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땅에는 불국사, 하늘에는 운주사- 박용수 수필가·동신여고 교사
2024년 12월 23일(월) 07:00 가가
아주 무더웠다. 입대 전, 모내기를 마친 6월 끝자락, 착잡한 마음을 달래려고 무작정 나섰는데 운주사였다. 심란하고 울적할 때, 운주사는 어머니처럼 위로와 위안을 받는 곳이었다. 절이라기보다 골방, 혼자 숨어 있기 좋은 다락방 같은 곳, 잠시만 있어도 근심 걱정들이 사라졌다.
평소에도 인적이 없었는데 그날따라 목탁 소리도, 풍경소리도, 박새 우는 소리도 없었다. 구름 속 운주사 이름처럼, 마치 절이 공중에 떠서 구름 속에 있는 듯했다. 쿵 쿵쿵! 그런데 얼마 후,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공사 바위 쪽이었다. 굴착기 한 대가 요란하게 수로를 확장하고 있었다. 길, 물길을 내고 있었다. 길을 내다보니 그 바위와 돌 부스러기들이 자연히 버려지고 묻혔다. 굴착기에 부서진 그 돌 부스러기들이 부처의 몸통이고 손이고 머리였으며 바로 운주사였다.
“저는 모릅니다. 시킨 대로만 하죠”
지금 문화재를 파괴하고 있다는 말에 짜증 섞인 기사의 대답이었다.
법화경은 부처의 가르침을 연꽃에 비유한 경전이다. 부처를 직접 뵙고자 한 대요설의 요청으로 여래의 백호에서 나온 빛에 따라 모든 분신 불이 모이자, 보배탑이 공중으로 솟아오르고, 하늘 가득 만다라 꽃이 쏟아졌다. 이어 석가모니께서 오른 손가락으로 칠보탑의 문을 여시니, 마치 잠겨 있는 자물쇠를 제치고 큰 성문을 여는 것 같았다. 석가여래가 법화경을 설하는 곳에는 어디든 나타나 증명하겠다는 다보불이 자리의 반을 나누어 권하자 석가모니불이 사자좌에 등을 맞대고 앉아, 드디어 시작한 공중 법회.
조선이 들어서고, 불심은 충효 이념에 큰 걸림돌이 되었다. 국가에서 버려지고, 조정에서 버려지고 끝내 화전민에게 버려진 하늘의 불과 하늘의 탑, 천불천탑.
그렇게 마을 사람들은 구들장으로 떼어가고, 화전민은 장독대로 떼어가고, 애 낳지 못한 여인네는 코를 떼어가고, 누군가는 보배탑 문짝을 떼어가고, 경찰서에서 싣고가고, 면사무소에서 들고 가고, 가난한 사람들은 가져가고…
구름 흩어지듯 소실된 운주사. 시심사심 법당이 밭이 되고, 법회 하던 곳은 논이 되고, 시간이 쌓이고 해와 달이 덮이고 그렇게 또 한 겹, 또 한 층, 먼지처럼 퇴적된….
우리도 나날이 삶을 퇴적하며 산다. 학창 시절 소풍을 갔던 곳, 반백 년 전, 초파일이면 너나없이 모여 놀던 곳, 화순 도암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퇴적된 운주사.
그 단단한 퇴적층을 하나둘 벗겨낼 수는 없을까. 운주사 수로에 퇴적된 그 석불들의 숨통을 열 수는 없을까. 세워야 할 것은 와불이 아니라 아무렇게 뭉개고 던져버린 부처가 아닐까.
운주사와 가장 닮은 사찰은 불국사이다.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 연화교와 칠보교, 그리고 경주 남산의 부처와 탑들은 운주사 다보여래, 석가여래, 연화탑 보배탑을 무척 닮은 법화경을 토대로 세워진 것이다. 불국사가 토함산과 경주 일원의 땅 위에 세워진 하방의 불국토라면, 운주사는 도암면 일원을 마치 구름 형상 삼아 운해처럼 세운 상방의 불국토이다. 운주사 주변의 산은 산이라기보다 구름이다. 또 불국사는 법화경 일부라면 운주사는 법화경 28품 상당수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사찰이다.
어떤 이유로 하나는 서쪽에 하나는 동쪽에, 또 하나는 땅에 다른 하나는 하늘에 비슷한 절을 세웠을까. 그리고 또 어떤 이유로 서쪽 절은 이렇게 철저히 퇴적하였을까. 불국사 한쪽에는 박정희 사진이 걸려있다. 조선 유교에 짓밟히고 일제에 군홧발에 망가진 불국사를 재건한 사람이란다.
운주사로 향한다. 공중을 걷는다는 느낌으로 사뿐사뿐 걷는다. 그러면 천불동 온 산천이 구름처럼 느껴지고 그 구름 속에 절이 떠 있고 북두칠성처럼 칠성바위가 반짝이는 것 같다. 또 칠보 단장한 보배탑에서 우렁우렁한 부처의 독경 소리가 퍼지는 것 같다.
사람들에게 무한한 상상력과 꿈을 준 사찰, 남도 사람들이 고난에 처할 때마다 어깨들 두드려주고 힘이 되어주었던 절, 단단한 천년 세월의 더께를 쿵 쿵쿵! 굴착기보다 더 단단한 마음으로 뚫고 들어가면 혹여 천불천탑의 진짜 신비를 벗겨낼 수 있지 않을까.
공중 법회 현장, 그 심연의 운주사, 화순 운주사로 난 들어가고 있다.
지금 문화재를 파괴하고 있다는 말에 짜증 섞인 기사의 대답이었다.
법화경은 부처의 가르침을 연꽃에 비유한 경전이다. 부처를 직접 뵙고자 한 대요설의 요청으로 여래의 백호에서 나온 빛에 따라 모든 분신 불이 모이자, 보배탑이 공중으로 솟아오르고, 하늘 가득 만다라 꽃이 쏟아졌다. 이어 석가모니께서 오른 손가락으로 칠보탑의 문을 여시니, 마치 잠겨 있는 자물쇠를 제치고 큰 성문을 여는 것 같았다. 석가여래가 법화경을 설하는 곳에는 어디든 나타나 증명하겠다는 다보불이 자리의 반을 나누어 권하자 석가모니불이 사자좌에 등을 맞대고 앉아, 드디어 시작한 공중 법회.
그렇게 마을 사람들은 구들장으로 떼어가고, 화전민은 장독대로 떼어가고, 애 낳지 못한 여인네는 코를 떼어가고, 누군가는 보배탑 문짝을 떼어가고, 경찰서에서 싣고가고, 면사무소에서 들고 가고, 가난한 사람들은 가져가고…
구름 흩어지듯 소실된 운주사. 시심사심 법당이 밭이 되고, 법회 하던 곳은 논이 되고, 시간이 쌓이고 해와 달이 덮이고 그렇게 또 한 겹, 또 한 층, 먼지처럼 퇴적된….
우리도 나날이 삶을 퇴적하며 산다. 학창 시절 소풍을 갔던 곳, 반백 년 전, 초파일이면 너나없이 모여 놀던 곳, 화순 도암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퇴적된 운주사.
그 단단한 퇴적층을 하나둘 벗겨낼 수는 없을까. 운주사 수로에 퇴적된 그 석불들의 숨통을 열 수는 없을까. 세워야 할 것은 와불이 아니라 아무렇게 뭉개고 던져버린 부처가 아닐까.
운주사와 가장 닮은 사찰은 불국사이다.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 연화교와 칠보교, 그리고 경주 남산의 부처와 탑들은 운주사 다보여래, 석가여래, 연화탑 보배탑을 무척 닮은 법화경을 토대로 세워진 것이다. 불국사가 토함산과 경주 일원의 땅 위에 세워진 하방의 불국토라면, 운주사는 도암면 일원을 마치 구름 형상 삼아 운해처럼 세운 상방의 불국토이다. 운주사 주변의 산은 산이라기보다 구름이다. 또 불국사는 법화경 일부라면 운주사는 법화경 28품 상당수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사찰이다.
어떤 이유로 하나는 서쪽에 하나는 동쪽에, 또 하나는 땅에 다른 하나는 하늘에 비슷한 절을 세웠을까. 그리고 또 어떤 이유로 서쪽 절은 이렇게 철저히 퇴적하였을까. 불국사 한쪽에는 박정희 사진이 걸려있다. 조선 유교에 짓밟히고 일제에 군홧발에 망가진 불국사를 재건한 사람이란다.
운주사로 향한다. 공중을 걷는다는 느낌으로 사뿐사뿐 걷는다. 그러면 천불동 온 산천이 구름처럼 느껴지고 그 구름 속에 절이 떠 있고 북두칠성처럼 칠성바위가 반짝이는 것 같다. 또 칠보 단장한 보배탑에서 우렁우렁한 부처의 독경 소리가 퍼지는 것 같다.
사람들에게 무한한 상상력과 꿈을 준 사찰, 남도 사람들이 고난에 처할 때마다 어깨들 두드려주고 힘이 되어주었던 절, 단단한 천년 세월의 더께를 쿵 쿵쿵! 굴착기보다 더 단단한 마음으로 뚫고 들어가면 혹여 천불천탑의 진짜 신비를 벗겨낼 수 있지 않을까.
공중 법회 현장, 그 심연의 운주사, 화순 운주사로 난 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