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오래된 그리움- 김향남 수필가
2024년 11월 03일(일) 22:30 가가
가끔 박물관에 간다. 오래된 것, 침묵하고 있는 것들을 마주하고 있으면 눈요기도 되지만 마음의 시장기가 면해질 때도 많다. 평소 보지 못했던 것,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보고 또 경험하게 해주니 고적한 곳에서 오히려 풍요함을 얻는다고 할까. 넓은 뜰이 있어 산책을 즐길 수도 있으니, 걸어보는 것만으로도 산뜻한 이득을 챙겨오는 셈이다.
나는 지금 한 선비의 초상화 앞에 서 있다. 제목은 ‘심득경 초상’. 공재 윤두서가 1710년에 그린 것이라고 한다. 가지런한 수염과 화사한 얼굴빛, 붉은 입술, 고요한 눈동자. 머리에 쓴 관은 기품이 느껴진다. 정갈하게 차려입은 옷과 흐트러짐 없는 매무새가 단정하고 반듯하다. 옥색 가죽신에 뒤꿈치를 살짝 들어 올린 자세는 생동감을 준다.
그런데 ‘심득경’은 누구일까? 화면 위쪽에는 ‘정재처사심공진(定齋處士沈公眞)’이라고 적혀 있다. 정재는 그의 호(號)일 것이고, 처사는 벼슬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 사는 선비를 일컫는 말이니, 정재처사 심공은 아마도 이름 없는 시골 선비라는 걸까?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근사한 초상화를 남겼을까? 혹시 대단한 세도가였거나 만석꾼 부자라도 됐을까? 아니면 출중한 실력으로 남다른 업적을 이뤘거나 길이길이 존경할 만한 인품을 지녔다는 말씀? 나는 호기심을 감추지 못한 채 그 앞을 서성인다.
초상을 그린 공재 윤두서는 ‘자화상’으로 유명한 화가다. 그의 자화상은 섬뜩할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주어서 나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부리부리한 눈에 치켜 올라간 눈썹, 두툼한 콧날과 꽉 다문 입술, 한 올 한 올 나부끼듯 뻗쳐오른 수염. 그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목도 상체도 없이 얼굴만 있는 듯한 기이한 형상이었다. 머리엔 탕건을 썼으나 그마저도 윗부분은 잘려있고, 보이는 것이라곤 뚫어져라 정면을 응시하는 커다란 얼굴뿐. 한 치 흐트러짐 없이 올곧은 선비의 모습이라는 평가가 있지만 쉽게 동의하기는 어려웠다.
미완성이라는 게 밝혀진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중요 부분인 얼굴부터 먹선을 올려놓고 몸체는 아직 유탄으로 형태만 잡은 상태로 있다가 언젠가 그 부분마저 지워져 버렸다는 것이다. 완성되었다면 지금보다는 부드러워졌을 테지만 미완으로 남은 게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 않다면 어디서 그토록 혁신적인 그림을 만날 수 있었겠는가.
그에 비하면 ‘심득경 초상’은 부드럽고 온화한 느낌이 든다. 담담하고 선한 표정에 뭔가를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는 표정이다.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는 것도 같고, 물끄러미 건너편을 바라보는 것도 같고, 초연히 세상을 관조하는 것도 같다. 같은 화가의 솜씨인데 ‘자화상’과는 확연히 다르게 와닿는다.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관대함을 보여주는 것일까? 그림을 보고 또 본다.
마침 해설사가 다가온다. 그는 친절하게 그림을 설명해주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다. 심득경은 윤두서의 아저씨뻘인데 두 사람은 진사시에 급제했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고 서로 의지하며 학문과 예술을 논하는 막역한 사이였다. 그런데 그만 심득경이 일찍 죽었다. 깊고 아득한 슬픔 속에 화가는 마음을 다해 초상 한 폭을 완성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생생한지 죽은 사람이 다시 돌아온 듯 온 가족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여느 때 같으면 그냥 그런가 보다 했을 그림 한 폭이 오늘따라 유독 마음을 끈다. 왜 그러지? 쓸쓸한 것도 같고 비어 있는 것도 같은 저 눈동자 때문인가? 사진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오직 기억에 의존하여 그린 초상화 한 장, 오롯이 그리운 마음만으로 되살려낸 벗의 귀환이다. 그래서 그런가?
전시실을 나와 뜰을 걷는다. 정원의 나무들은 스스로 고행을 자처하는 중이다. 바람이 분다. 저 오래된 눈동자처럼 서늘하고 공허한 바람이다. 부드럽고 살가운 바람이다. 이쪽과 저쪽, 옛날과 지금을 넘나드는 유구한 바람이다.
그러니까 오늘 나는 오래된 그림 한 폭, 유구한 그리움 한 장을 본 것이다. 가버린 벗과 그 벗을 그린 화가와 그들 사이로 오가는 애틋한 마음을, 박물관의 한 부스 안에서 새삼 발견한 것이다. 그 마음에 붙들려 아직도 서성이는 것이다.
그런데 ‘심득경’은 누구일까? 화면 위쪽에는 ‘정재처사심공진(定齋處士沈公眞)’이라고 적혀 있다. 정재는 그의 호(號)일 것이고, 처사는 벼슬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 사는 선비를 일컫는 말이니, 정재처사 심공은 아마도 이름 없는 시골 선비라는 걸까?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근사한 초상화를 남겼을까? 혹시 대단한 세도가였거나 만석꾼 부자라도 됐을까? 아니면 출중한 실력으로 남다른 업적을 이뤘거나 길이길이 존경할 만한 인품을 지녔다는 말씀? 나는 호기심을 감추지 못한 채 그 앞을 서성인다.
그에 비하면 ‘심득경 초상’은 부드럽고 온화한 느낌이 든다. 담담하고 선한 표정에 뭔가를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는 표정이다.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는 것도 같고, 물끄러미 건너편을 바라보는 것도 같고, 초연히 세상을 관조하는 것도 같다. 같은 화가의 솜씨인데 ‘자화상’과는 확연히 다르게 와닿는다.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관대함을 보여주는 것일까? 그림을 보고 또 본다.
마침 해설사가 다가온다. 그는 친절하게 그림을 설명해주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다. 심득경은 윤두서의 아저씨뻘인데 두 사람은 진사시에 급제했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고 서로 의지하며 학문과 예술을 논하는 막역한 사이였다. 그런데 그만 심득경이 일찍 죽었다. 깊고 아득한 슬픔 속에 화가는 마음을 다해 초상 한 폭을 완성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생생한지 죽은 사람이 다시 돌아온 듯 온 가족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여느 때 같으면 그냥 그런가 보다 했을 그림 한 폭이 오늘따라 유독 마음을 끈다. 왜 그러지? 쓸쓸한 것도 같고 비어 있는 것도 같은 저 눈동자 때문인가? 사진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오직 기억에 의존하여 그린 초상화 한 장, 오롯이 그리운 마음만으로 되살려낸 벗의 귀환이다. 그래서 그런가?
전시실을 나와 뜰을 걷는다. 정원의 나무들은 스스로 고행을 자처하는 중이다. 바람이 분다. 저 오래된 눈동자처럼 서늘하고 공허한 바람이다. 부드럽고 살가운 바람이다. 이쪽과 저쪽, 옛날과 지금을 넘나드는 유구한 바람이다.
그러니까 오늘 나는 오래된 그림 한 폭, 유구한 그리움 한 장을 본 것이다. 가버린 벗과 그 벗을 그린 화가와 그들 사이로 오가는 애틋한 마음을, 박물관의 한 부스 안에서 새삼 발견한 것이다. 그 마음에 붙들려 아직도 서성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