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종식을 향한 카운트다운
2024년 08월 16일(금) 00:00
항복의 길 에번 토머스 지음, 조행복 옮김
“히로시마 시 전체가 폭탄 한 기에 순식간에 파괴되었다.”

1945년 8월 7일 새벽 일본 육군참모차장은 한 문장으로 된 급전을 받는다. 하루 전날 태평양 북마리아나 제도 티니언 섬에서 출격한 B-29 폭격기(에놀라 게이)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 ‘리틀 보이’를 투하한 것이다. 투하 43초 뒤에 터진 인류 최초의 원폭으로 인해 7만 명이 즉사했다.

“만일 지금도 그들(일본정부)이 우리의 조건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세상에서 본 적 없는 파멸의 비가 공중에서 쏟아지는 것을 각오해야 할 것입니다.”

미국 트루먼 대통령은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직후 라디오 방송을 통해 연설을 했다. 9일에는 같은 비행장에서 출격한 또 다른 B-29 폭격기(복스카)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팻맨’을 투하했다. 본래 표적도시(고쿠라)는 연기와 안개 때문에 참상을 모면할 수 있었다. 가까스로 오키나와 섬으로 귀환한 폭격기의 연료탱크에는 불과 130ℓ의 휘발유만이 남아 있었다. 13일 밤 B-29 7기가 도쿄 황궁 등지에 폭탄대신 항복 권유 전단을 살포했다. 원폭을 투하하는 미국의 정책자나 군부 수뇌부, 파국에 직면한 일본 천황과 군부 등 모두 갈등하고 결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작가이자 기자인 에번 토머스가 쓴 ‘항복의 길’은 미국 전쟁부 장관 헨리 스팀슨과 태평양전략폭격사령부 수장 칼 스피츠, 일본 외무대신 도고 시게노리를 중심으로 핵폭탄 투하 결정과 일본의 항복까지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향한 1945년 3월부터 8월 사이 긴박했던 시간을 생생하게 살려낸다.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한 B-29 폭격기 ‘에놀라 게이’. <미국 국립항공우주박물관 홈페이지>
4월 말 미국은 원폭 표적을 ‘인구밀집 지역의 반경 약 5㎞ 이하 대도시’여야 한다고 결정한다. 변호사 출신인 미국 전쟁부 장관 헨리 스팀슨은 나라문화 중심지인 교토 폭격을 반대한다. 부계 조상이 조선에 뿌리를 둔 일본 외무대신 도고 시게노리는 옥새(玉碎)를 주장하는 일본 군부와 다른 입장이었다. 최고 전쟁지도회의 6명 가운데 일본의 항복을 바란 유일한 민간인이었다. 두 발의 원폭 투하에도 불구하고 일본 군부는 전쟁을 계속하기를 원하며 쿠데타를 모의한다. 마침내 천황은 “이 전쟁을 계속하면 그 결과는 조국의 파멸과 세상의 더 많은 출혈과 냉혹함뿐이라고 결론내렸소”라고 말하며 항복을 결심한다.

전범재판을 받고 수감됐던 도고가 1950년 7월 면회온 가족에게 남긴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일본의 미래는 영원하겠지만, 매우 끔찍한 이 전쟁이 끝나 조국의 고통이 사라지고 수백만 명의 목숨을 구했다는 사실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축복이다. 이로써 나의 일생의 과업은 달성되었다. 내가 무슨 일을 당하든 중요하지 않다.“

저자는 1945년 미국과 일본의 극적인 전개과정을 현장감 넘치게 묘사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다큐 영화를 보듯 미국과 일본의 움직임이 생생하다.

1945년 8월의 마지막 전황을 독자들은 결코 무심히 넘길 수 없다. 자주적인 독립을 쟁취하지 못한 조선의 운명을 결정지은 뼈아픈 역사이기 때문이다. 올해 79주년 광복절을 맞았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광복’과 ‘건국’에 대한 논란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역사의 전환점이 되는 태평양 전쟁 말기 역사적 전개과정을 깊이 있게 알아야 되는 이유다. 신간 ‘항복의 길’은 뉴라이트 역사관으로 인해 혼선을 빚고 있는 현 시국에 원폭같은 묵직한 울림을 남긴다. <까치·2만2000원>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