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예술가가 대면한 상실의 공간들을 탐구하다
2024년 08월 16일(금) 00:00 가가
이반지하의 공간 침투 이반지하 지음
흔히 쓰는 ‘웃프다’는 말을 ‘제대로’ 느낀 책이다. 요즘의 글쓰기에서 유머는 빠질 수 없는 요소라 ‘재미있는’ 책은 많지만, 이처럼 웃기면서도 쓸쓸한 책은 오랜만이다. 무엇보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어떤 사실들에 대해 자주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준 책이다.
작가 ‘이반지하’는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현대미술가이자 편의점 노동자이자 퀴어다. 필명 이반지하는 퀴어의 의미를 가진 한국말 ‘이반’과 작가의 위태로운 생활공간이자 작업공간이었던 ‘반지하’를 결합해 만들었다. 책 날개에는 그를 ‘가부장제와 퀴어성, 젠더와 매체의 경계를 가지고 놀며 작업하는 다매체 예술가’로 소개하고 있다.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 등에 이은 신간 ‘이반지하의 공간 침투’는 작가가 살아내고, 살아갈 다양한 공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도서관, 야구장, 프랜차이즈 카페, 병동, 여자 화장실, 유튜브 속, 옷장 앞 등 책에 등장하는 여러 공간은 이반지하와 만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쏟아내고, 그 이야기는 결국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과 이어진다. 그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공간 빈곤과 차별의 세계에 맞서 자신만의 공간을 창출해내고, 더불어 공간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위안을 전한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고 여겨지는 공공도서관도 그에게는 허용되지 않은 공간이었다. 울산 지역 도서관 강의는 퀴어라는 이유로 취소됐다 우여곡절 끝에 300명이 시위를 예고하는 상황에서 ‘퀴어, 젠더, 동성애’를 빼고 강연하는 조건으로 행사를 치러야했다. 그가 한결같이 뻔하며 지겹도록 쾌적한 프랜차이즈 커피숍으로 발길을 옮기는 이유는 “이곳 저곳 얻어 터져버린 마음을 위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마음을 기대는 곳”이기 때문이다.
장례식장이라는 공간에서는 “그가 하는 말은 들어봄직하다, 내 생각과 다르든, 전혀 틀리든 그가 하는 이야기에는 알맹이가 있다”는 믿음을 갖게 했던 가수 신해철을 기억하며 신뢰와 영웅에 대해 떠올려본다. 그는 또 24시간 불을 밝혀야하는 편의점의 역할을 외면한 채 서 있는 목포항의 불 꺼진 편의점을 바라보며 “영원히, 완전히 그렇기만 한 것은 세상에 없겠다”고, “여기서 이랬으니 저기서도 으레 그럴 것이라는 법은 세상에 없는 법”이라고 말한다.
그밖에 “사회적 동물이 평소 잘 제어하고 있던 내면의 무언가를 거침없이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기능”을 하는 야구장이라는 공간과 늘 다녔던 동성 결혼식이 아닌 일반적인 헤테로 결혼식에서 사회를 보며 떠올린 생각들도 풀어냈다.
호텔에서 주 6일 근무하며 예술가라는 정체성을 떼어낸 상황에서 자신이 오랫동안 마음으로 의지해 온 서경식 작가를 만난 이야기나 철수를 앞둔 전시장에서 기약없는 다음 전시를 떠올리는 장면에서는 고단한 예술가의 모습도 본다. <창비·1만8000원>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 등에 이은 신간 ‘이반지하의 공간 침투’는 작가가 살아내고, 살아갈 다양한 공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도서관, 야구장, 프랜차이즈 카페, 병동, 여자 화장실, 유튜브 속, 옷장 앞 등 책에 등장하는 여러 공간은 이반지하와 만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쏟아내고, 그 이야기는 결국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과 이어진다. 그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공간 빈곤과 차별의 세계에 맞서 자신만의 공간을 창출해내고, 더불어 공간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위안을 전한다.
그밖에 “사회적 동물이 평소 잘 제어하고 있던 내면의 무언가를 거침없이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기능”을 하는 야구장이라는 공간과 늘 다녔던 동성 결혼식이 아닌 일반적인 헤테로 결혼식에서 사회를 보며 떠올린 생각들도 풀어냈다.
호텔에서 주 6일 근무하며 예술가라는 정체성을 떼어낸 상황에서 자신이 오랫동안 마음으로 의지해 온 서경식 작가를 만난 이야기나 철수를 앞둔 전시장에서 기약없는 다음 전시를 떠올리는 장면에서는 고단한 예술가의 모습도 본다. <창비·1만8000원>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