니 어떻게 해야하나 싶다”고 터덜터덜 발길을 돌렸다.

상황은 다른 인력사무소들도 마찬가지다. 북구 양산동 소망직업소개소에는 이날 새벽 35명이 찾아왔지만 일을 받은 것은 10명뿐이었다. 김만영 소장은 “매일 30~50여명이 오는데 일거리를 받을 수 있는 건 10여명 뿐이다. 특히 지난 2월부터는 한겨울보다도 일이 없다”며 “봄이 오면 상황이 나아질지 모르겠지만,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닌 듯해 걱정스럽다”고 호소했다.

한편, 통계청 ‘2023년 건설업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3년 광주지역 건설공사액은 5조3250억원으로, 전년(5조8190억원)보다 8.5%(4940억원) 줄어들었다. 광주지역 건설공사액은 지난 2021년 6조590억원에서 2022년 5조8190억원 등 매년 하락을 거듭하고 있다.

/글·사진=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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