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뜨거운 자리 - 박용수 수필가·동신여고 교사
2025년 01월 20일(월) 00:00 가가
쏜살같다. 꼭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배들이 속도를 낸다. 경주를 하나? 아니면 무슨 급박한 사고가 났나? 정신이 없다. 얼마 뒤, 배가 멈춘 곳, 주변엔 먼저 온 배들만 가득하다.
자리를 잡기 위해서란다. 아니 좋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란다. 넓은 바다라고 아무 곳에서나 고기가 잡히지 않는단다. 포인트가 따로 있단다. 그곳,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달린 셈이다. 바다는 차갑다. 하지만 그곳 자리만큼은 정말 뜨거운 자리다.
어부들만 그런가. 좋은 자리는 차지하기도 어렵지만, 지키기는 더 어렵다.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려 몸싸움하는 농구선수처럼, 우린 늘 자리 신경을 쓰고 산다. 밤마다 불을 밝히는 뜨거운 등대처럼, 우리 역시 자기 또는 자기 가족을 지키기 위해 등대보다 더 뜨겁게 삶의 불을 밝히고 살아간다. 이 얼마나 뜨거운 자리인가.
학기 말, 선생님들은 바쁘다. 성적처리와 생기부 작성으로 눈코 뜰 새도 없다. 또 1년간 정든 학생들과도 헤어져야 한다. 그런 와중에 교정을 떠나는 선생님도 있다. 요즘 학교는 학생 수 감소가 심하다. 그로 인해 비정규직 선생님들도 적지 않다. 연말이 되면, 어떤 샘은 더 좋은 자리를 찾아 떠나지만, 또 어떤 선생님들은 갓 졸업한 선생님들과 자리 경쟁해야 한다. 누구에게는 아무 관심 없는 책상 1개, 의자 1개 차지하는 1평 남짓한 자리겠지만, 그 자리는 젊은이들에게는 연말이 되면 감당해야 할 생의 무게가 느껴지는 간절한 자리다. 엉덩이 하나 붙일 곳이 없는 젊은이에게는 목구멍 뜨거운 자리인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수많은 자리 중, 한두 자리를 차지하고 살아간다. 직장에서는 직원, 사회에서는 아저씨, 집에서는 아버지, 심지어 각종 모임이나 계에서조차 총무나 회원 등등 그 자리가 있어서 그 자리를 위해 기꺼이 등이 휘도록 뜨겁게 살아간다. 마치 팽이나 자리돔처럼 그 자리를 빙빙 맴돌며 쓰러지지 않고 산다. 붕어빵 굽는 자리, 시장 어물전 자리, 노점상 자리, 비록 어느 외진 고샅 포장마차일지언정, 우리는 모두 그 자리가 있어서 웃고 울며, 그 자리가 무사해서 또 편히 잠을 잔다. 껌보다 더 착 달라붙어 절대 떨어져서는 안 되는 곳, 생을 뜨겁게 달궈주는 자리다.
우리는 오늘도 희망을 품고 산다. 그 희망이란 높고 빛나는 자리다. 그래서 힘든 오늘도 어려운 일도 견뎌낸다. 하지만 그런 자리라고 꼭 고고한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고려나 조선의 왕, 근대의 위정자들이 앉은 왕좌는 찬란한 금빛보다 늘 피비린내가 가시지 않았다.
난 그런 근엄하고 권위 있는 자리보다 매일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자리, 누군가를 출근시키기 위해 앉아야 하는 버스 운전석 자리, 청소부, 컴컴한 공장의 자리, 어느 집 가득 찬 분뇨를 치우러 가는 이의 작고 소소한 자리가 몇 배는 더 눈물겹게 소중한 자리라고 생각한다.
비록 외진 구석일망정 시장 고샅은 할머니에게는 왕좌보다 더 소중하고 찬란하며 긴요한 자리다. 근엄하지 않아도 좋다. 미천한 자리일망정 소중하다고 꽉 붙잡고 최선을 다하고 살아가는 이가 앉은 그 자리야말로 권위 있는 자리고, 작고 볼품없는 자리일지라도 고맙게 여기며 살아가는 그 사람이 몇 배는 더 그 자리에 어울리는 훌륭한 사람이다. 멋지게 우승 트로피를 앞에서 높게 들고 있는 선수 못지않게, 뒤에서 응원을 아끼지 않은 아버지 자리, 어머니 낮은 자리가 더 높고 더 숭고하다.
우리 모두 이렇게 애면글면 차지한 자리지만, 실상 영원한 자리는 하나도 없다. 어렵게 차지한 만큼 내려오는 길도 험난하다. 계급장을 떼고, 모두 아저씨 아주머니로 돌아와야 하는 퇴직의 자리, 누구도 반기지 않는 자리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역시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뜨거운 자리다.
요양병원에 길게 늘어진 자리, 승화원의 1000도가 넘는다는 화구, 그 뜨거운 자리, 그곳 또한 내가 들어가야 할 마지막 자리는 아닐까.
여하간 요즘 미치광이 한 녀석 때문에 세상이 시끄럽다. 무엇보다 사는 동안 앉을 자리, 앉지 말아야 할 자리, 잘 구별하고 살아야지 싶다.
자리를 잡기 위해서란다. 아니 좋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란다. 넓은 바다라고 아무 곳에서나 고기가 잡히지 않는단다. 포인트가 따로 있단다. 그곳,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달린 셈이다. 바다는 차갑다. 하지만 그곳 자리만큼은 정말 뜨거운 자리다.
우리는 오늘도 희망을 품고 산다. 그 희망이란 높고 빛나는 자리다. 그래서 힘든 오늘도 어려운 일도 견뎌낸다. 하지만 그런 자리라고 꼭 고고한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고려나 조선의 왕, 근대의 위정자들이 앉은 왕좌는 찬란한 금빛보다 늘 피비린내가 가시지 않았다.
난 그런 근엄하고 권위 있는 자리보다 매일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자리, 누군가를 출근시키기 위해 앉아야 하는 버스 운전석 자리, 청소부, 컴컴한 공장의 자리, 어느 집 가득 찬 분뇨를 치우러 가는 이의 작고 소소한 자리가 몇 배는 더 눈물겹게 소중한 자리라고 생각한다.
비록 외진 구석일망정 시장 고샅은 할머니에게는 왕좌보다 더 소중하고 찬란하며 긴요한 자리다. 근엄하지 않아도 좋다. 미천한 자리일망정 소중하다고 꽉 붙잡고 최선을 다하고 살아가는 이가 앉은 그 자리야말로 권위 있는 자리고, 작고 볼품없는 자리일지라도 고맙게 여기며 살아가는 그 사람이 몇 배는 더 그 자리에 어울리는 훌륭한 사람이다. 멋지게 우승 트로피를 앞에서 높게 들고 있는 선수 못지않게, 뒤에서 응원을 아끼지 않은 아버지 자리, 어머니 낮은 자리가 더 높고 더 숭고하다.
우리 모두 이렇게 애면글면 차지한 자리지만, 실상 영원한 자리는 하나도 없다. 어렵게 차지한 만큼 내려오는 길도 험난하다. 계급장을 떼고, 모두 아저씨 아주머니로 돌아와야 하는 퇴직의 자리, 누구도 반기지 않는 자리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역시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뜨거운 자리다.
요양병원에 길게 늘어진 자리, 승화원의 1000도가 넘는다는 화구, 그 뜨거운 자리, 그곳 또한 내가 들어가야 할 마지막 자리는 아닐까.
여하간 요즘 미치광이 한 녀석 때문에 세상이 시끄럽다. 무엇보다 사는 동안 앉을 자리, 앉지 말아야 할 자리, 잘 구별하고 살아야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