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본 윤동주의 삶과 시
2025년 02월 05일(수) 19:40 가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 80주기
써보면서 기억 ‘필사북’ 출간
올해 ‘동주문학상’ 10주년 맞물려
시산맥, 간담회·심층 기획 계획도
日 도지샤대학 명예박사 수여키로
써보면서 기억 ‘필사북’ 출간
올해 ‘동주문학상’ 10주년 맞물려
시산맥, 간담회·심층 기획 계획도
日 도지샤대학 명예박사 수여키로
지난해 광주 출신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문학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올해는 한국 문학의 위상이 더욱 강화되고 세계 독자들을 향해서도 가까이 다가가는 해가 될지 관심이 주목된다.
무엇보다 올해는 문학사적으로 의미있는 해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민족시인 윤동주 시인의 80주기가 되는 해다. 해방 80년이라는 벅찬 감격과 희망 이면에 윤동주 시인의 요절이라는 문학사적 큰 상실이 연계돼 있다.
80주기를 앞두고 윤동주 시집 필사북이 출간되고, 시인의 삶과 문학 정신을 되새기는 간담회 등이 열릴 예정이어서 눈길을 끈다.
또한 시인이 유학했던 일본 도지샤 대학은 지난해 12월 명예박사 학위 수여를 결정하는 등 국내 안팎에서 윤동주를 기리는 행사들이 이어질 전망이다.
오는 16일은 윤동주 시인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한지 80년이 되는 날이다. 조국 해방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28세라는 푸른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강제로 투여한 생체실험 주사가 사인이었을 것이라고 전해진다.
윤동주 시인은 북간도 용정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이 지역 일대는 구한말 독립투사들이 조국독립을 위해 항일투쟁을 벌인 곳이다. 이와 맞물려 근대 민족교육도 활발하게 펼쳐지기도 했다.
명동소학교, 광명중학교를 거쳐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를 졸업했다. 이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릿쿄대에 입학하고 이후 도지샤대학으로 옮긴다.
그러나 윤동주 시인은 1943년 7월 일본 경찰에 체포된다. 고종사촌 송몽규는 윤동주보다 4일 전인 7월 10일에 붙잡혔다. 내향적이고 신중한 성품의 소유자였던 윤동주가 붙잡힌 것은 사상범이라는 이유였다.
송우혜의 ‘윤동주 평전’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 “‘중심인물은 송몽규이고 윤동주가 그에 동조했고, 이 사건으로 검사국(요즘의 검찰청)에 송국된 사람은 송몽규, 윤동주, 고희욱 3인’이었다는 사건의 전모와 경찰 수사 종결의 결과가 밝혀졌다.”
이에 앞서 윤동주는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을 계기로 민족의식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노력을 다각도로 기울였다. 독립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절감했던 것이다.
윤동주가 옥사했던 후쿠오카 형무소는 현재 ‘후쿠오카 구치소’로 바뀌었다. 구치소 멀지 않은 곳에 해변이 있다고 한다. 밤이면 귓가를 적시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시인은 밤새 조국의 독립을 희원했을 것이다.
광주일보와 동주문학상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 계간 ‘시산맥’은 올해 문학상 10회째를 맞아 윤동주 시인을 기리는 간담회와 심층 기획을 계획하고 있다.
동주문학상은 윤동주 시인의 ‘서시’에 담긴 시 정신을 구현하고 이를 널리 확산하기 위해 지난 2016년 제정됐다. 이후 2019년부터 동주문학상으로 이름을 바꿔 운영해오면서 윤동주의 민족정신과 시혼을 널리 알리고 있다.
상금 1000만원을 내걸고 10년째 문학상을 지속적으로 운영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만큼 윤동주 시인이 지향했던 가치와 정신을 널리 알리자는 취지다.
최근 발간된 윤동주 시집 필사 북은 시를 옮겨 적으며 의미와 정신을 되새길 수 있다. 민윤기 시인이 해설을 맡은 ‘문해력을 위한 윤동주 전 시집 필사 북’(스타북스)은 어휘와 문장을 통해서 시인을 만날 수 있다.
출판사에 따르면 시집 표기는 가능한 현대어 표기법을 따르면서 읽기에 지장이 없는 한 당시의 표기법 그대로를 준용했다. “원문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고자 했으며, ‘얼골/얼굴’ ‘코쓰모쓰/코스모스’ 등 발간 연도에 따라 다르게 실린 몇몇 단어는 그 변화가 와 닿을 수 있도록 당시에 발간된 대로 표기하였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시인을 기억하는 행사들이 펼쳐진다. 지난해 12월 윤동주가 다녔던 도지샤대는 학장단 회의를 열어 윤동주 시인에 대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수여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1875년 설립 이후 도지샤대가 고인에게 명예 박사학위를 주기로 한 결정은 사상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 측은 “재학 중 체포돼 숨진 윤 시인을 대학 측이 지켜주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이 담긴 특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무엇보다 올해는 문학사적으로 의미있는 해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민족시인 윤동주 시인의 80주기가 되는 해다. 해방 80년이라는 벅찬 감격과 희망 이면에 윤동주 시인의 요절이라는 문학사적 큰 상실이 연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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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시인이 유학했던 일본 도지샤 대학은 지난해 12월 명예박사 학위 수여를 결정하는 등 국내 안팎에서 윤동주를 기리는 행사들이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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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용정 명동촌에 있는 윤동주 시인의 생가. |
그러나 윤동주 시인은 1943년 7월 일본 경찰에 체포된다. 고종사촌 송몽규는 윤동주보다 4일 전인 7월 10일에 붙잡혔다. 내향적이고 신중한 성품의 소유자였던 윤동주가 붙잡힌 것은 사상범이라는 이유였다.
송우혜의 ‘윤동주 평전’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 “‘중심인물은 송몽규이고 윤동주가 그에 동조했고, 이 사건으로 검사국(요즘의 검찰청)에 송국된 사람은 송몽규, 윤동주, 고희욱 3인’이었다는 사건의 전모와 경찰 수사 종결의 결과가 밝혀졌다.”
이에 앞서 윤동주는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을 계기로 민족의식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노력을 다각도로 기울였다. 독립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절감했던 것이다.
윤동주가 옥사했던 후쿠오카 형무소는 현재 ‘후쿠오카 구치소’로 바뀌었다. 구치소 멀지 않은 곳에 해변이 있다고 한다. 밤이면 귓가를 적시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시인은 밤새 조국의 독립을 희원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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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윤동주 시인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숨을 거둔 지 80주년이 되는 해다. 서울 윤동주문학관. <광주일보 자료> |
동주문학상은 윤동주 시인의 ‘서시’에 담긴 시 정신을 구현하고 이를 널리 확산하기 위해 지난 2016년 제정됐다. 이후 2019년부터 동주문학상으로 이름을 바꿔 운영해오면서 윤동주의 민족정신과 시혼을 널리 알리고 있다.
상금 1000만원을 내걸고 10년째 문학상을 지속적으로 운영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만큼 윤동주 시인이 지향했던 가치와 정신을 널리 알리자는 취지다.
최근 발간된 윤동주 시집 필사 북은 시를 옮겨 적으며 의미와 정신을 되새길 수 있다. 민윤기 시인이 해설을 맡은 ‘문해력을 위한 윤동주 전 시집 필사 북’(스타북스)은 어휘와 문장을 통해서 시인을 만날 수 있다.
출판사에 따르면 시집 표기는 가능한 현대어 표기법을 따르면서 읽기에 지장이 없는 한 당시의 표기법 그대로를 준용했다. “원문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고자 했으며, ‘얼골/얼굴’ ‘코쓰모쓰/코스모스’ 등 발간 연도에 따라 다르게 실린 몇몇 단어는 그 변화가 와 닿을 수 있도록 당시에 발간된 대로 표기하였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시인을 기억하는 행사들이 펼쳐진다. 지난해 12월 윤동주가 다녔던 도지샤대는 학장단 회의를 열어 윤동주 시인에 대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수여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1875년 설립 이후 도지샤대가 고인에게 명예 박사학위를 주기로 한 결정은 사상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 측은 “재학 중 체포돼 숨진 윤 시인을 대학 측이 지켜주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이 담긴 특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