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정동에 남은 유류고] 항공유·탄약 저장한 수십미터 인공 동굴…강제동원 조선인의 피·땀·눈물 고스란히
2025년 02월 03일(월) 07:30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4기 동굴과
마륵동 사월산 3기 동굴, 대표 군 시설
물품 보관·이동 위해 직선 형태로 조성
日, 패전 전까지 항공유·가스톨유 등 비축
1945년 패전 후 방치…6·25땐 국군탄약고로
현재 1기 외 예산 부족 탓 균열·누수 방치

광주시 서구 화정동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인근에 있는 일제 동굴 2기.

광주일보가 최근 찾은 화정동 동굴은 일제 시대부터 설치돼 있던 붉은 철제 격자 문 너머로 수십여년 전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이 동굴은 일제시대 일본군 비행장과 관련된 지하시설이다.

일제가 광주시 서구에 지은 ‘광주 항공기지’ 활주로 등은 자취를 감췄지만, 항공기 연료와 탄약 등을 저장하기 위해 광주·전남·북 조선인들을 강제 동원해 구축한 인공 동굴은 80여년이 지났지만 남아있는 것이다.

녹이 슬어 ‘끽끽’ 소리를 내는 철문 잠금 장치를 풀고 들어간 동굴 내부에서는 의외로 동굴 특유의 눅눅함이 아닌 선선한 공기가 느껴졌다.

말굽 모양으로 뚫어놓은 동굴 내벽은 마치 콘크리트를 여러 겹 쌓아 올려 아치형 구조를 만든 것처럼 보였다. 일정한 간격으로 나무 판자를 대고 콘크리트를 부어 가며 동굴을 건설한 흔적이었다. 매끈한 벽면에 반듯한 직선 형태로 만들어진 동굴은 수풀이 무성한 주변 산지와 어울리지 않는 위화감도 풍기고 있었다.

동굴 안은 앞 뒤 출입구에서 들어오는 빛을 제외하고는 온통 어둠 뿐이었고, 수십여m 길이의 동굴을 손전등 불빛에만 의지해 걷다 보니 끝이 안 보이는 듯한 착각도 불러일으켰다. 강제 동원돼 어둠 속에서 동굴을 파내야 했던 조선인들에게는 한없이 어두운 심연이었으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화정동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앞마당에 남아 있는 4기의 동굴과 마륵동 사월산에 파 놓은 동굴 3기 등은 일제의 대표적인 군시설이다.

화정동 동굴은 일제의 동굴 중에서도 가장 긴 동굴이자 직선으로 만들어진 독특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는 물품을 보관하고 이동하기 편리하게 하면서도 적의 폭격과 폭발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만든 것이다.

각 동굴의 폭은 2.25m 안팎이며, 높이는 2.8m 수준이다. 길이는 짧게는 55.65m에서 길게는 81.95m까지 다양하며, 그 중 한 동굴은 중심부에 폭 3.98m, 높이 3.45m로 넓어지는 구간도 갖고 있다. 인근 사유지에 조성돼 있는 한 동굴은 비슷한 규모에 ‘ㄱ’자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이들 동굴은 양쪽 끝에 출입구를 각각 조성해 공기가 잘 통하게 만든 것이 특징이다. 다만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앞 3기 중 2기는 기념관 건설 과정에서 동굴 끝을 일부 철거해 현재는 한쪽 끝이 막혀 있다.

화정동 동굴 연구를 주도해 온 신주백 박사(전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은 “일본군이 패전 이후 미군에게 전달한 보고서 상 화정동 동굴은 연료고로 활용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일제는 패전 직전까지 동굴에 항공91휘발유, 항공87휘발유, 항공광유, 알코올, 석유, 항공85휘발유, 항공80휘발유, 가스톨유(피마자유) 등을 비축해 뒀다”고 설명했다.

일제가 만든 화정동 동굴 내부.
동굴은 비행장으로부터 2.5㎞ 떨어져 있는데, 이는 미국 공군 등에게 연료고의 위치를 들키지 않기 위한 조치로 추정하고 있는 것이다. 흙을 퍼내다가 동굴 위쪽으로 쌓아 올려 야산을 조성하는 위장 전술을 적용하기도 했다는 것이 신 박사의 연구결과다.

또한 전쟁 말기 철이 부족해지자 철근 없이 콘크리트로만 동굴 내벽을 만드는 등 급조한 흔적도 남아 있다.

동굴은 1945년 8월 일제의 패전 이후 별다른 조치 없이 방치됐다. 화정동 주민들은 동굴에서 기름이 든 드럼통 등을 꺼내와 기름집에 팔았고, 6·25전쟁이 터진 이후로는 국군 탄약고, 인민군 주둔지 등으로 이용됐다. 국군은 전쟁 이후 육군화학학교의 연막탄 체험 화생방 훈련장, 보병학교 훈련장 등으로 활용했다.

신주백 박사는 “광주 화정동 동굴은 전국적으로도 일제가 만든 동굴 중 일직선으로 가장 긴 특이한 동굴이자 광주에 얼마 남지 않은 일제 항공 시설의 잔재로서 의미가 깊다”며 “항공 시설로서 일제가 광주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다는 증거이자 강제 동원된 광주, 전남·북 조선인들의 피와 땀, 고통이 섞인 결과물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현재 동굴은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동굴 1기를 제외하고 전부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동굴 바닥에는 인근 산에서 흘러내린 흙과 돌무더기가 쌓여 있고, 동굴 내벽과 바닥 곳곳이 세월을 못 이기고 금이 가 외부에서 유입된 물이 흘러 물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지난 2015년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에서 조사한 안전관리등급은 C등급(보통 등급, 보조부재에 손상이 있어 보강 또는 일부시설 대체가 필요한 상태)이었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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