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로 위안을 주던 ‘국민 가수’ 송대관은 누구
2025년 02월 07일(금) 18:05
‘인정많은 아저씨’로 데뷔 후 ‘해뜰날’, ‘네박자’ 등 히트
서민적인 노랫말과 감성, 구수한 입담으로 사랑받아

트로트 가수 송대관이 7일 오전 향년 79세 나이로 별세했다. /연합뉴스

지난 7일 우리 곁을 떠난 ‘국민 가수’ 송대관은 7080 한국 대중음악을 대표하던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1946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고인은 전주서중, 전주영생고를 졸업했다. 1967년 ‘인정많은 아저씨’로 데뷔하면서 이름을 알렸지만 오랫동안 무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1975년 신곡 ‘해뜰날’이 큰 히트를 치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쨍 하고 해뜰 날 돌아온단다”는 희망적인 노랫말과 중독성 있는 멜로디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다.

1976년 MBC ‘최고가수대상’을 시작으로 1999년 ‘한국방송대상 가수상’, 같은 해 ‘영상음반대상(골든디스크)’ 본상을 수상했으며 2001년 ‘옥관문화훈장’, 이후 KBS와 SBS 등에서 가수상을 석권했다.

1981년에는 돌연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한동안 브라운관에서 그를 볼 수 없었다. 이후 1989년 ‘혼자랍니다’로 복귀했으며 ‘차표 한 장’과 ‘고향이 남쪽이랬지’ 등이 연달아 히트하면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외에도 ‘정 때문에’, ‘딱 좋아’, ‘분위기 좋고’ 등 대중적이고 친근한 노래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으며 최근까지도 ‘지갑이 형님’을 발표하는 등 무대에 대한 열정을 과시했다.

한때 “태진아는 충청도, 송대관은 전라도, 설운도와 현철은 경상도를 대표한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고인은 호남을 대표하는 ‘트로트 4대 천왕’ 중 한 축을 형성하기도 했다. 가수 태진아와는 ‘라이벌 기믹(속임수)’을 형성하며 TV 토크쇼나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인기를 끌었다.

히트곡 가운데 삶의 희로애락을 담은 ‘네박자’, ‘유행가’ 등은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서민적인 노랫말과 구수한 입담은 가수로서뿐 아니라 예능적인 부분에서도 그를 존재감있는 가수로 돋보이게 했다.

그러나 생전 고인에게는 어려움도 뒤따랐다. 부인이 2009년 마카오에서 원정 도박을 한 혐의로 2011년 기소, 벌금형을 선고받았기 때문. 당시 집을 담보로 대출받았다가 갚지 못한 금액이 10억 여원이고 그 외 여러 빚을 합해 알려진 금액만 적지 않은 액수였다. 이 사건 등으로 인해 KBS와 MBC 등에서 ‘출연 정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 같은 역경도 노래와 무대에 대한 그의 열정을 꺾지는 못했다. 2023년 ‘송대관 콘서트’를 비롯해 ‘송대관VS태진아 라이벌 콘서트’, 2020년 ‘인제 트롯 페스타’,‘PAMF 팝켓 아시아 뮤직페스티벌’ 등 매년 꾸준히 무대에 올랐다.

또한 ‘싱어즈’, ‘웰컴 투 힐링타운’, ‘신기생뎐’ 등 방송활동을 이어갔고 자신의 히트곡 이름을 딴 영화 ‘해 뜰 날’에서 주연을 맡으며 멀티 플레이어의 면모도 보여줬다.

한편 고인의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

/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