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우리 함께 노래를- 김향남 수필가
2024년 12월 30일(월) 00:00 가가
한밤중에 난데없이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 국회가 봉쇄되고 헬기를 탄 계엄군이 국회 장악을 시도하는 일이 벌어졌다. 다행히도 긴급 소집된 국회에서 계엄해제를 의결하면서 상황은 일단락되었지만, 그 초유의 사태에 대한 충격과 후유증은 오히려 더 커진 상황이다. 온갖 권모와 술수와 모략들이 광풍처럼 음산하게 이 겨울을 난타하고 있다.
그날 밤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리라고 어찌 상상이나 했겠는가. 곤히 자고 일어나 보니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밤새 안녕이라더니 정말로 그랬다. 스마트폰에 표기된 수십 개의 메시지를 확인하며 곧바로 TV를 켰다. 화면에는 계엄령을 선포하는 대통령의 모습과 난장판으로 변한 국회의사당, 총과 군장으로 완전무장한 군인들, 밀고 당기는 경찰과 시민들,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는 군인, 담장을 넘어가는 국회의원의 모습이 번갈아 나왔다. 진행자들 역시 놀라고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혹시 가짜뉴스나 딥페이크 아닌가 의심했지만 명백한 사실일 뿐만 아니라 얼마나 위급한 순간이었는지도 생생하게 느껴졌다. 오싹 소름이 돋았다. 만약에 그대로 성공했더라면 어쩔 뻔했는가.
분노한 시민들은 광장으로 나왔고 당장 탄핵을 외쳤다.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그 배경을 밝혔으나 설득력은 없었다. 자유와 행복을 약탈한 파렴치범은 오히려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한 자가 아닌가? 어떻게 제 나라 국민을 상대로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해괴한 일을 자행할 수가 있는가. 전쟁이 벌어진 것도 아니고 내란이 발생한 것도 아닌데 어디서 그런 논리가 나오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척결, 처단, 체포, 구금, 압수수색 같은 말에서는 섬뜩한 광기마저 느껴졌다.
야당은 즉각 탄핵안을 발의하고 표결에 나섰다. 그러나 투표도 하지 않고 집단으로 퇴장해버린 여당 의원들로 인하여 정족수도 채우지 못한 채 폐기되는 상황에 직면했다. 돌아선 그들은 당론임을 명분 삼아 나름의 계산기를 두드렸을 테지만 형편없이 엇나가 보였다. 그 후안무치 초라한 모습이라니…. 묘한 슬픔과 함께 다시 분노가 치솟았다. 뭔가 심하게 조롱당한 느낌도 들었다.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이었다.
다시 일주일 후 2차 투표가 예고되고 광장에는 더 많은 시민이 몰렸다. 그들의 표정은 한껏 상기되어 있었다. 슬픔? 절망? 그런 게 아니었다. 절망하고 분노하고 슬퍼하기보다 흔들고 뛰고 소리치며 노래했다. ‘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 그려왔던 헤매임의 끝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모두가 함께 ‘다시 만난 세계’를 떼창하고 ‘아파트 아파트’를 열창하고 ‘삐딱하게’를 소리쳤다. 울분과 분노 대신 노래와 춤으로, 거칠고 직설적인 말 대신 재치와 해학이 돋보이는 언어들로, 수많은 인파가 몰렸음에도 불구하고 질서와 평화를 유지했다. 그것은 시위가 아니라 모두 함께 즐기는 거대한 놀이판이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싸움은 끝내 이기고 말 것이다! 왜? 왜냐면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고 싸우는 놈 위에 즐기는 놈이 있으니까. 인간은 본능적으로 놀고 즐기는(호모 루덴스) 존재니까. 죽기살기로 싸우는 것도 좋지만 싸움을 놀이로 만들어버린 저 유희정신이야말로 비장의 무기가 될 것이다. 시위를 시위로 인식하지 않고 놀이로 바꿔버리는 순간, 그때 경험하는 재미와 몰입과 공감과 소통의 의식은 새로 발견한 전통처럼 생명력을 얻게 된다. 참여와 연대, 재미와 의미, 카타르시스를 안기며 뇌 속에 새겨진다. 그리하여 그것은 영원히 닳지 않는 무기가 되고 정의가 되고 어떤 정신이 될 것이다.
느닷없이 자행된 비상계엄의 여파는 내 일상에도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 마음을 다스려 책을 펼치고 할 일을 해보려 하지만 잘 되질 않는다. 나라 꼴이 갈수록 험악해지는 게 답답하고 화가 치민다. 불안하고 두렵다. ‘제발 집에 누워있게 해달라’, ‘나까지 나오게 해’, ‘나라가 왜 이꼴이야’, ‘불안해서 집에서 게임도 못 하겠다’ ‘새해에는 새나라로’ 등의 깃발을 들고나온 사람들의 심정을 완벽하게 이해한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아무래도 저 깊숙한 호모 루덴스의 정신을 꺼낼 수밖에 없겠다. 함께 노래하고 흔들고 나누며 이 황당한 시간을 이겨내야겠다. 서로 ‘힘내!’ 격려하고, ‘파이팅 해야지’ 북돋우며 빼앗긴 일상을 되찾아와야겠다.
다시 일주일 후 2차 투표가 예고되고 광장에는 더 많은 시민이 몰렸다. 그들의 표정은 한껏 상기되어 있었다. 슬픔? 절망? 그런 게 아니었다. 절망하고 분노하고 슬퍼하기보다 흔들고 뛰고 소리치며 노래했다. ‘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 그려왔던 헤매임의 끝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모두가 함께 ‘다시 만난 세계’를 떼창하고 ‘아파트 아파트’를 열창하고 ‘삐딱하게’를 소리쳤다. 울분과 분노 대신 노래와 춤으로, 거칠고 직설적인 말 대신 재치와 해학이 돋보이는 언어들로, 수많은 인파가 몰렸음에도 불구하고 질서와 평화를 유지했다. 그것은 시위가 아니라 모두 함께 즐기는 거대한 놀이판이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싸움은 끝내 이기고 말 것이다! 왜? 왜냐면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고 싸우는 놈 위에 즐기는 놈이 있으니까. 인간은 본능적으로 놀고 즐기는(호모 루덴스) 존재니까. 죽기살기로 싸우는 것도 좋지만 싸움을 놀이로 만들어버린 저 유희정신이야말로 비장의 무기가 될 것이다. 시위를 시위로 인식하지 않고 놀이로 바꿔버리는 순간, 그때 경험하는 재미와 몰입과 공감과 소통의 의식은 새로 발견한 전통처럼 생명력을 얻게 된다. 참여와 연대, 재미와 의미, 카타르시스를 안기며 뇌 속에 새겨진다. 그리하여 그것은 영원히 닳지 않는 무기가 되고 정의가 되고 어떤 정신이 될 것이다.
느닷없이 자행된 비상계엄의 여파는 내 일상에도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 마음을 다스려 책을 펼치고 할 일을 해보려 하지만 잘 되질 않는다. 나라 꼴이 갈수록 험악해지는 게 답답하고 화가 치민다. 불안하고 두렵다. ‘제발 집에 누워있게 해달라’, ‘나까지 나오게 해’, ‘나라가 왜 이꼴이야’, ‘불안해서 집에서 게임도 못 하겠다’ ‘새해에는 새나라로’ 등의 깃발을 들고나온 사람들의 심정을 완벽하게 이해한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아무래도 저 깊숙한 호모 루덴스의 정신을 꺼낼 수밖에 없겠다. 함께 노래하고 흔들고 나누며 이 황당한 시간을 이겨내야겠다. 서로 ‘힘내!’ 격려하고, ‘파이팅 해야지’ 북돋우며 빼앗긴 일상을 되찾아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