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빈 가게 앞을 지나며 - 김향남 수필가
2024년 10월 21일(월) 00:00 가가
우리 동네 아파트 상가는 빈 곳이 대부분이다. 입주한 지 일 년이 넘어가고 있으나 마트와 세탁소, 미용실, 커피점만 몇 개 들어와 있을 뿐 나머지 상가는 다 비어 있다. 1300세대나 되는 곳이니 그리 작은 단지도 아니건만 활성화될 기미라고는 전혀 안 보인다. 벌리고자 했던 일도 오히려 접어버리는 분위기다. ‘네일아트’ 입점을 예고하는 현수막이 내내 유리창에 펄럭이고 있더니 어느 틈엔지 거둬지고 없고, 곧 오픈할 것 같던 ‘돈가스점’은 웬일인지 공사를 중단한 지 한참 되었다. 동네 입구 ‘국밥집’은 개업한다는 소식만 벌써 서너 달은 됐지 싶다. 예전 같으면 으레 피아노, 미술, 보습학원 들이 최소 하나씩은 들어섰을 텐데 아직 기미가 없다. 워낙 외진 동네여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시대가 달라졌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비단 우리 동네 상가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거리마다 알록달록 크고 작은 가게들이 즐비하거니와 언뜻 보면 모두 성업 중인 것 같으나 꼭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개점휴업 상태거나 아예 폐업한 곳도 있을뿐더러 유령건물처럼 숫제 빈 채로 서 있기도 하다. 문은 굳게 닫혀있고 새 임차인을 찾는 현수막은 색조차 바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는 우리 삶의 방식을 통째로 바꾸어버렸다. 팬데믹이 계속되는 동안은 외출을 자제하고 어쩔 수 없이 온라인 세상으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 생필품을 구매하는 것도, 외식이 필요할 때도, 회삿일을 할 때도, 심지어 배우고 가르치는 학교생활마저도 온라인으로 대체해야 했다. 온라인이 없었다면 어쩔 뻔했을까 싶게 삶의 대부분을 온라인에 의존하며 버텨 왔다.
버티고 나면 괜찮을 줄 알았으나 사정은 그렇지 않았다. 그렇게 버텨 오다 아주 습관이 되어버렸는지 쉽게 탄성을 회복하지 못했다. 사람들의 소비 형태는 그대로 굳어지다시피 했고 오히려 돌아가기를 꺼리는 형국이 됐다. 가성비 넘치는 온라인과 비대면 세계의 확장은 오프라인 상점들의 매출을 급속히 떨어트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많은 자영업 종사자들이 직격탄을 맞게 되었고 부득이 영업을 중단하거나 폐업하는 사태가 속출했다. 높은 임대료와 형편없는 수입, 금리 인상, 소비심리 위축도 한사코 생계를 위협하는 중이다.
사정이 이러한데 줄줄이 비어 있는 상가를 보자니 걱정이 앞선다. 아무리 봐도 공급 과잉이고 계산 착오지 싶다. 달라진 세상 탓을 해야 할지, 지나친 욕심이었음을 반성해야 할지 알 수 없다. 자신만 겪는 것이 아니라고 위로를 해야 할지 원망을 해야 할지도 알 수 없다. 세상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고, 삶은 생각보다 어렵고 복잡한 일이라는 것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산책길, 그 앞을 지나간다. 그 사이 무슨 새로운 게 생기지는 않았는지 행여나 하고 살피는데, 문득 한 사람이 걸어간다. 낯익은 듯 아닌 듯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 움직이는 한 존재, 가게 유리문에 비친 내 모습이다. 밤기차를 타고 가다 창밖을 보려고 고개를 돌렸을 때, 창밖보다 먼저 내 얼굴을 마주쳤던 것처럼 낯설고 당혹스럽다. 유리문 저편의 내가 나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아 보고 또 본다. 안에는 나만 있는 게 아니다. 길가의 가로수도 있고 자동차도 지나가고, 그리고 이제 막 올라오기 시작한 햇살도 남실거린다. 이쪽과 저쪽이 서로를 엿보는 수상한 세상이다.
유리문에 바투 몸을 붙여 안쪽을 들여다본다.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유리에 어려 있던 풍경도 사라지고 없다. 사방은 벽으로 막혀 있고 가운데는 텅 비어 있다. 텅 빈 저 속이 적소처럼 적막하다. 유폐된 꿈들의 공허한 빈칸. 문득 빈칸이 나에게 묻는다. 나는 비어 있습니다. 당신도 나처럼 비어 있습니까?
며칠 전부터 빈칸마다 새 현수막이 걸렸다. ‘단지 내 독점 특별 분양’이라는 희고 굵은 글씨가 붉은 천 위에 선명하게 박혀 있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을 위하여 다시 새 마음 새 단장을 하고서 산뜻하게 나서본 것이리라. 아닌 게 아니라 유리문마다 홍조가 돌고 제법 생기가 느껴진다. 내 빈 속도 자꾸 부풀어 오르는 듯싶다.
사정이 이러한데 줄줄이 비어 있는 상가를 보자니 걱정이 앞선다. 아무리 봐도 공급 과잉이고 계산 착오지 싶다. 달라진 세상 탓을 해야 할지, 지나친 욕심이었음을 반성해야 할지 알 수 없다. 자신만 겪는 것이 아니라고 위로를 해야 할지 원망을 해야 할지도 알 수 없다. 세상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고, 삶은 생각보다 어렵고 복잡한 일이라는 것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산책길, 그 앞을 지나간다. 그 사이 무슨 새로운 게 생기지는 않았는지 행여나 하고 살피는데, 문득 한 사람이 걸어간다. 낯익은 듯 아닌 듯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 움직이는 한 존재, 가게 유리문에 비친 내 모습이다. 밤기차를 타고 가다 창밖을 보려고 고개를 돌렸을 때, 창밖보다 먼저 내 얼굴을 마주쳤던 것처럼 낯설고 당혹스럽다. 유리문 저편의 내가 나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아 보고 또 본다. 안에는 나만 있는 게 아니다. 길가의 가로수도 있고 자동차도 지나가고, 그리고 이제 막 올라오기 시작한 햇살도 남실거린다. 이쪽과 저쪽이 서로를 엿보는 수상한 세상이다.
유리문에 바투 몸을 붙여 안쪽을 들여다본다.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유리에 어려 있던 풍경도 사라지고 없다. 사방은 벽으로 막혀 있고 가운데는 텅 비어 있다. 텅 빈 저 속이 적소처럼 적막하다. 유폐된 꿈들의 공허한 빈칸. 문득 빈칸이 나에게 묻는다. 나는 비어 있습니다. 당신도 나처럼 비어 있습니까?
며칠 전부터 빈칸마다 새 현수막이 걸렸다. ‘단지 내 독점 특별 분양’이라는 희고 굵은 글씨가 붉은 천 위에 선명하게 박혀 있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을 위하여 다시 새 마음 새 단장을 하고서 산뜻하게 나서본 것이리라. 아닌 게 아니라 유리문마다 홍조가 돌고 제법 생기가 느껴진다. 내 빈 속도 자꾸 부풀어 오르는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