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정서와 정신을 시집과 평론집에 담다
2025년 03월 04일(화) 19:10
강진 출신 김선태 시인 최근 2권의 책 펴내
‘고조곤히 서러운 마을 이름들’, ‘남도 시문학의 어제와 오늘’
김선태 시인. <김선태 제공>
남도를 규정짓는 말 가운데 ‘예향’, ‘문향’이 있다. 남도만의 예술적 전통이 면면히 살아 있기 때문에 나온 말일 것이다.

남도의 정서와 정신을 일관되게 육화해온 시인이 있다. 김선태 시인(목포대 국문과 교수)이 그 주인공. 김 시인이 최근 ‘남도’를 기반으로 한 시집과 평론집을 펴냈다.

강진 출신으로 80년부터 목포에 거주하는 시인은 광주일보 신춘문예와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 후 지금까지 9권의 시집, 5권의 평론집을 발간했다.

이번에 고요아침에서 펴낸 ‘고조곤히 서러운 마을 이름들’, ‘남도 시문학의 어제와 오늘’은 그동안 시인이 천착해온 시 세계와 남도 시문학에 대한 글을 담고 있다.

“이번 1학기가 대학 마지막 학기인데 그 기념으로 두 권의 책을 냈습니다. 하나는 시집이고 하나는 평론집입니다. 비평은 우리 지역 작가들 위주의 작품을 분석하고 조명했어요.”

김 교수에 따르면 이번 시집은 지난 8시집 ‘짧다’를 펴낸 데 대한 반사적 의미가 있다. 한편으로는 서사가 들어 있기에 시의 호흡이 다소 긴 측면이 있다.

그는 “서사를 이야기시 또는 스토리텔링시라 명명하고 싶다”며 “여기에는 모두 내가 나고 자란 남도와 관련된 것들이 다수를 이룬다”고 했다.

AI시대 첨단 과학문명시대 이야기시가 다소 생뚱맞을 수 있다는 반응도 있겠다 싶다. 이에 대해 시인은 “과거는 그저 낡은 시간의 한 페이지가 아니다”며 “새롭다고 모두 좋은 것은 아니고 오래됐다고 가치가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제1부 ‘지울 수 없는 서사’는 시 한 편, 한 편이 모두 서사인 작품으로 구성돼 있다. ‘선택’, ‘선태’, ‘차중이 아재’, ‘점순이 누님’, ‘강남골 댁’, ‘석수쟁이’ 등의 시들은 저마다 사건 또는 서사를 갖춘 이야기시다.

남도의 어느 시골에는 있을 법한 인물들의 삶과 인생 여정이 녹아 있다. 시난고난했던 인생을 살아야 했던 이웃들의 이야기는 코끝을 찡하게 한다.

“옛날 오두막집에 가난한 석수쟁이 살았다.// 건넛마을 김 씨네 선산에 세울 비석 깎기를 마친 그는 주막에서 얼큰하게 취해 비틀비틀 집으로 돌아오던 어느 날 저녁 논둑길에서 그만 발을 헛디뎌 개울에 빠져 죽었다.// 마을 사람들이 시체를 건져 거적때기로 덮어둔 가을밤. 뒤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온 식솔들이 불어 터진 몸을 쥐어 뜯으며 차게 울었다.// 손은 여전히 돌 깨는 연장을 그러쥐고 있었다.// 학교를 그만둔 어린 아들이 일찌감치 아비의 업을 이었다.”

위 시 ‘석수쟁이’는 한편의 단편소설을 읽는 느낌을 환기한다. 소설의 일반적인 구조(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로 이루어져 있다. 가난한 석수쟁이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다 발을 헛디뎌 개울에 빠져 죽는다. 사람들이 거적때기로 시체를 덮어두었는데, 뒤늦게 소식을 들은 가족들이 와서는 목 놓아 운다. 시신의 손에는 연장이 들려 있다. 후일 아들은 학업을 중단하고 석수쟁이가 된다는 내용이다.

한편 이지엽 시인(경기대 명예교수)은 “시인은 유년 시절의 기억을 바탕으로 고향 사람들의 애잔하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와 본인과 얽힌 특별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재현하여 들려준다. 여울물처럼 조근조근 흘러가는 문체는 쉽게 읽히면서도 남도의 게미진 정서를 성근지게 버무려낸다”고 평한다.

평론집 ‘남도 시문학의 어제와 오늘’은 여러 매체에 발표한 남도 시문학에 관한 글을 모은 것이다. 김우진을 비롯해 박용철, 송수권, 최하림, 한승원의 시인론과 작품론을 만날 수 있다.

또한 저자는 애정어린 시선으로 남도문학, 강진문학, 목포문학, 신안문학, 영암문학, 완도문학 등 남도 지역의 문학을 다뤘다.

김 교수는 남도의 전통 문학정신을 풍류정신과 저항정신으로 규정한다. 온난한 기후와 비옥한 토양 등 지리적 여건이 풍부한 감수성으로 발현됐다는 얘기다.

“정신적으로 저항이며 정서적으로는 풍류이지요. 그 두 개의 흐름이 남도 문학을 이어왔습니다.”

그는 남도문학의 상징으로 대나무를 들었다. “태평세월에는 피리(악기)가 되지만 난세에는 죽창(무기)이 된다”며 “대나무 정신은 인심이 후하고 풍류를 좋아하되 불의를 보면 못 참는 남도인의 기질과도 직결된다”고 언급했다.

한편 김 시인은 애지문학상, 시작문학상, 송수권시문학상, 영랑시문학상, 전남도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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