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고요- 김 향 남 수필가
2024년 12월 01일(일) 22:00
먼지를 날리며 버스는 갔다. 차에서 내린 나는 아주 천천히 걸었다. 피할 수 있는 한 피하고 싶고 미룰 수 있는 한 미루고 싶었다. 그 상황을 어떻게 직면한단 말인가. 가족들은 아직 오지 않는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테지만 내 걸음은 점점 더 느려졌다. 벼들이 노랗게 익어가는 들녘을 지나고, 다리를 건너고, 그리고 길게 이어진 강을 따라 느릿느릿 걸었다. 그 끝 너머에 우리 집이 있었다.

수업시간, 담임선생님이 불렀다. 복도로 나가자 가만히 나를 바라보시더니, 아버지가 돌아가셨대. 들어가서 가방 가지고 나와, 했다. 네? 내가 다시 물었다. 아파 누워 계시긴 했지만 그런 소식을 들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나는 믿기지 않는 눈으로 선생님을 보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연락이 왔어. 얼른 집으로 가 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몇몇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으나 뭐라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학교를 나왔다. 하교 시간도 아닌데 밖으로 나오기는 처음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나를 흘끔거리는 것 같았다. 나 역시 전혀 다른 곳을 걷고 있는 듯했다. 내리쬐는 햇살도, 건들거리는 바람도, 승강장 옆의 가게들도 확연하게 달라진 것은 없었지만 어쩐지 모두 딴 세상처럼 보였다. 집으로 가는 시외버스에도 교복 입은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마당은 벌써 장례식장으로 변해 있었다. 분명하게 우리 집 마당인데도 선뜻 들어서기가 낯설었다. 그렇다고 어디로 돌아설 수도 없고, 쭈뼛쭈뼛 안으로 들어섰다. 오매, 이 집 막둥이 왔네. 마침 아랫집 당숙모가 나를 보고 외쳤다. 아이고 어쩌끄나잉. 어서 들어가 아버지 뵈거라. 마당으로 내려와 몇 번이나 내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 아버지는 병풍 뒤에 계셨다. 그 옆에 바짝 앉아 있던 오빠가 병풍을 걷었다. 흰 수시포에 덮인 아버지가 보였다.

아버지는, 고요했다. 가만히 누운 채 엷게 미소짓고 있는 듯이 보였다. 희고 투명하고 평화로운 꿈을 꾸는 듯도 싶었다. 모든 것을 거둬들인 뒤의 마지막 표정, 삶을 마무리한 뒤의 첫 표정. 아버지는 왜 저토록 편히도 누워 계시는가. 온갖 간난을 다 겪은 사람의 표정이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죽음이 저토록 편안한, 저토록 고요한 것이라니. 지레 겁먹을 필요가 하나도 없었지 않은가. 문득 부음을 듣고도 그토록 더디 움직였던 내 모습이 스쳐 갔다.

나는 아버지의 삶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맨주먹인 아버지가 저 질곡을 건너오는 동안 겪었을 무수한 고통을 짐작해 볼 수는 있다. 일제강점기, 아버지는 바다 건너 먼 타국에서까지 힘겨운 노동에 시달려야 했으며, 전쟁으로 피폐해진 척박한 환경에서 세 끼 먹기에도 버거운 삶을 살았다. 그뿐이랴. 가지 많은 나무에는 바람 잘 날도 없었다. 먹이고 입히고 학교 보내는 것도 힘에 겨운 일인데, 뒷바라지는 거기서 끝나는 게 전혀 아니었다. 아버지의 등짐은 한 번도 가벼워 본 적이 없었다. 마지막 3년은 병마와도 싸워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고요했다. 모든 짐을 다 내려놓고 훌훌 안식에 드신 것처럼 편안해 보였다. 비로소 해방에 이르신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만족스럽게도 보였다. 죽음이란 혹시 온갖 수고를 감내한 자에게 내리는 신의 은총이 아닐까? 그것은 실패도 아니고 고통도 아니며 슬퍼할 일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일까?

밤이 되었다. 짙게 깔린 어둠은 또 다른 고요를 품고 있었지만, 아버지의 고요만큼 깊어 보이지는 않았다. 아버지의 그것은 깊기도 하려니와 단단하게도 여겨졌다. 아버지의 모든 기쁨, 슬픔, 고함, 침묵, 질책, 격려들이 한데 뭉쳐 이루어낸 견고한 침묵이거나 깊은 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죽음은 언제나 슬픈 일이지만, 그 마지막 표정 때문인지 오히려 위로받는 느낌이 더 짙게 들었다.

그날 내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으나 완전히 슬프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죽음이 뭔지도 모른 채 죽음을 맞은 열여덟의 나에게 아버지는 부러 안심시켜주셨는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안녕하다고, 그러니 아무 것도 무서워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그 황당하기만 한 현실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던 나에게 기꺼이 일러주고 싶으셨는지도 모르겠다. 고요하고 평화롭게, 부드럽고 단단하게 그 말씀을 새겨 놓으셨는지도….

가끔 그때로 돌아가 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마침내 고요에 이른 한 사람의 초상이 안개처럼 스며들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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