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수상 소식을 듣던 날- 김미은 편집국 부국장·여론매체부장
2024년 10월 30일(수) 00:00 가가
“무슨 큰 사고가 터졌나?”
취재 후 휴대폰을 들여다보니 메시지 수십 개가 들어와 있었다. 말도 안되는 사건 사고가 일어나고는 했던지라 또 큰 일이 난 건 아닌가 하는 불안한 마음부터 들었다. 대형사고가 터진 건 맞았다. 믿기지 않는 행복한 사고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독일 쾰른에서 취재중이었다. 메시지 중에는 앞서 슈투트가르트 취재에 함께 했던 통역자가 보낸 것도 있었다. 그는 “정말 눈물 나는 날”이라고 했다. 그는 독일에서 한국 문학을 소개하는 작은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었고, 1년 넘게 준비해온 김멜라 작가의 소설 출간을 앞둔 참이었다. 독일에서 한국 문학을 출판하고, 서점에 책을 입고시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지 이야기하던 그에게 이번 소식은 큰 힘이 된 듯했다. “보람을 느끼며 다른 작가님들도 열심히 키워야죠.” 그는 의지를 다졌다.
며칠 뒤 네덜란드 로테르담 인근 도서관을 취재차 찾았을 땐 안내를 맡은 직원이 우리를 ‘한강 코너’로 데리고 갔다. 마침 통역자도 광주 출신. 우리는 한강이 “광주에서 태어났다”며 자랑했고, 그는 “환타스틱, 어메이징”을 외쳤다.
취재 중 우연히 독일 본 역사박물관을 찾게 됐다. 통역자 집에 이틀간 머물 기회가 있었는데, 바로 근처가 역사박물관이었다. 관람한 전시는 ‘히틀러(Nach Hitler) 이후-국가사회주의(나치즘) 에 대한 독일의 논쟁’이었다. 몇 년전 ‘도시가 역사를 기억하는 법’ 시리즈 취재 차 독일과 폴란드의 나치 흔적을 방문했던 터라 전시가 궁금했다.
나치·히틀러를 기억하는 법
히틀러의 광기와 죽음, 유대인 수용소의 유품 등 과거의 역사와 함께 빌리 브란트 독일 총리가 유대인 희생자 추모탑 앞에서 무릎끓고 사죄하는 사진, 네오 나치 관련 행사, 역사를 기록한 예술가들의 작품, 학교 행사 등 관련 자료들이 가감없이 전시돼 있었다. 무엇보다 80대 노인부터 10대 학생들까지 패널에 적힌 글들을 하나하나 읽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극우세력들이 점차 활개를 치고 있는 유럽의 상황이나, 5·18과 민주화 역사에 대한 왜곡이 여전히 멈추지 않는 한국을 떠올리며 ‘5·18을 기억하는 법’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이번 유럽행(行)에서는 ‘역사’가 바로 우리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북한에서 날아온 풍선이 인천공항 활주로에 떨어져 3시간이나 늦게 출발했고, 우연히 들른 독일박물관에서는 국가사화주의의 과거와 현재를 대면했다. 슈튜트가르트에서는 푸른색 다윗별 국기를 내세운 이스라엘인들의 집회와 팔레스타인 시위대의 가두 시위를 몇 분 간격으로 보았다.
다시 한강 작가의 이야기. 나에게 한강은 ‘1970년생’이라는 단어로 각인된다. 1994년 첫 작품집 ‘여수의 사랑’수록작들을 읽고 너무 놀라 나이를 확인했었다. 새삼 내 나이도 생각해보고, 20대 초반에 이런 글을 써내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중견 작가가 되면 그는 어떤 모습일까 상상했었다.
이번 수상과 관련, 작품과 함께 인터뷰 등 그의 행보에 감명받은 이들이 많은 듯하다. 그를 보며 떠올린 단어는 ‘품위’와 ‘본질’이다. 전쟁중에 요란스런 축하 행사를 열지 않겠다는 것, 자신의 이름을 딴 어떤 것도 하지 않겠다는 말에서는 무려 세 개의 문학관을 보유하고 있는 유명 소설가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묵묵히 근본을 찾아가는 자세에서는 스무살의 나이에 한국 피아니스트로는 처음으로 ‘클래식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그라모폰상 2관왕’을 달성한 임윤찬도 떠올랐다.
노벨문학상 이후, 광주의 책읽기
한강 작가 덕에 책읽기에 관심이 높아졌다. 클래식을 한번도 제대로 듣지 않았던 사람이 임윤찬이 연주하는, 40분 분량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3번’을 반복해서 듣는 불가사의함에 빠졌다는 고백처럼, 인터넷 댓글 중 “성인이 되고 나서 책 한권 읽지 않았던 내가 책을 구입했다”는 50대 남성의 글이 눈에 띄었다.
며칠 전, ‘소년이 온다’ 마지막 장면에서 모티브를 따 ‘책커버’를 만든 서점 ‘책과 생활’의 풍경은 낯설면서도 뿌듯했다. “와, 한강 책을 한꺼번에 사네요?”, “이제 책 읽는 게 대세가 됐답니다.” 20대 발랄한 여대생들이 ‘한강 선생님’의 책을 읽을 생각에 너무나 행복하다고 말하는 풍경이라니. 광주시도 책읽기 관련 사업들을 준비하는 모양이다. 실적 쌓기에 급급하지 말고, 서두르지 말고, 큰 그림을 그리며 ‘품위있게’ 사업이 진행되면 좋겠다.
5·18 취재차 온 일본 아사히 신문 기자는 상무관을 가리키며 “저 곳이 ‘소년이 온다’에 나오는 곳이냐”고 물었었다. 오월 어머니들이 ‘소년이 온다’의 구절을 낭독했던 갤러리 포도나무 전시는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회사 앞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엔 이런 현수막이 붙어 있다.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시인 출신 기록관장이 고른 글귀는 인상적이었다.
한강과 김대중 전대통령과 ‘소년이 온다’. 이번 출장은 멀리 떠나와 광주를 생각한 날들이었다. 어제 KIA타이거즈의 V12 달성 소식까지 더해지니, 정말 오랜만에 광주에 밝은 빛이 비추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이제 광주는 ‘희망’의 다른 이름이면 좋겠다.
취재 후 휴대폰을 들여다보니 메시지 수십 개가 들어와 있었다. 말도 안되는 사건 사고가 일어나고는 했던지라 또 큰 일이 난 건 아닌가 하는 불안한 마음부터 들었다. 대형사고가 터진 건 맞았다. 믿기지 않는 행복한 사고가.
나치·히틀러를 기억하는 법
히틀러의 광기와 죽음, 유대인 수용소의 유품 등 과거의 역사와 함께 빌리 브란트 독일 총리가 유대인 희생자 추모탑 앞에서 무릎끓고 사죄하는 사진, 네오 나치 관련 행사, 역사를 기록한 예술가들의 작품, 학교 행사 등 관련 자료들이 가감없이 전시돼 있었다. 무엇보다 80대 노인부터 10대 학생들까지 패널에 적힌 글들을 하나하나 읽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극우세력들이 점차 활개를 치고 있는 유럽의 상황이나, 5·18과 민주화 역사에 대한 왜곡이 여전히 멈추지 않는 한국을 떠올리며 ‘5·18을 기억하는 법’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이번 유럽행(行)에서는 ‘역사’가 바로 우리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북한에서 날아온 풍선이 인천공항 활주로에 떨어져 3시간이나 늦게 출발했고, 우연히 들른 독일박물관에서는 국가사화주의의 과거와 현재를 대면했다. 슈튜트가르트에서는 푸른색 다윗별 국기를 내세운 이스라엘인들의 집회와 팔레스타인 시위대의 가두 시위를 몇 분 간격으로 보았다.
다시 한강 작가의 이야기. 나에게 한강은 ‘1970년생’이라는 단어로 각인된다. 1994년 첫 작품집 ‘여수의 사랑’수록작들을 읽고 너무 놀라 나이를 확인했었다. 새삼 내 나이도 생각해보고, 20대 초반에 이런 글을 써내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중견 작가가 되면 그는 어떤 모습일까 상상했었다.
이번 수상과 관련, 작품과 함께 인터뷰 등 그의 행보에 감명받은 이들이 많은 듯하다. 그를 보며 떠올린 단어는 ‘품위’와 ‘본질’이다. 전쟁중에 요란스런 축하 행사를 열지 않겠다는 것, 자신의 이름을 딴 어떤 것도 하지 않겠다는 말에서는 무려 세 개의 문학관을 보유하고 있는 유명 소설가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묵묵히 근본을 찾아가는 자세에서는 스무살의 나이에 한국 피아니스트로는 처음으로 ‘클래식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그라모폰상 2관왕’을 달성한 임윤찬도 떠올랐다.
노벨문학상 이후, 광주의 책읽기
한강 작가 덕에 책읽기에 관심이 높아졌다. 클래식을 한번도 제대로 듣지 않았던 사람이 임윤찬이 연주하는, 40분 분량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3번’을 반복해서 듣는 불가사의함에 빠졌다는 고백처럼, 인터넷 댓글 중 “성인이 되고 나서 책 한권 읽지 않았던 내가 책을 구입했다”는 50대 남성의 글이 눈에 띄었다.
며칠 전, ‘소년이 온다’ 마지막 장면에서 모티브를 따 ‘책커버’를 만든 서점 ‘책과 생활’의 풍경은 낯설면서도 뿌듯했다. “와, 한강 책을 한꺼번에 사네요?”, “이제 책 읽는 게 대세가 됐답니다.” 20대 발랄한 여대생들이 ‘한강 선생님’의 책을 읽을 생각에 너무나 행복하다고 말하는 풍경이라니. 광주시도 책읽기 관련 사업들을 준비하는 모양이다. 실적 쌓기에 급급하지 말고, 서두르지 말고, 큰 그림을 그리며 ‘품위있게’ 사업이 진행되면 좋겠다.
5·18 취재차 온 일본 아사히 신문 기자는 상무관을 가리키며 “저 곳이 ‘소년이 온다’에 나오는 곳이냐”고 물었었다. 오월 어머니들이 ‘소년이 온다’의 구절을 낭독했던 갤러리 포도나무 전시는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회사 앞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엔 이런 현수막이 붙어 있다.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시인 출신 기록관장이 고른 글귀는 인상적이었다.
한강과 김대중 전대통령과 ‘소년이 온다’. 이번 출장은 멀리 떠나와 광주를 생각한 날들이었다. 어제 KIA타이거즈의 V12 달성 소식까지 더해지니, 정말 오랜만에 광주에 밝은 빛이 비추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이제 광주는 ‘희망’의 다른 이름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