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개와 늑대의 시간 - 박용수 수필가·동신여고 교사
2025년 02월 10일(월) 00:00
늑대 하울링을 들은 지 벌써 두 달이 훌쩍 지났다. 착하게 산다곤 하지만 때론 나 역시 늑대가 된 적은 없었는지 자성해 본다.

세상엔 별의별 사람이 있다. 하지만 누구나 내 안에는 나 말고 또 다른 내가 몇 명은 있어서, 나도 모르게 늑대가 되는 때도 없지 않다.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하고, 속고 속이기도 한다. 애들처럼 짓궂게 놀기도 하고, 누군가를 신나게 비방하기도 한다. 그렇다가 귀가 시간이면, 거울 앞에서 애써 목청을 다듬고 표정도 얌전하게 고친다. 시치미를 딱 떼고 아홉 개의 꼬리도 감춘다. 그리고 마중 나온 아내나 자녀들에게 점잖은 강아지가 되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그럴 때면 나도 내가 개인지 늑대인지 헷갈린다.

연말, 지역 단체 문학상 심사 때 일이다. 심사위원은 다섯 명, 결선에 올라온 작품은 셋이었다. 지역 단체라 작가를 가려도 몇 줄만 읽어도 누구 작품인지 안다. 그런데 내 기준으로 제일 먼저 제외한 작품을 두 사람이 추천하고 나섰다. 사전에 눈을 맞춘 듯 했다. 조급해진 난 나머지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한 사람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여 주었다. 결과는 2 : 2 : 1, 심사 일정을 하루 연기하기로 했다.

로비 없는 상은 없다고 한다. 연말에 쏟아지는 각종 상은 치열할수록 물밑 작업도 장난이 아니다. 그래서 터무니없는 수상자가 선정되기도 한다.

문학, 특히 소설과 희곡을 읽는 재미는 갈등이 포인트다. 능숙한 독자는 복잡하고 다양한 갈등이라도 금방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낸다. 문제는 심리적 갈등이다. 좋은 작품일수록 누가 개이고 또 누가 늑대인가를 구별할 수 없게 만든다. 그래서 전문적 독자라도 그 심오한 세계까지 인물의 심리를 읽는 일은 쉽지 않다.

영화 ‘육사오’는 로또를 두고, 남북한 젊은이들의 현실적인 고민을 재밌게 풀어내고 있다. 낄낄거리다가 복권 문제가 아니라 분단과 통일 문제라는 걸 깨닫고 정신을 차린다. ‘웰컴 투 동막골’, ‘공동경비구역 JSA’, ‘백두산’ 등도 구조나 맥락이 유사하다. 적대적 냉전 속에서 따뜻한 희망을 그려낸 영화이다. 등장인물들은 수차례 개가 되었다가 늑대가 되는 과정을 되풀이 한다. 그건 우린 늑대보다 개의 속성, 차이점보다 동질성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는 반문이다.

누구나 자기를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막상 눈앞의 이익이 닥치면 누구나가 발톱이 드러나고 눈빛이 달라진다. 개와 늑대의 시간은 꼭 어슴푸레한 초저녁 시간만이 아니다. 요즘은 해가 중천에 뜬 대낮에도 손톱과 송곳니를 드러낸다. ‘지킬박사’가 되느냐 ‘하이드 씨’가 되느냐는 순간이다.

아쉽게 문학상 수상자는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나이를 먹으면 많은 것을 내려놓는 게 노인이란 생각이 틀렸음을 처절이 깨닫는 순간이었다. 늙은 신체와 달리 욕망은 되레 더 시뻘겋게 눈을 뜬다는 것을 안 시간이었다. 해방 전후, 그리고 한국 전쟁과 유신 독재까지 온갖 처세술과 변신술로 생존했던 사람들이다. 순한 강아지로 태어나서 늑대로 죽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생각하니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계엄 이후, 무척 혼란스럽다. 서로 주린 늑대처럼 으르렁거린다. 내 편이 아닌 부류를 배척한다. 계엄을 선포해서라도 내 마음껏 하고 싶다. 그게 늑대다. 나치와 일제가 그랬고,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이 그랬다.

늑대의 피는 유전되는지, 그 무리들이 백주에 활보하고 있다. 정작 우두머리 늑대는 자기가 늑대가 아니란다. 남북을 가르고, 동서를 철저히 가르던 늑대, 철창에 꼭꼭 가두어야 한다. 순한 개처럼 꼬리를 내리고 있지만, 나오는 순간 더는 붙잡을 수 없는 미친 늑대가 될 것이다.

늑대가 되지 않으려고 공부를 해야 한다. 법만도 아니고, 기술만도 아니다. 철학, 역사, 종교, 도덕 공부는 물론 마음공부까지 두루두루 해야 한다. 시도 읽고, ‘육사오’도 봐야 한다.

더는 수상 내역만 보고 그 작가를 평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도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만 늑대가 되지 않는다. 오늘도 또 밤은 온다. 자꾸 목이 가려워진다. 내 목에서 “멍멍” 개 짖는 소리가 날 지, “우우” 하울링 소리가 날 지, 나도 모른다.

실시간 핫뉴스

많이 본 뉴스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