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우리 함께 평화를 - 김향남 수필가
2025년 01월 13일(월) 07:00 가가
한 해가 지나가고, 또 한 해가 시작된 지 보름이 되어 간다. 이즈음을 좀 더 경건하고 성스럽게 보내야 하는데 무겁게 내려앉기만 하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숨소리는 거칠고 입은 자꾸 험악해지고 가슴은 더 답답해져서 뭐 마려운 개처럼 안절부절못한다. 전에 없이 화도 나고 짜증도 나고 불안하고 뒤숭숭하다. 이게 대체 무슨 까닭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저 ‘네모’들(텔레비전과 컴퓨터와 스마트폰 등)을 추궁해볼 수밖에 없다. 요즘 들어 부쩍 보는 시간이 늘어난 텔레비전도, 늘 옆에 있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도 내 삶을 크게 확장해 준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내 삶을 크게 방해하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저들은 아무 말도 없이 내내 침묵하고 있다가도, 살짝 아는 척이라도 좀 했다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혼을 쏙 빼놓는다. 알아두면 쓸 데 있는 것인 줄 모르지 않으나 건성건성 흘려듣기 일쑤인데, 그런 건 하등의 문제가 아니라는 태도다.
세상 온갖 것을 보여주고 들려주고자 하는 ‘네모’들의 일념에 나도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 모든 것이 다 그 안에 있으니까. 그곳에서 길을 찾고 시간을 보내고 뭔가를 만들어내기도 하니까. 재미도 있고, 새롭게 배울 점도 있고, 그리고 제법 유의미한 시간이었다고 자평할 때도 많으니까. 무엇보다 우리의 삶은 이미 그에 기반해 있으니까. 모든 연결의 끈이 거기에 있으니까.
문제는 저 첩첩한 성채를 둘러싼 오리무중인 이야기다. 시대극이라고 해야 할까, 난투극이라고 해야 할까.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전무후무한 이야기를 속수무책 바라보게 하는 데 있다. 도무지 수긍할 수 없는 허접한 인물들과 그들이 벌이는 참람한 이야기를 중개방송 하듯이 숨 가쁘게 내보내는 것이다. TV를 보다가 스마트폰을 뒤졌다가 울분을 토했다가, 연말연시를 다 허비하게 하는 것이다. 글이라도 써보겠다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가 또 하릴없이 뉴스를 기웃거리게 하는, 한사코 보여주고 들려주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달포 전, 한밤중에 뜬금없이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하마터면 온 나라가 쑥대밭이 될 뻔했다. 극적으로 무산되기는 했으나 격한 후폭풍에 시달리며 여전히 갈피를 못 잡는 상태다. 그 와중에 또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항공기가 추락해 수많은 사람이 한순간에 목숨을 잃게 됐다. 희생된 사람들은 모두 이 땅의 장삼이사 우리의 이웃이었다. 서로서로 가족이고 친구이자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지니고 온 모처럼의 추억은 산산이 부서져 허공 중에 흩어졌고, 세상은 삽시간에 격한 슬픔으로 뒤덮였다.
격한 분노, 격한 슬픔. 격한 충돌, 격한 저항…. 세상이 온통 격한 것들로 차 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이 터질지 모르는, 세상은 다시 아수라장이다. 온갖 아수라들이 모여서 또 다른 아수라장을 만들고 있다. 힘과 권력, 돈과 욕망, 부정과 부패, 폭력과 야만, 혼돈과 파괴, 온갖 부조리로 얼룩진 아수라의 시대는 신화 속에만 있었던 게 아니다. 성난 그들은 먼먼 시간의 머신을 타고 내려와 지금 여기, 우리를 점령해 버렸다. 회귀한 아수라들이 음산하게 떠돌고 있는 여기, 이 아수라장, 우리가 사는 세상.
모두가 불면의 밤을 앓고 있다. 안 보고 안 들으면 그만이겠지만 눈앞의 현실이니 그럴 수도 없다. 사방이 ‘네모’ 천지에다 어딜 가나 그 얘기뿐이니 피하기도 쉽지 않다. 아예 눈 감고 귀 막은 채 독야청청 산다면 모를까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일이다. 텔레비전이 스마트폰이 무슨 죄가 있는가.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꼴이다. ‘네모’들은 다만 보여주고 들려주며 제 임무에 충실했을 뿐인데, 공연히 애먼 탓을 하는 거다. 울분을 토하고 슬픔에 잠기고 다시 접속하는 일은 온전히 내 몫일 따름, 누구도 강요한 것이 아닌데 말이다.
지금은 깊은 밤, 어디선가 새벽닭이 우는 시간이다. 텔레비전은 잠들어 있고 스마트폰도 쉬고 있는, 컴퓨터 모니터만 하얗게 밝아 있다. 백색의 모니터 위에 천천히 까만 글자들이 박히는 중, 문득 창밖으로 어른거리는 게 있다. 눈이다! 눈이 오고 있다. 아무 딴소리도 내지 않고 그냥, 펄펄 오고 있다. 이 시간만큼은 착실하게 평화롭다. 모든 격한 것들이 가라앉고 철없이 몰아치던 바람도 잠잠하다. 득실거리던 아수라도 놀라 달아나고, 너와 나의 슬픔도 포근히 덮일듯싶다.
고요한, 흰 아침에는 우리 함께 평화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달포 전, 한밤중에 뜬금없이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하마터면 온 나라가 쑥대밭이 될 뻔했다. 극적으로 무산되기는 했으나 격한 후폭풍에 시달리며 여전히 갈피를 못 잡는 상태다. 그 와중에 또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항공기가 추락해 수많은 사람이 한순간에 목숨을 잃게 됐다. 희생된 사람들은 모두 이 땅의 장삼이사 우리의 이웃이었다. 서로서로 가족이고 친구이자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지니고 온 모처럼의 추억은 산산이 부서져 허공 중에 흩어졌고, 세상은 삽시간에 격한 슬픔으로 뒤덮였다.
격한 분노, 격한 슬픔. 격한 충돌, 격한 저항…. 세상이 온통 격한 것들로 차 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이 터질지 모르는, 세상은 다시 아수라장이다. 온갖 아수라들이 모여서 또 다른 아수라장을 만들고 있다. 힘과 권력, 돈과 욕망, 부정과 부패, 폭력과 야만, 혼돈과 파괴, 온갖 부조리로 얼룩진 아수라의 시대는 신화 속에만 있었던 게 아니다. 성난 그들은 먼먼 시간의 머신을 타고 내려와 지금 여기, 우리를 점령해 버렸다. 회귀한 아수라들이 음산하게 떠돌고 있는 여기, 이 아수라장, 우리가 사는 세상.
모두가 불면의 밤을 앓고 있다. 안 보고 안 들으면 그만이겠지만 눈앞의 현실이니 그럴 수도 없다. 사방이 ‘네모’ 천지에다 어딜 가나 그 얘기뿐이니 피하기도 쉽지 않다. 아예 눈 감고 귀 막은 채 독야청청 산다면 모를까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일이다. 텔레비전이 스마트폰이 무슨 죄가 있는가.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꼴이다. ‘네모’들은 다만 보여주고 들려주며 제 임무에 충실했을 뿐인데, 공연히 애먼 탓을 하는 거다. 울분을 토하고 슬픔에 잠기고 다시 접속하는 일은 온전히 내 몫일 따름, 누구도 강요한 것이 아닌데 말이다.
지금은 깊은 밤, 어디선가 새벽닭이 우는 시간이다. 텔레비전은 잠들어 있고 스마트폰도 쉬고 있는, 컴퓨터 모니터만 하얗게 밝아 있다. 백색의 모니터 위에 천천히 까만 글자들이 박히는 중, 문득 창밖으로 어른거리는 게 있다. 눈이다! 눈이 오고 있다. 아무 딴소리도 내지 않고 그냥, 펄펄 오고 있다. 이 시간만큼은 착실하게 평화롭다. 모든 격한 것들이 가라앉고 철없이 몰아치던 바람도 잠잠하다. 득실거리던 아수라도 놀라 달아나고, 너와 나의 슬픔도 포근히 덮일듯싶다.
고요한, 흰 아침에는 우리 함께 평화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