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전라도 호박- 박용수 수필가·동신여고 교사
2024년 11월 24일(일) 22:30 가가
붉다 못해 뜨거운 만추, 각혈하듯 나무마다 단풍꽃을 피우고 있다. 마루에도 그 아래도 반짝인다. 늦가을 햇살이다.
각화동 농산물시장에 들렀다. 농촌의 들판, 농민들의 노고가 모여서 생기가 돈다. 무릇 반도체, 자동차, 선박만을 앞세워 달려온 나라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여기 농산물을 삼키면서 오직 살려면 공산품을 살려야 한다는 말만 뱉는다. 그러나 그 공산품 자동차나 선박 그리고 반도체 어느 것 하나 우리가 먹을 수 없다. 거기에 따른 환경오염, 기후변화는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여기저기 둘러보고 시장을 나오는 뒤쪽 출구, 구석에 낯익은 친구들이 계단에 옹기종기 층층이 쌓여 있다. 호박, 늙은 호박들이다. 호박은 여기서조차 구석에 박혀 있다. 어디서나 푸대접받는 게 호박이다.
이른 봄, 호박꽃은 넝쿨이 막 뻗는가 싶으면 핀다. 넓고 커다랗게 핀 호박꽃은 별처럼 황홀했다. 등하굣길 돌담에 무슨 소리가 들려 다가가면 호박꽃 속에 벌들이 가득했다. 양다리 무겁게 꿀을 단 벌들이 날아가기 무섭게, 새로 꿀을 따러 온 벌들이 날아들었다.
우린 슬며시 다가가 재바르게 호박꽃의 끝을 오므려 벌들이 날아가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꽃 속에 벌들이 윙윙거릴 때, 그 호박꽃을 꺾어 마치 불 깡통을 돌리듯 빙빙 호박꽃을 돌렸다. 그렇게 고샅 여기저기 호박꽃은 떨어졌다.
조금 더 자라서는 논과 밭으로 깔을 베러 다녔다. 텃밭을 겸했던 밭둑에는 오이며 가지며 여러 가지 먹을거리가 있었다. 깔 베다 배 고프면 슬쩍슬쩍 밭 주인 몰래 한두 개 따먹곤 했다. 그러다 잡히면 주인에게 혼쭐이 났고, 부모님께 혹독한 벌을 밤새 받아야 했다.
개구쟁이자 심술쟁이였던 우리는 다음날 그 분풀이를 애먼 호박에다 했다. 먼저 밭둑에서 제일 크고 좋은, 주인이 눈독을 들이고 있을 호박을 골랐다. 그리고 꼭지 부분을 둥글게 따서 속의 호박씨를 꺼내고 그 빈 속을 우리 소변으로 채웠다. 그리고 다시 꼭지로 막고 낄낄댔다. 호박에 말뚝 박기는 양반이었다. 애먼 호박에 무슨 고약한 심보였단 말인가.
다 익어야만 먹는 수박과 달리 호박은 애호박은 물론이려니와 호박잎 그리고 늙은 호박, 심지어 호박씨까지 먹는다. 호박죽, 호박떡, 애호박 찌개, 호박 지짐, 우리는 호박을 이렇게 즐기면서도 정작 귀한 잔칫상에서는 쏙 뺀다. 꼭 첩의 자식 같은 호박.
이뿐인가. 괜스레 못생긴 사람을 호박 그것도 호박꽃에 비유하여 호박과 호박꽃을 깔아뭉개고, 자기 못생긴 줄은 모르고 호박꽃에 비유했다고 노발대발 난리를 떤다. 또 쑥덕거리면 이를 시기하여 호박씨 깐다고 애먼 호박에 누명을 씌운다. 엉덩이나 가슴이 펑퍼짐하면 호박 같다고 하고, 혹여 조금 잘난 척이라도 하면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지 않는다며 그 유전자까지 비하한다. 그렇게 혹평을 받을 만큼 호박 잘못이 있는 걸까.
오이나 가지 등 각종 채소는 밭 가운데 심고 정성껏 가꾼다. 수박은 원두막까지 짓고 지킨다. 호박은 그런 법이 없다. 하지만 밭둑에 밀려나서도 잘도 자란다. 두엄이나 거름 따위는 호사다. 부잣집 외동아들 같은 수박과 달리 머슴 집 자식 같은 호박은 심어만 놓으면 밭둑을 온통 다 덮고 여기저기 주렁주렁 열매를 맺는다. 비록 과일 축에도 끼지 못하지만, 호박은 돌담을 덮고 지붕을 덮고 사방팔방 곧잘 뻗어나갔다.
각화 농산물시장 뒤쪽 철제 계단, 그 위에 계단 층층이 놓인 호박, 예쁘게 포장한 다른 채소와 달리 누가 가져가도 상관없다는 듯 버려진 듯 놓인 늙은 호박 위로 가을이 떨어지고 있다.
다른 채소나 과일처럼 냉장고에 들어가 호강하는 적도 없고, 귀한 손님이라도 오면 얼른 손님맞이 대접을 해본 적도 없는 호박, 여느 때는 넝쿨 채 들어가 행운을 안기기도 하는 호박에 대해 우린 너무 인색하게 대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일까. 호박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녀석은 꼭 우리 같다. 호박은 꼭 호남 같다. 다른 지역은 공업을 앞세워 수박처럼 우대하면서, 매년 쌀값마저 하락하고 인구 유출도 심한데, 여전히 버림받고 외면당하는 우리 전라도, 구석에 쌓여 있는 호박을 보고 있으면 나는 꼭 나를, 우리를 보는 것 같다. 꼭 전라도를 꼭 전라도 사람을 보는 것 같다.
각화동 농산물시장에 들렀다. 농촌의 들판, 농민들의 노고가 모여서 생기가 돈다. 무릇 반도체, 자동차, 선박만을 앞세워 달려온 나라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여기 농산물을 삼키면서 오직 살려면 공산품을 살려야 한다는 말만 뱉는다. 그러나 그 공산품 자동차나 선박 그리고 반도체 어느 것 하나 우리가 먹을 수 없다. 거기에 따른 환경오염, 기후변화는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른 봄, 호박꽃은 넝쿨이 막 뻗는가 싶으면 핀다. 넓고 커다랗게 핀 호박꽃은 별처럼 황홀했다. 등하굣길 돌담에 무슨 소리가 들려 다가가면 호박꽃 속에 벌들이 가득했다. 양다리 무겁게 꿀을 단 벌들이 날아가기 무섭게, 새로 꿀을 따러 온 벌들이 날아들었다.
개구쟁이자 심술쟁이였던 우리는 다음날 그 분풀이를 애먼 호박에다 했다. 먼저 밭둑에서 제일 크고 좋은, 주인이 눈독을 들이고 있을 호박을 골랐다. 그리고 꼭지 부분을 둥글게 따서 속의 호박씨를 꺼내고 그 빈 속을 우리 소변으로 채웠다. 그리고 다시 꼭지로 막고 낄낄댔다. 호박에 말뚝 박기는 양반이었다. 애먼 호박에 무슨 고약한 심보였단 말인가.
다 익어야만 먹는 수박과 달리 호박은 애호박은 물론이려니와 호박잎 그리고 늙은 호박, 심지어 호박씨까지 먹는다. 호박죽, 호박떡, 애호박 찌개, 호박 지짐, 우리는 호박을 이렇게 즐기면서도 정작 귀한 잔칫상에서는 쏙 뺀다. 꼭 첩의 자식 같은 호박.
이뿐인가. 괜스레 못생긴 사람을 호박 그것도 호박꽃에 비유하여 호박과 호박꽃을 깔아뭉개고, 자기 못생긴 줄은 모르고 호박꽃에 비유했다고 노발대발 난리를 떤다. 또 쑥덕거리면 이를 시기하여 호박씨 깐다고 애먼 호박에 누명을 씌운다. 엉덩이나 가슴이 펑퍼짐하면 호박 같다고 하고, 혹여 조금 잘난 척이라도 하면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지 않는다며 그 유전자까지 비하한다. 그렇게 혹평을 받을 만큼 호박 잘못이 있는 걸까.
오이나 가지 등 각종 채소는 밭 가운데 심고 정성껏 가꾼다. 수박은 원두막까지 짓고 지킨다. 호박은 그런 법이 없다. 하지만 밭둑에 밀려나서도 잘도 자란다. 두엄이나 거름 따위는 호사다. 부잣집 외동아들 같은 수박과 달리 머슴 집 자식 같은 호박은 심어만 놓으면 밭둑을 온통 다 덮고 여기저기 주렁주렁 열매를 맺는다. 비록 과일 축에도 끼지 못하지만, 호박은 돌담을 덮고 지붕을 덮고 사방팔방 곧잘 뻗어나갔다.
각화 농산물시장 뒤쪽 철제 계단, 그 위에 계단 층층이 놓인 호박, 예쁘게 포장한 다른 채소와 달리 누가 가져가도 상관없다는 듯 버려진 듯 놓인 늙은 호박 위로 가을이 떨어지고 있다.
다른 채소나 과일처럼 냉장고에 들어가 호강하는 적도 없고, 귀한 손님이라도 오면 얼른 손님맞이 대접을 해본 적도 없는 호박, 여느 때는 넝쿨 채 들어가 행운을 안기기도 하는 호박에 대해 우린 너무 인색하게 대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일까. 호박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녀석은 꼭 우리 같다. 호박은 꼭 호남 같다. 다른 지역은 공업을 앞세워 수박처럼 우대하면서, 매년 쌀값마저 하락하고 인구 유출도 심한데, 여전히 버림받고 외면당하는 우리 전라도, 구석에 쌓여 있는 호박을 보고 있으면 나는 꼭 나를, 우리를 보는 것 같다. 꼭 전라도를 꼭 전라도 사람을 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