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한 조각’으로 환자들 편안한 병원 만들겠다”
2025년 02월 23일(일) 20:30 가가
연고 없는 영광서 15년째 내과 운영 ‘시골의사’ 정해영씨
IT회사 다니다 서른에 전남대 의대행…KBS ‘인간극장’ 출연
“9년 전 위암진단 받고 인생 돌아봐…외국노동자도 적극 진료”
IT회사 다니다 서른에 전남대 의대행…KBS ‘인간극장’ 출연
“9년 전 위암진단 받고 인생 돌아봐…외국노동자도 적극 진료”
동이 트지도 않은 새벽, 환자들이 직접 병원 문을 연다. 온돌침대를 켜 놓고, 찜질팩 등을 정리하고, 직원들이 먹을 아침밥을 준비하는 것도 환자들 몫이다. 인근 주민들은 반찬 등 먹거리를 들고 수시로 병원을 찾는다. 누구든 편하게 오는 쉼터 같은 곳, 의사와 환자가 스스럼없이 대하고 진료를 보다가도 음식을 나눠 먹는 사랑방 같은 이 곳은 영광 재래시장 안에 위치한 영광미래의원이다.
“어렸을 때부터 경험한 병원은 딱딱하고 긴장감이 흘렀어요. 환자들이 쉽게 다가와 편하게 진료받을 수 있는 문턱이 낮은 병원을 만들고 싶었어요. 따뜻하고 사람 냄새 나는 병원에서 그들과 같이 생활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광주에 거주하며 연고 없는 영광에서 15년째 내과를 운영하는 시골의사 정해영(54·사진)씨. 그의 이야기가 최근 KBS ‘인간극장’에 나와 훈훈함을 자아냈다. 가운을 입지 않는 정 원장이 환자들을 부르는 호칭은 ‘엄마’, ‘아버지’, ‘삼촌’, ‘이모’다. 그는 고령의 어르신들이 옷을 입고 나가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환자를 배려해 양쪽에 침대를 두고 진료를 보고 있다.
“개원 당시 환자 한 분이 ‘요새 병원 가면 얼어죽겄어. 의사가 말도 한 마디 안 들어주고 야단 치니까 약만 타 와. 원장님처럼 웃는 의사는 처음 봤어’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제가 낮아져야 그들이 절 보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때부터 오시는 모든 환자들에게 와줘서 고맙다는 뜻으로 악수를 건네기 시작했어요. 저는 제가 의사라고 생각을 안 합니다. 단지 조금 다른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에요.”
서울대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한 후 외국계 IT회사에 취업한 그는 2년간 즐겁게 프로그래밍 일을 했다. 노후에 어떤 길을 걸을지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된 그는 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30살에 전남대 의대에 진학했다. 40살에 영광에 있는 친구를 따라 시골을 선택, 화려하진 않지만 따뜻한 병원을 만들 수 있겠다 싶어 무턱대고 시작했다.
2016년 위암 진단을 받은 그는 죽음 앞에서 삶을 돌아봤다.
“제가 이 땅에 왔다가는 이유를 고민해봤어요. 나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제 이름 ‘정해영’ 석자를 새겨놓고 가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절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병원을 개방하고, 둥지를 제공하며 옆에 있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함께 하는 직원들도 정 원장과 같은 마음으로 병원을 아끼고, 환자들을 사랑한다. 물리치료사 박재중 씨, 간호사 박영희 씨, 데스크 직원 김설 씨, 정 원장의 어머니인 약사 박순화씨 모두 ‘따뜻한 말 한 마디, 정 한 조각’이라는 병원 철학을 실천 중이다.
“그동안 직원들에게 일을 잘 하라고 말한 적 없어요. 환자들은 아파서 예민하지만, 그럼에도 ‘정 한 조각’만 나눠주라고 말해요. 저희가 나눠주는 정은 조금이지만, 아픈 그들이 받아들이는 따뜻함은 전부거든요.”
새벽부터 나와 직원들의 아침밥을 챙겨주는 이애순 할머니는 가장 애틋한 환자다. 청소, 필요한 물품 구비 등 병원의 살림을 책임져 주는 이 할머니를 직원들은 모두 ‘애순 엄마’라고 부른다. 정 원장의 표정만 봐도 어떤 마음인지 알고, 잘못된 소문이 나면 병원 대변인처럼 먼저 나서는 그는 정 원장의 가족같은 존재다. 정 원장은 “최근 애순엄마가 폐암이 의심돼 검사를 진행했는데 다행히 이상 없다는 결과가 나와 한시름 놓았다”며 “오가는 환자들에게 정이 들었고, 환자들 덕분에 치유 받은 일도 많다”고 말했다.
정 원장이 가장 기쁜 순간은 호전된 환자가 차 마시러 병원에 왔다는 말을 들을 때다. 의사로서 치료한 게 만족스럽고, 병원이 그가 바란대로 휴게소가 된 것 같아 뿌듯하다. 그는 병원 접근성이 떨어지는 시골의 어려운 어르신들과 더 나아가 불법체류자 등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더 열려있는 병원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의사이기 전에 사람 대 사람으로 아픔을 공감해주고, 따뜻한 말 한마디가 치료가 된다고 믿는 정 원장. 그는 앞으로도 친절한 동료들과 함께 시골 병원 이상한 진료실에서 환자들과 북적거리며 지내고 있을 것이다.
/양재희 기자 heestory@kwangju.co.kr
광주에 거주하며 연고 없는 영광에서 15년째 내과를 운영하는 시골의사 정해영(54·사진)씨. 그의 이야기가 최근 KBS ‘인간극장’에 나와 훈훈함을 자아냈다. 가운을 입지 않는 정 원장이 환자들을 부르는 호칭은 ‘엄마’, ‘아버지’, ‘삼촌’, ‘이모’다. 그는 고령의 어르신들이 옷을 입고 나가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환자를 배려해 양쪽에 침대를 두고 진료를 보고 있다.
2016년 위암 진단을 받은 그는 죽음 앞에서 삶을 돌아봤다.
“제가 이 땅에 왔다가는 이유를 고민해봤어요. 나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제 이름 ‘정해영’ 석자를 새겨놓고 가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절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병원을 개방하고, 둥지를 제공하며 옆에 있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함께 하는 직원들도 정 원장과 같은 마음으로 병원을 아끼고, 환자들을 사랑한다. 물리치료사 박재중 씨, 간호사 박영희 씨, 데스크 직원 김설 씨, 정 원장의 어머니인 약사 박순화씨 모두 ‘따뜻한 말 한 마디, 정 한 조각’이라는 병원 철학을 실천 중이다.
“그동안 직원들에게 일을 잘 하라고 말한 적 없어요. 환자들은 아파서 예민하지만, 그럼에도 ‘정 한 조각’만 나눠주라고 말해요. 저희가 나눠주는 정은 조금이지만, 아픈 그들이 받아들이는 따뜻함은 전부거든요.”
새벽부터 나와 직원들의 아침밥을 챙겨주는 이애순 할머니는 가장 애틋한 환자다. 청소, 필요한 물품 구비 등 병원의 살림을 책임져 주는 이 할머니를 직원들은 모두 ‘애순 엄마’라고 부른다. 정 원장의 표정만 봐도 어떤 마음인지 알고, 잘못된 소문이 나면 병원 대변인처럼 먼저 나서는 그는 정 원장의 가족같은 존재다. 정 원장은 “최근 애순엄마가 폐암이 의심돼 검사를 진행했는데 다행히 이상 없다는 결과가 나와 한시름 놓았다”며 “오가는 환자들에게 정이 들었고, 환자들 덕분에 치유 받은 일도 많다”고 말했다.
정 원장이 가장 기쁜 순간은 호전된 환자가 차 마시러 병원에 왔다는 말을 들을 때다. 의사로서 치료한 게 만족스럽고, 병원이 그가 바란대로 휴게소가 된 것 같아 뿌듯하다. 그는 병원 접근성이 떨어지는 시골의 어려운 어르신들과 더 나아가 불법체류자 등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더 열려있는 병원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의사이기 전에 사람 대 사람으로 아픔을 공감해주고, 따뜻한 말 한마디가 치료가 된다고 믿는 정 원장. 그는 앞으로도 친절한 동료들과 함께 시골 병원 이상한 진료실에서 환자들과 북적거리며 지내고 있을 것이다.
/양재희 기자 heestory@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