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의 공포 뜨거운 SNS … “우리는 5·18 광주에 빚졌다”
2024년 12월 05일(목) 19:45
포털 사이트에 ‘1980년 5·18 광주’ 재조명 글 잇따라
“고립무원 속 계엄군과 싸움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
광주일보 기자 성명·한강 ‘소년이 온다’ 등 게시하기도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SNS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게시글들. “다시 한번 광주에 고맙고 미안하다”는 내용들이 가득하다.

비상계엄 선포 이후 SNS에서 45년 전 비상계엄 선포 당시 광주시민들의 외로움과 공포에 공감하며 “광주에 빚을 졌다”는 반응이 잇따르고 있다.

5일 포털 사이트 ‘다음’의 한 커뮤니티에는 ‘그때의 광주는 얼마나 무섭고 외로웠을까’라는 제목의 글이 게시됐다.

글에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무등고시원 앞에서 계엄군에게 구타당하는 모습과 계엄군의 군홧발에 목을 짓밟히는 시민군의 모습, 두 손이 묶인 채 일렬로 엎드려 있는 시민군의 모습, 태극기가 덮인 관 위에 앉아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들고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 등이 업로드됐다.

누리꾼들은 ‘여태 부끄럽게도 역사책 좀 봤다고 그때의 설움과 고난을 다 이해한다고 생각했는데 (지난 4일) 비상계엄 선포라는 글자를 보는 순간 머리가 띵해졌다. 고립된 채 무자비한 폭력에 노출된 상황에서 무슨 심정으로 버티신 건지 상상도 못하겠다’고 적었다. 또 ‘아직까지 광주를 상대로 지역혐오하는 사람들이 활개치고 다니는게 어이없다’, ‘집에서 상황만 지켜보는 나도 손이 떨렸는데 감사하고 죄송하다’는 반성의 목소리도 이어졌다.

계엄 정국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누리꾼들은 5·18 당시 고립됐던 광주를 떠올렸다.

‘X’(옛 트위터)에는 “우리는 SNS를 통해 모든 상황을 보고 듣고 공유했지만, 그때 광주는 외부와 모든게 단절돼 계엄군과 맞서 싸웠다”, “당시 시민군은 얼마나 무섭고 외로웠을까. 다시 한번 광주에 고맙고 미안하다”는 내용의 게시글들이 속속 올라왔다.

또 “‘유튜브도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에 이런 일을 당했을 광주 사람들 얼마나 힘들었을까’란 생각만 든다”, “‘북괴가 있었다잖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너네도 군인 때리더만’ 이런 소릴 평생 들었다고 생각하면 자꾸 눈물이 날 것 같다”는 글도 이어졌다.

한 누리꾼은 1980년 5월 20일 광주일보(옛 전남매일신문) 기자 일동 명의로 ‘우리는 보았다. 사람이 개 끌리듯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는 단 한줄도 싣지 못했다.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고 쓴 공동사표를 공유하며 광주에 감사를 표했다.

5·18과 관련된 경험을 공유하는 이들도 있었다. 누리꾼들은 한강 작가의 책 ‘소년이 온다’, KBS 드라마 ‘오월의 청춘’ 등 5·18 당시 광주 시민들의 아픔을 다룬 작품들을 게시하며 공감을 표했다.

계엄 선포 당시 5·18을 경험한 광주·전남 출신 가족들로부터 걱정어린 안부 전화를 받았다는 경험담도 이어졌다. 부모로부터 “무조건 집에 붙어있고, 밤에는 불 켜지 말고 문이랑 창문 꼭 잠가야한다”, “나갈 때는 혼자 나가지 말고 가족들이랑 함께 다니고 신분증을 항상 들고다녀라”, “광주 출신인거 티 내지마라”는 등 당부를 들었다는 게시글이 잇따른 것이다. 누리꾼들은 “너무 안타깝다”, “제 탓도 아닌데 괜히 죄송스럽다”는 등의 댓글을 달았다.

일부 누리꾼은 5·18 당시 광주에서 어떤 요구를 했는지,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공유하며 “그들을 본받아야 한다”, “이번에는 결코 광주가 외롭지도 서럽지도 않을 것이다”고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김다인 기자 kdi@kwangju.co.kr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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