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립미술관의 존재 이유 - 박성천 문화부장·편집국 부국장
2024년 11월 13일(수) 00:00
올해 문화예술계 최고의 뉴스는 단연 광주 출신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었다. 한국 작가로나 아시아 여성 작가로나 첫 번째 수상이었던 터라 그 감격은 자못 컸다. 우리 문학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린 쾌거이자 한국 문학의 세계화에 성큼 다가섰다는 평가가 나왔다.

스웨덴 한림원은 선정 이유에 대해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생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밝혔다. 한강의 작품이 갖는 주제적인 측면과 가치, 이를 풀어내는 창작 기법 등이 모두 탁월했음을 방증한다. 덧붙여 한림원은 “그는 육체와 영혼,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연결에 대한 독특한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문체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되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한강의 노벨상이 시사하는 것

상을 수여하는 권위 있는 기관인 한림원의 평가는 정치하면서도 객관적이었다. 글을 쓰는 작가나 여타 예술의 길을 가는 이들은 한 번쯤 귀담아들어야 할 경구인 듯했다. 비단 작가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예술가를 지원하거나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관들도 숙고해야 할 내용이다.

한강의 노벨상 평가와 맞물려 오버랩되는 전시가 있다. 광주시립미술관이 지난 9월 6일부터 12월 1일까지 진행하는 동학 특별전 ‘시천여민’(侍天與民)이 그것이다. ‘하늘을 받들고 사람들과 공동체를 이뤄나간다’는 주제는 동학정신과 오월정신을 포괄한다. 두 정신이 시대와 세대를 초월해 추구해야 할 가치라는 데 대해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얼마나 의미 있게 새로운 감각으로 구현했는가라는 점이다.

동학 특별전은 광주비엔날레 창설 30주년을 기념해 같은 기간(9월 6일~12월 1일)에 열리고 있다. 타이틀에 맞게 새로운 비전과 감성, 방식으로 담아내고 그 과정 또한 동학과 광주정신에 부합하는 ‘민주적 방식의 공공성’에 기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미술계 안팎의 평가는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과거 복귀형 방식으로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이 다수다. 시립미술관에 따르면 지난 3일까지 두 달여 기간 관람객은 고작 1만 8622명에 그쳤다. ‘광주비엔날레 창설 30주년과 연계한 특별전’이라는 수사를 무색케 하는 초라한 결과다. 문제는 또 있다. 시립미술관이 미술 담론 형성을 위해 열었던 올해 월례 포럼(3월~10월)이 모두 ‘동학’과 ‘오월’ 관련 주제로 짜여졌다는 점이다. 가치의 중요성은 차치하더라도 획일적이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에 대해 문화계 인사 A씨는 “80년대는 현장을 재구성하거나 시민들의 분노를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전시가 구성됐다. 그러나 지금은 세대와 시대가 바뀌었다. 일부 예외는 있지만 특별전에 같은 작품이 나오고 또 나오는 복제형의 전시를, 시대착오적인 방식으로 개최했다”고 지적했다.

지난여름에 펼쳤던 유료 특별전 ‘우주의 언어-수’x‘한국미술명작’전에 대한 뒷말도 여전하다. 문화계 인사 B씨는 “시립미술관이라면 ‘한국미술명작’ 같은 경우, 해외 전시가 아니기에 국내의 센세이션한 소장품을 대여했어야 했다”며 “또한 30년이 넘은 공립미술관이라면 기획사에 맡길 게 아니라 자체적으로 기획해 전시를 열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시립미술관의 일련의 전시를 보며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이 어떻게 주제를 구현하고 시적인 문체를 구사했는지 궁금했다. 필자는 수상 직후 한강의 부친 한승원 소설가로부터 딸의 문학에 대해 객관적인 평을 들은 바 있다. “강이(딸)가 포착한 것은 국가 폭력으로 인해 트라우마에 갇힌 사람들이다. 여린 삶의 슬픈 실존이 소설의 핵심을 이룬다”며 “딸의 문장은 지극히 서정적이며 아름답다. 나와 같은 ‘3세대 작가’들은 아무리 탁월해도 흉내낼 수 없는 지점이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3세대 작가들이 활동하던 80년대는 리얼리즘 시대였다.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등 저항적인 작품을 썼다. 미학적, 심미적인 기법보다 고발을 다루는 작품이 주를 이루었다”며 “강이와 같은 4세대 작가들은 저항 이후의 상흔에 포착했다. ‘소년이 온다’의 경우 항거를 밀도 있게 그린 게 아니라 항쟁 이후의 실존, 트라우마에 초점을 맞춰 삶과 죽음에 대한 본질을 미려한 문체로 그렸다”고 했다.



시민이 원하는 전시 고민해야

시립미술관의 이번 ‘동학전’에 대한 비판의 이유는 명확하다. 새로운 시대에 부합하는 재해석은커녕 복제형 전시로 “예술적 울림이 없다”는 것이 주 원인이다. 물론 중국, 일본, 대만 작가의 참여와 개막 당시 미디어퍼포먼스로 차별화를 했다지만 전체적으로 ‘복제형 전시’라는 비판을 면키는 어렵다.

공립미술관은 공공성이 생명이다. 시민들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어떤 전시를 원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그 과정 또한 민주적이어야 한다. 어느 미술계 인사의 말은 곱씹어볼 만하다. “시립미술관은 관장이 못 이룬 꿈을 펼치는 장이 아니다. 혹여 전시를 통해 ‘특정 세력’을 등에 업고 다음 행보를 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갖게 된다”는 말이 헛소문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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