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부끄러움 - 박용수 수필가·동신여고 교사
2024년 08월 18일(일) 22:30
남광주시장 입구 시내버스 정류장.

버스를 기다릴 때였다. 건너편 병원에 갈 때는 지나쳤는데, 치료를 마치고 버스를 기다릴 때야 보였다. 승차장 옆에 할머니 한 분이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있다. 작달비는 제법 세찼고 왜소한 할머니지만 우산은 비를 긋기에 충분치 않았다. 채소들도 덩달아 비에 젖고 있었다. 다른 할머니들은 비닐로 물건들을 덮어둔 채, 하루 장사를 접은 듯 자리에 없었다. 근데 그 할머니만은 우두커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얼마 전이었다.

동네 공원을 지나다 구석에 무슨 소리가 들려 멈추어 섰다. 한 노인이 나무 그늘에 몸을 감추고 라면을 먹고 있었다. 어깨는 나무젓가락처럼 좁고 버거워 보였다. 달랑 김치 하나가 찬이었다. 두 시가 넘어간 늦은 점심, 식사를 마친 할아버지는 굽은 허리를 펴는가 싶더니 수레로 다가선다. 폐지와 고물, 이글거리는 햇살이 가득 실린 수레였다.

지나는 사람들 시선은 제각각이었다. 몇 봉지 채소를 사는 이도 있고, 부러 폐지를 올려주거나 수레를 밀어주는 이도 있었다. 외면하거나 안타까운 표정으로 버스에 올라탄 이들이 대다수였지만 “자식이 없을까, 젊어서 무얼 했을까.” 혀를 차는 이도 없지 않았다.

버스에 앉아서도 그 잔상이 떠나지 않았다.

굽은 허리로 폐지를 줍느라 납작납작 골목을 쓸고 다니는 이들, 처마 밑이나 길거리에 납작 엎드려 채소를 다듬거나 마늘을 까는 할머니들, 납작납작 엎드려 밭을 매는 여인들과 회색빛 하늘, 납작납작한 박수근의 그림을 보는 듯했다.

포장마차 아줌마가 막 구워낸 호떡같이 납작한, 철거민의 망치에 납작해진 집과 담 같은, 아이들이 노는 비석 치기 돌처럼 동글납작한, 80년 군부정권에 잡혀 두 손이 묶인 채 아스팔트에 납작 엎드린 시민군 같은…

조금 높으면 애당초 바라보기조차 않았기에 저리 낮은 곳에 사는, 처마 밑 제비집 같으면 족한 삶을 살아온, 낮게 낮게 흐르는 물처럼 낮게 살고 바위라도 만나면 깜짝 놀라 금방 휘돌아 흘러왔을 이들.

과연 우리는 그들보다 더 정직하게 떳떳하게 살아온 걸까. 개똥 같은 세상일지라도 모진 세상에 맞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 누구보다 더 야무지게 사는 모습 같았다.

잇속이 빠르지 못하고 눈치가 없거나 영악하지 않아서 높은 곳에 이르지 못하고 밑바닥에 딱 붙어사는 사람들. 시시포스처럼 바위 같은 생의 무게를 반복해서 매일매일 올리는 게 삶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이들 같았다.

거기에 비하면 난 얼마나 나약하고 약삭빠른가. 버스가 늦다고 투덜대거나 세상이 사회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주지 않는가 불평하다가 잇속이 있으면 제일 앞장서는 눈치 빠른 나야말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 아닌가.

힘 있는 자들 앞에서 함구하고, 불리한 일 앞에서는 눈 감아버리는 창피한 일들을 얼마나 많이 하고 살아가는가. 남이 보지 않는다고 마구 침을 뱉고 꽁초도 버리면서 아무 일 없었듯 능청을 떠는, 게다가 이렇게 열심히 사는,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려고 절실하게 사는 이들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 시선을 진정 부끄러워해야 하는 게 아닌가.

6·25와 보릿고개를 겪은 노인들, 세상 구석 변방에 밀려난 사람들, 나라를 위해서는 가장 낮은 곳에서 기꺼이 노를 저었고, 거리의 젊은이들에게 주먹밥을 건네주고, 주린 아이를 위해 자기 젖가슴을 내주던 용기 있던 사람들이다.

혹시 우리는 지금 남의 인종차별이나 종교 차별에 분개하면서 우리 안의 지역 차별이나 외국인 차별, 여성이나 노인의 가난이나 비하를 서슴지 않고 또 침묵하고 있지 않은가.

수줍음 많던 나는 그 옛날 간혹 부끄러워하지 않을 일에도 부끄러워한 적이 많았다. 반면 최근에는 부끄러워할 일을 하고서 부끄럽지 않은 것인 양 태연하고 뻔뻔하게 살아가는 때가 많다.

자기 부끄러움은 애써 망각하고 사는, 부끄러움을 잃어버린 부끄러움, 제 부끄러움 모르는 지금 세상이야말로 참으로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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