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 주인공 꿈꾸는 신중년 <9> 작곡가 겸 가수 조정수 씨
2024년 08월 11일(일) 21:00
“작곡가 꿈 펼치며…인생 2막 살랑살랑”
공장 다니고 구급차·시내버스 운전
‘인생 1막’은 가족 위해 살았으니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자
코로나 격리가 ‘인생의 전환점’
‘세월 도둑’ 등 음반 내고 50여 곡 작곡
지역 가수에 무상으로 노래 제공
“가슴에 간직했던 꿈, 인생 2막에서 펼쳐보고 싶었습니다.”

은퇴 이후 남몰래 가슴 속에 담아뒀던 꿈을 찾아 진정한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이가 있다. 작곡가이자 가수인 조정수(63)씨가 그 주인공이다.

지금껏 가족을 위해 인생 1막을 살았지만, 인생 2막에서는 스스로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조씨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어려서부터 전국을 돌며 콩나물 공장, 장롱 자개 공장 등 생업에 전념해왔다. “가방끈이 그리 길지 못해 가족을 위해 갖은 일을 다 했다”고 한다.

그는 “중간중간 무너질 것 같은 어려운 고비도 있었지만 가족들을 생각하면 이겨낼 수 있었다”고 웃어보였다.

그는 광주로 옮겨와 체인점 가게 운영, 병원 사설 구급차 운전 등 생계를 위해 다양한 일을 하다 지난 2009년 광주에서 시내버스 기사로 취업해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5년 동안 광주지역 시내버스 운전대를 잡은 그는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매일을 즐겁게 일해왔다.

승객들에게 민원 한 번 들어본 적 없고 사고 한 번 난 적 없었다. 매번 밝게 웃으며 인사한다며 기분좋게 칭찬해주는 승객들을 만날때마다 힘이됐다.

하지만 지난해 정년을 앞두고 근심이 생겼다. 정년 이후 인생2막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걱정에 잠을 못잘 정도였다는 것이다.

퇴직한 동료들이 일용직 노동자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 것을 자주 봤기 때문이다. 정년 이후 시내버스 기사로 계속 일을 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1년에 한 번씩 재계약을 해야 하는 비정규직 신분이라는 점이 그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 때 ‘지금까지 가족들을 위해 살았으니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자’라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고 한다.

지난 2020년 코로나19가 기승일 때 격리했던 경험이 그의 생각을 더 확고히 했다.

밀접 접촉자로 분류돼 격리조치 되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격리된 방 안에서 이주일간 있던 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만들어보고 싶은데 이것도 못해보는 건 아니다 싶었다”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노래 부르기를 좋아한 그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노래로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 노래를 부르는 것도 좋아해 가수도 꿈꿨었다. 노래라면 뭐든 좋았다.

늘 가슴속에 ‘노래’를 품고 살던 그는 코로나19 이후 노트에 메모를 시작했다. 종점에서 다음 운행 일정을 대기하던 순간, 과거 고된 일을 하며 고생했던 경험들, 승객들과 아침 인사를 나누던 순간들 모두 영감이 돼 가사가 됐다. 입가에 맴도는 흥얼거리는 음은 그대로 휴대전화에 녹음했다.

조정수(오른쪽)씨가 작업실에서 함께 일하는 작곡가와 웃어보이고 있다. <조정수씨 제공>
2023년 8월 운전대를 놓고 퇴직을 한 그는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를 들고 광주의 한 작곡가를 찾았다.

작업물을 받아든 작곡가는 조씨의 노래를 듣고 “가사와 멜로디가 너무 좋다. 재능이 있으신 것 같다”라며 놀라운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다른 곡들을 듣고도 “40년을 해도 가사 하나 쓰는데 몇십 번을 찢고 고치는데, 이 정도면 돌연변이가 틀림없다”라는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작곡가의 의외의 칭찬에 그는 인생 2막의 첫 걸음을 뗐다.

그는 작곡가의 작업실에서 미완의 곡을 완성했다. 틈틈이 유튜브와 책 등을 통해 건반과 드럼 등의 악기에 대한 공부도 시작했다.

지금까지 작곡한 곡은 50여 곡에 달한다. 음반으로 취입한 노래도 ‘세월 도둑’, ‘어머니 사랑합니다’ 등 4곡이나 됐다.

아직 큰 수익은 없지만, 하루 하루가 너무나 즐겁다고 한다. 인생 2모작을 구상하는 동년배들에게 평생 하고 싶었던 일을 해보라고 권하는 것이 이 이유다.

그는 “진작부터 만들었던 노래들은 있었지만 확신이 없었는데, 노래에 대한 칭찬을 들으니 자신감이 생겼다”면서 “전공한 적 없고 제대로 배워본 적 없지만 입으로 박자를 세며 피아노를 눌러가며 음을 만들다 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라고 환한 웃음을 지었다.

즐거운 생활이 이어지다 보니 그는 모든 게 긍정적이라고 웃어 보였다. 음원 등록을 위한 밴드 작업 등에 수백만 원이 들지만, 그는 지역가수들에게 무상으로 자신의 노래를 제공하고 있다.

무명의 지역 가수들이 그의 노래를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하다는 점에서다. 이에 오는 9월 22일 열리는 전국노래자랑에서는 지역 가수가 그의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그는 작곡 외에 직접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1980년대 용기 내 나간 전국노래자랑에서 고배를 마신 아픈 기억도 있지만 가수의 꿈도 키웠던 그는 현재 대한 가수협회에 등록된 엄연한 가수다.

그는 “누구나 나이가 들면 퇴직을 하기 마련”이라면서 “퇴직 후 새로운 직업을 찾아야 한다면 그때는 인생 1막 기간 오랫동안 수고한 자신을 위해 보수와 상관없이 좋아하는 일, 적성에 맞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다인 기자 kd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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