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도심 5·18 폄훼 정당 현수막…막을 방법도 없다
2024년 08월 21일(수) 20:10
운암동·서구 서창동·광산구 무진대로 등에 내걸려 ‘눈살’
시, 대법 판결에 5·18 왜곡 정당 현수막 제한 조례 삭제

21일 광주시 북구 운암동 예술의전당 인근 도롯가에 ‘5·18정신 헌법전문 수록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정당현수막이 걸려 있다. /김다인 기자 kdi@kwangju.co.kr

최근 광주시 북구 운암동과 서구 서창동, 광산구 무진대로 등지에 ‘5·18 헌법수록 절대 반대, 국민 명령이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렸다.

지난 14일 ‘가가호호 공명선거당’이 내건 정당현수막이다. 당 관계자는 “5·18은 김일성의 지시로 북한군이 개입해 일어난 사건이며,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를 민주화로 둔갑시키는 바람에 현재 여야 가릴 것 없이 우리나라가 북한 공산당 세력에 넘어가고 있는 상황”이라며 “북한이 개입해 일어난 사건을 헌법 전문에 싣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현수막 게재 이유를 밝혔다.

5·18을 폄훼하려는 의도를 갖고 게시한 정당현수막이 버젓이 광주 곳곳에 설치되고 있지만, 앞으로 이같은 현수막을 제재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됐다.

광주시가 대법원 판결에 따라 5·18 비방·폄훼 정당현수막을 제한하던 광주시 조례 조항을 삭제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광주시는 지난 19일 ‘광주시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 조례(안)’에 대한 입법예고를 했다.

개정안에서는 기존 조례에 있던 5·18 비방·폄훼 금지 조항을 담고 있는 제12조의 3 ‘정당 현수막에 대한 표시 방법’을 전부 삭제했다.

대신 제12조 ‘현수막의 표시방법’에 ‘누구든지 현수막 내용에 5·18민주화운동을 비방하거나 폄훼하는 내용을 표시해서는 안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문제는 신설 조항은 일반적인 현수막에 대해서만 적용된다는 것이다. 대법원이 최근 판결에서 “정당현수막은 상위법인 옥외광고물법 시행령에서 규격, 표시·설치 방법 등을 정하고 있으므로 광주시 조례로 제한할 수 없다”고 판시했기 때문이다.

광주시는 궁여지책으로 지난달 1일 조례를 개정해 제12조 ‘정당현수막의 표시 방법 등’에 5·18 비방·폄훼 금지 조항만 남겨놓았으나, 결국 제동이 걸렸다. 조례가 상위법을 위배하고 별도의 제한을 하고 있다는 대법원의 판결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광주시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 이후 옥외광고물법상 정당현수막 내용을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이 사라졌고, 지자체로서도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됐다”며 “5·18 비방·폄훼가 담긴 정당현수막이 걸리면 다른 법을 적용하기 위해 선관위 등에 의뢰하는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차선책으로 광주시는 5·18왜곡처벌법을 강화하는 안을 검토 중이다. 현행법상 5·18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 금지 대상 중 하나인 ‘출판물’을 ‘현수막’이라고 구체적으로 명시하도록 법을 개정하자는 취지다.

조례 개정으로 인한 우려 목소리도 크다. ‘정당한 정당활동’을 핑계로 5·18을 왜곡·폄훼하는 내용을 실은 정당현수막이 광주 곳곳에 내걸린 사례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해 6월에는 광주시 동구 금남로, 광주시청, 5·18기념공원 등지에 ‘자유민주당’이 5·18 유공자를 폄훼하는 정당현수막을 내걸어 논란이 됐다. 당시 현수막에는 ‘5·18유공자 명단 공개하고 가짜유공자 공무원은 사직하라’, ‘5·18 가짜유공자는 국민혈세를 횡령하고 있다’, ‘보상금을 전액 환수하고 사기죄로 엄단하라’는 등 내용이 담겼다.

5·18 관계자들은 지자체가 이같은 5·18 왜곡·폄훼 정당현수막을 제재하지 못한다면 결국 광주시민과 5·18 유족, 유공자들만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양재혁 5·18유족회 회장은 “매번 선거철이나 5·18 관련 이슈가 터질 때마다 크고 작은 정당에서 5·18을 모욕하고 유족들에게 상처를 줬는데, 앞으로는 이같은 일이 더 확산할 것이 불보듯 뻔하다”며 “정당에 지나치게 유리한 법을 개정하거나 악용 소지에 대한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강배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도 “정당 이름만 빌려서 일방적으로 5·18을 비방해도 손쓸 수 없다니 황당한 일이다”며 “왜곡과 폄훼가 반복되지 않도록 타 법을 통해서라도 문제를 차단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광주시는 다음달 9일 까지 개정안에 대한 이의신청 등 의견을 접수할 예정이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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