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현대 여성 작가, 백년의 시간을 뛰어 넘다
2024년 10월 11일(금) 16:00
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박화성·박서련 지음
‘소설, 잇다’ 시리즈는 근대 여성 작가와 현대 여성 작가의 소설을 함께 읽는 기획이다. 가부장제와 식민지 체제 아래에서도 자신만의 삶과 문학을 만들어 나간 근대 여성작가의 작품에 제 위치를 찾아주고, 더불어 그들의 궤적을 이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일궈나가고 있는 현대 여성 작가의 작품을 통해 백 년의 시간을 뛰어 넘는 문학의 힘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백신애·최진영(‘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 김말봉·박솔뫼(‘기도를 위하여’) 등이 짝을 이룬 책이 발간됐다.

여섯번째 시리즈의 주인공은 박화성과 작가 박서련이다. 1932년 동아일보에 ‘백화’를 연재하며 한국 문학 사상 최초로 장편소설을 쓴 박화성은 노동자와 민중, 여성들이 억압받는 현실을 묘사한 작품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가다. 박서련은 일제 시대 고공 농성 노동자를 등장시킨 ‘체공녀 강주룡’을 비롯해 다양한 여성 인물들을 선보여왔다.

박화성의 작품으로는 일제시대 실업구제 명목으로 진행된 공사의 동맹 파업을 소재로 한 ‘하수도 공사’가 실렸다. 임금착취에 맞서 파업을 이끄는 노동조합 지도자 서동권과 노동자들, 일본인 관리의 대결이 사실적으로 펼쳐지며 더불어 동권과 용희의 사랑 이야기가 한 데 어우러졌다.

책 제목 ‘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는 박서련이 ‘하수도 공사’를 변주한 작품이다. “나는 우리의 사랑이 현재 우리 정세에 합당하지 않기 때문에 항상 스스로 억제하는 때가 많다”라고 용희에게 고백하는 동권의 대사에서 차용했다.

박서련 소설 속 배경은 대학교 독서동아리다. 인문학 독서동아리 회장인 진은 총여학생회 재건이라는 포부를 안고 먼저 총학생회장에 선거에 출마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같은 동아리 회원이자 진의 레즈비언 애인인 림도 그를 돕지만 선거 당선을 위해 둘의 관계를 비밀에 부쳐야하지 않겠냐는 진의 이야기에 완벽히 동의할 수는 없다.

림의 제안으로 독서 토론 시간에 박화성의 ‘하수도 공사’를 함께 읽게 된 회원들. 열띤 의견이 오고 가는 가운데 림은 용희의 마음을 빌어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정세에 합당한 연애를 하고 있어요. 정세에 합하지 않은 연애 같은 건 세상에 없어요. 아마도 용희는 동건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었을 거예요.”

책에는 35년만의 대홍수로 목숨을 잃은 딸을 통해 빈부격차에 비례하는 자연재해의 피해와 농민의 참상을 드러낸 박화성의 단편 ‘홍수전후’, ‘호박’이 함께 실렸으며 천선란은 자전적 에세이 ‘총화’를 발표했다.

한편 조만간 ‘소설, 잇다’ 시리즈를 통해 강경애와 한유주, 나혜석과 백수린의 책이 출간될 예정이다.

<작가정신·1만6000원>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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