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년 되짚어 본 광주·전남 아·태전쟁 유적] 참혹한 전쟁 유적 기억하고 평화·미래로 나아가자
2025년 01월 01일(수) 21:00 가가
<1> 프롤로그
일 제국주의 전쟁 속 조선인 고통·피해의 현장
해남 옥매산 등 광주·전남 전쟁 유적만 405곳
80년 세월에 잊혀지고 자연 소멸·의도적 삭제
‘일제 잔재 보존’ 부정적 인식에 접근성 떨어져
기초적인 실태조사 못한 채 대부분 방치 상태
‘치욕스러운 과거’ 되돌아 볼 용기가 필요하다
일 제국주의 전쟁 속 조선인 고통·피해의 현장
해남 옥매산 등 광주·전남 전쟁 유적만 405곳
80년 세월에 잊혀지고 자연 소멸·의도적 삭제
‘일제 잔재 보존’ 부정적 인식에 접근성 떨어져
기초적인 실태조사 못한 채 대부분 방치 상태
‘치욕스러운 과거’ 되돌아 볼 용기가 필요하다


1일 해남군 옥매산 정상부가 뜯겨져 나가 있는 모습으로 방치돼 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옥매산은 군수품의 원료인 명반석을 얻기 위해 무분별하게 파헤쳐졌다. /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해남군 황산면 옥동리와 문내면 용암리 경계에 있는 옥매산 정상은 통째로 드러낸 것 처럼 파헤쳐진 채 80여년이 넘는 세월을 버티고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알루미늄 원료인 명반석을 채굴한 상흔이다. 일제는 옥매산 명반석을 이용해 아시아태평양전쟁 당시 전투기 등 군수품 제작에 이용했다.
조선시대 옥(玉)을 생산했던 옥매산 정상은 해발 173.9m였지만 채굴이 진행되면서 깎여 나가는 바람에 같은 산에 있는 168m의 다른 봉우리가 정상이 됐다.
일제의 수탈을 가장 선명히 보여주는 해남 옥매산 이외에도 지난 2015년 까지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와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위원회)가 파악한 결과, 광주·전남에는 이같은 아시아태평양 전쟁(1931∼1945년) 유적이 405곳(광주 44곳· 전남 361곳)에 달한다.
◇일제의 군사 요충지 광주·전남= 일본은 1938년 4월 1일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해 조선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여러 국가로부터 인적자원과 물적자원을 본격적으로 강제동원하고 수탈하기 시작했다. 아시아태평양전쟁 조선인 동원 관련 전쟁유적은 우리나라 전역에서 8434곳 정도로 파악되고 있다. 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아시아태평양전쟁 유적이 남게 된 배경은 이 시기 한반도가 감당해야 했던 지정학적 역할 때문이다.
아시아태평양 전쟁 유적은 곧 조선인들의 강제노역과 맞물려 있다. 광주의 가네보 방적에서는 수많은 조선인이 강제로 동원돼 피땀을 흘렸다. 이들은 군수용품을 만들기 위한 천을 제작하는 노역에 시달렸다.
결국 일제가 일으킨 아시아태평양 전쟁은 수많은 조선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강제동원된 피해자들은 일본 제국주의(帝國主義)의 전쟁터와 노역장 등에서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되거나 부상으로 신체의 장해를 입고 평생 불구의 몸이 되는 등 참혹한 고통과 피해를 입었다.
광주·전남은 일제강점기 초창기부터 한반도 남서해안의 지리적 위치 때문에 곡창지대, 수탈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상대적으로 광주·전남 아시아태평양전쟁 유적에 대한 관심은 덜한 상황이다.
일제 강점기 식량 수탈지역으로 꼽혔던 광주·전남지역은 초반 군사적 측면에서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시아태평양 전쟁 말기로 갈수록 일본의 최후의 저항지로 꼽혔기 때문에 광주·전남에 수많은 군사시설이 집중적으로 들어섰다. 이른바 군사기지화 했다.
1916년 군의 상주화가 시작된 후 일본군의 작전계획에서 조선군의 역할이 가장 크게 변화한 시기는 1940년대다. 일본은 한반도를 본토결전을 준비하는 기지로 삼았다.
특히 일본 육군은 광주·전남 곳곳에 방어시설과 비행장 벙커 등을 건설했고, 목포·여수·진도·신안·무안·고흥 등지의 해상 중요지에는 군용선박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방공호나 터널, 벙커 등을 집중 구축했다.
◇사라지는 전쟁 유적들= 광주·전남지역에서 수백 곳에 달하는 일제 전쟁유적은 기초적인 실태조사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광복 80년이 지나면서 기억에서 잊혀지고 자연 소멸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는 ‘굴욕과 수치의 상징’, ‘친일 시설물’로 여겨져 의도적으로 삭제되고 있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남의 전쟁에 동원된, 뼈 아픈 수탈과 강제 노역의 치욕의 과거’를 교훈삼기 위해서는 또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일부 학자들을 중심으로 광주·전남 아시아태평양전쟁유적의 기초조사는 진행되기도 했다. 또 일제강제동원 시민모임과 같은 지역 시민단체가 지속적으로 해당 유적에 대한 시민 답사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다. 유적들이 현재는 대부분 사유지에 속하는 경우도 많고 개발에 비용이 많이 소요된다는 점에서다.
또한 당시 대규모 군수공장들이 현재 기업 소유의 산업 현장으로 가동중이거나 개발 부지에 속해 유적 보존운동의 방향에서 보면 큰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최근 역사학계 뿐 아니라 한국사회에서도 학살 등 비극적 사건이 발생한 곳을 기억하고 기록해야 교훈을 올바로 새길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광주일보는 올해 광복 80주년을 맞아 일본 제국주의가 남긴 광주·전남 아시아태평양 전쟁 유적을 살펴보고 활용 방안을 고민하는 대하 시리즈를 시작한다. 독자 여러분의 참여와 관심을 기대한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알루미늄 원료인 명반석을 채굴한 상흔이다. 일제는 옥매산 명반석을 이용해 아시아태평양전쟁 당시 전투기 등 군수품 제작에 이용했다.
일제의 수탈을 가장 선명히 보여주는 해남 옥매산 이외에도 지난 2015년 까지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와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위원회)가 파악한 결과, 광주·전남에는 이같은 아시아태평양 전쟁(1931∼1945년) 유적이 405곳(광주 44곳· 전남 361곳)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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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서구 관내 일본군 시설물.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제공> |
결국 일제가 일으킨 아시아태평양 전쟁은 수많은 조선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강제동원된 피해자들은 일본 제국주의(帝國主義)의 전쟁터와 노역장 등에서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되거나 부상으로 신체의 장해를 입고 평생 불구의 몸이 되는 등 참혹한 고통과 피해를 입었다.
광주·전남은 일제강점기 초창기부터 한반도 남서해안의 지리적 위치 때문에 곡창지대, 수탈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상대적으로 광주·전남 아시아태평양전쟁 유적에 대한 관심은 덜한 상황이다.
일제 강점기 식량 수탈지역으로 꼽혔던 광주·전남지역은 초반 군사적 측면에서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시아태평양 전쟁 말기로 갈수록 일본의 최후의 저항지로 꼽혔기 때문에 광주·전남에 수많은 군사시설이 집중적으로 들어섰다. 이른바 군사기지화 했다.
1916년 군의 상주화가 시작된 후 일본군의 작전계획에서 조선군의 역할이 가장 크게 변화한 시기는 1940년대다. 일본은 한반도를 본토결전을 준비하는 기지로 삼았다.
특히 일본 육군은 광주·전남 곳곳에 방어시설과 비행장 벙커 등을 건설했고, 목포·여수·진도·신안·무안·고흥 등지의 해상 중요지에는 군용선박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방공호나 터널, 벙커 등을 집중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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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노천광산에서 강제노역 하는 조선인들 모습. 당시 조선인들은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깔려있는 레일을 통해 직접 수동으로 밀면서 운반하는 일명 ‘수압궤도’를 이용해 광물을 운반했다. <해남 옥매광산 노무자들의강제동원 피해실태 조사서 수록 사진> |
광복 80년이 지나면서 기억에서 잊혀지고 자연 소멸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는 ‘굴욕과 수치의 상징’, ‘친일 시설물’로 여겨져 의도적으로 삭제되고 있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남의 전쟁에 동원된, 뼈 아픈 수탈과 강제 노역의 치욕의 과거’를 교훈삼기 위해서는 또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일부 학자들을 중심으로 광주·전남 아시아태평양전쟁유적의 기초조사는 진행되기도 했다. 또 일제강제동원 시민모임과 같은 지역 시민단체가 지속적으로 해당 유적에 대한 시민 답사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다. 유적들이 현재는 대부분 사유지에 속하는 경우도 많고 개발에 비용이 많이 소요된다는 점에서다.
또한 당시 대규모 군수공장들이 현재 기업 소유의 산업 현장으로 가동중이거나 개발 부지에 속해 유적 보존운동의 방향에서 보면 큰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최근 역사학계 뿐 아니라 한국사회에서도 학살 등 비극적 사건이 발생한 곳을 기억하고 기록해야 교훈을 올바로 새길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광주일보는 올해 광복 80주년을 맞아 일본 제국주의가 남긴 광주·전남 아시아태평양 전쟁 유적을 살펴보고 활용 방안을 고민하는 대하 시리즈를 시작한다. 독자 여러분의 참여와 관심을 기대한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