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憲政) 유린 - 송기동 예향부장
2024년 12월 09일(월) 22:00
민주적 절차를 거쳐 선출된 대통령이 12월 3일 밤 11시 비상 계엄령을 내렸다. 무장한 공수부대 병력이 헬기를 이용해 국회에 내린 후 유리창문을 깨고 의사당 내부로 진입했다. 45년 만에 선포된 비상계엄 속보를 접한 야당 의원과 시민들은 지체없이 국회의사당 앞으로 달려갔다.

검사 출신 대통령은 2년 6개월 전에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라고 취임선서를 하며 헌법에 따라 ‘입헌(立憲) 정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는 ‘헌법을 준수하겠다’는 취임 선서를 스스로 뒤엎으며 헌정(憲政)을 유린했다. 시민들은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이처럼 손쉽게 계엄령을 선포하고, 의회 기능을 무력화하기 위해 군인들을 동원할 수 있으리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자 ‘친위 쿠데타’나 다름없었다. 한순간에 한국경제 상황은 악화되고 ‘K-컬쳐’로 드높아지던 국격(國格)도 추락했다.

더욱이 계엄사령부 ‘포고령 제1호’는 시퍼렇게 날선 비수였다. ‘자유대한민국 내부에 암약하고 있는 반국가세력’이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거나, 전복을 기도하는 일체의 행위’와 같은 문구에 숨이 턱 막혔다. 전공의와 의료인을 직격한 5항 ‘처단한다’는 표현에는 무력으로 제압하겠다는 위협적·적대적·극단적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이 지난 7일 저녁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 정족수 미달로 무산됐다. 국민의힘 의원 105명은 본회의장을 집단 퇴장해 탄핵안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 차가운 겨울 날씨에도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도로와 광주 옛 전남도청 광장에 앉아 ‘탄핵’과 ‘퇴진’을 외치는 민의(民意)를 끝내 저버렸다.

예로부터 ‘제왕학의 교과서’로 불리는 당 태종의 언행록인 ‘정관정요’에서 “군주는 배와 같고 국민은 물과 같으니(君舟民水)/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水能載舟) 뒤엎을 수도 있다(亦能覆舟)”라고 했다. 여당은 성난 물이 배를 뒤엎을 수 있음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행정부 수반에서 ‘내란 수괴 혐의 피의자’가 된 대통령은 여전히 민심을 헤아리지 못하고 아집(我執)으로 일관하고 있지 않는가.

/송기동 예향부장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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