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울 때 도와준 이웃에게 은혜 갚습니다”
2024년 11월 12일(화) 21:30
직접 지은 쌀 3년째 기부 광주 남구 대촌동 최수연씨
사업 망해 내려온 고향서 도움의 손길 덕분에 살아갈 희망 얻어
430여만원 상당 100포 전달…광주 대표로 개성공단 다녀오기도

최수연<오른쪽에서 세번째>씨가 지난 11일 대촌동행정복지센터에 백미 100포를 기부했다. <대촌동행정복지센터 제공>

지난 11일 광주시 남구 대촌동행정복지센터에서 ‘사랑의 쌀’ 백미 100포 전달식이 열렸다. 직접 지은 쌀을 기부한 이는 올해로 3년째 마을 어르신들을 위해 쌀을 나눈 대촌동 주민 최수연(67)씨였다.

최씨는 20kg 쌀 50포와 10kg 쌀 50포 등 430여 만원 상당의 쌀을 전달했다. 특히 이번에는 이웃들이 새로운 맛을 볼 수 있도록 향이 나는 쌀인 ‘향미쌀’을 재배했다.

최씨가 기부를 결정한 건 그가 힘들게 살 때 받은 도움을 잊지 않고 나누기 위해서다. 최씨는 어린시절 고향을 떠나 서울과 울산에서 배 용접 일을 했다. 직장 생활 후 사업을 하다 6개월만에 실패를 겪었던 그는 1987년 오갈데 없는 신세가 돼 고향에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그때 울산에서 친하게 지내던 지인이 성공하면 갚으라며 300만 원을 건넸고, 최씨는 그 돈으로 현재 살고 있는 집을 구했다. 가진 것 없이 설움만 가득하던 시기, 아무 대가 없이 받은 눈물 겨운 돈이었다. 그는 은혜를 꼭 갚고자 아내와 함께 노는 땅을 열심히 일궜다.

“금의환향이 아니라 망해서 왔기 때문에 절망적이었어요. 그 때 받은 도움의 손길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살아갈 희망을 얻었었죠.”

당시 농업기술센터에서 농자금을 빌려 하우스를 짓고 고추, 수박, 토마토 등을 재배하며 살림을 꾸려갔다. 10년 전부터는 약 18만 평 논에 쌀 농사를 지었다. 15년 전에는 광주시 대표로 쌀 100포를 싣고 북한 개성공단에 쌀을 나눌 만큼 일에 더 매진했다. 살림이 나아지자 최씨는 받은 도움을 나눌 방법을 궁리했고, 대촌동 40여 통의 마을 어르신들이 맛있는 햅쌀을 맛볼 수 있도록 기부를 결정했다.

“고향에서 농사를 지을 때 우리 대촌 분들이 물과 전기도 대주며 협조해주셨어요. 제가 열심히 산다고 많이들 도와주셨죠.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한평생 고생하셨는데, 지금 병원에 누워계시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안타까웠어요. 지역을 일궈낸 분들이 존경스럽고 그동안 쉼 없이 일하셨으니까 제가 드릴 수 있는 쌀로 도와드리고 싶었습니다.”

이웃들은 ‘왜 애써서 농사 지어 남 주냐’고 하지만, 그는 그저 뿌듯했다.

3년 전 최씨가 속한 모임이 해산하며 남은 회비 300만원도 회원들과 뜻을 모아 대촌동 주민자치위원회에 쌀을 기부했고, 요양원에 전달됐다. 어렸을 때부터 베풀기를 좋아했던 그는 장애인을 위한 성금도 꾸준히 내고 있다. 아버지의 모습을 본 자녀들도 자연스레 최씨의 기부문화를 배워 실행중이다.

최씨는 앞으로 5년 정도 더 농사지을 생각이다. 그는 “농사 짓는 동안 형편이 되는대로 다른 마을에도 쌀을 기부하고, 노인분들 식사 대접할 수 있도록 쌀을 지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양재희 기자 heestor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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