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숭어 - 송기동 예향부장
2024년 12월 23일(월) 22:00 가가
사계절마다 미식가들이 선호하는 생선들이 있다. 봄 도다리, 여름 민어, 가을 전어, 겨울 숭어이다. 신안 흑산도·우이도에서 유배생활을 했던 실학자 손암(巽庵) 정약전(1758~1816)은 ‘자산어보’(玆山魚譜) 비늘이 있는 생선류(鱗類) 항목에서 숭어에 대해 “고기살의 맛은 좋고 깊어서 물고기 중에서 첫째로 꼽힌다”고 묘사했다. 여수 거문도에서 소설을 쓰는 한창훈 작가 또한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2010년)에서 숭어를 맛깔나게 설명한다.
“선생의 묘사대로 놈들은 아주 영악하다. 그물이 좁혀오면 바닥에 딱 붙어 눈치를 살핀다. 그러다 틈이 보이면 줄지어 빠져나간다. 퐁당퐁당, 뛰기도 잘한다. 한번 뛰기 시작하면 보통 다섯 번 정도 한다. 버릇이다. 그러니 숭어와 관련된 말이 많다. 이름도 백 가지가 넘는다. 신화에서 보면 이름이 많으면 능력도 뛰어나고 의미도 다양하다. 아무튼 맛에 관한 것 하나. ‘숭어 앉았다 떠난 자리 펄만 먹어도 달다’는 말이 있다. 얼마나 맛있으면.”
숭어는 성장단계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출세어’(出世魚)다. 무안 주민들은 숭어 치어부터 성어까지 모치→참동어→댕가리→중바리→무거리→눈부릅떼기→숭어 등 7단계로 구분해 이름을 붙였다. ‘자산어보’에도 가장 어린 숭어를 ‘모치’(毛峙), ‘모당’(毛當), ‘모장’(毛將)이라고 부르고, 작은 숭어를 속칭 ‘등기리’라 부른다고 기록돼 있다. 복 주머니같은 모양을 한 함해만에서 잡힌 숭어는 ‘무안 9미(味)’중 하나로 손꼽힌다.
무안군이 겨울 숭어를 테마로 한 축제를 연다. 새해 1월 18~19일 이틀간 해제면 주민다목적 센터와 양간다리 수산시장 일원에서 개최되는 이번 축제는 숭어잡기 체험과 원데이 클래스(숭어초밥 만들기), 새해맞이 소망등 달기 등 다채롭게 펼쳐질 계획이다. 일몰과 일출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무안 도리포와 축제장에서 숭어회를 맛보는 미식여행을 하며 송구영신(送舊迎新)하는 것은 어떨까.
“…평평하고 멀리까지 뻗어 눈에 가물가물해야 길인가/ 숭어가 뛰어오르는 저,/ 저 찰나의 한순간도 서늘한 길이 아닌가”( 안도현 시 ‘숭어’중)
/song@kwangju.co.kr
“…평평하고 멀리까지 뻗어 눈에 가물가물해야 길인가/ 숭어가 뛰어오르는 저,/ 저 찰나의 한순간도 서늘한 길이 아닌가”( 안도현 시 ‘숭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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