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촌까지 60명 왁자지껄…가족의 정 쌓입니다”
2024년 07월 28일(일) 20:55
매년 ‘취운 가족 한마당’ 여는 영암 이기홍씨 가족
증조부 호 ‘취운’ 따 매년 가족 모임…올해로 13번째
수도권·전북·전남 등서 손주·조카 등 모여 ‘행복 휴가’

매년 여름 60여 명의 친척들이 모여 ‘취운 가족 한마당’을 열고 있는 이기홍 씨 가족.

지난 20일 보성 제암산자연휴양림에서 40여 명이 모인 시끌벅적한 대가족 잔치가 열렸다. 육촌지간까지 모여 어린 아이들의 재롱을 보고, 노래 실력도 뽐내며 즐거운 1박 2일의 시간을 보냈다. 가족별로 같은 색의 티셔츠를 맞춰입은 이들은 매년 7월 셋째주 주말에 함께 여름 휴가를 보낸다. 마지막 일정은 ‘취운 가족 한마당’이라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 단체 사진을 찍는 것. 행사는 코로나 시기를 제외하고 13년 째 이어지고 있다.

바쁜 일상에 치여 직계 가족끼리 모임을 갖는 것도 어려운 요즘, 많을 때는 60여명이 모여 함께 휴가를 보내며 정을 쌓는 대가족이 있어 눈길을 끈다.

가족 모임을 주도하는 이는 이기홍(63)씨로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전 해오던 행사를 잇고 있다.

“제가 고등학생일 때부터 아버지는 매년 여름이면 버스를 빌려 친척들과 함께 해수욕장도 가고, 솥단지를 싣고 다니면서 닭도 잡고 게도 잡아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었죠. 많은 식구들의 끼니를 챙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가족들이 모두 우애롭게 잘 지내라고 모임을 만드신 거죠. 아버지가 4남 4녀 중 첫째셨는데, 그 형제들과 자손들이 꾸준히 모이고 있습니다.”

첫째 아들인 이 씨는 증조할아버지의 호 ‘취운’을 따 모임 이름도 지었다. 이 씨의 어머니와 숙부, 숙모들부터 그 자녀들, 손주, 조카들까지 4대가 모인다. 이씨는 사촌 형, 동생들과 함께 모임을 준비하는데, 한 가족당 매월 2만원씩, 총 24만 원을 모은다. 성수기에 큰 방을 예약하는 것도 쉽지 않아 딸과 조카들이 인터넷으로 동시 접속해 숙소를 잡는다. 이 씨의 고향인 영암에서 농촌체험관의 숙박 시설을 주로 활용하거나 지리산, 백운산 등 휴양림을 이용하기도 한다. 가족들은 수도권과 전북, 전남 곳곳에서 모이는데 매년 참여율도 높은 편이다.

“윷놀이나 노래 대회를 해서 선물을 주니까 모두에게 인기가 많아요. 물놀이와 캠프파이어, 폭죽놀이도 하니 어린 아이들이 특히 좋아해요. 이번에는 7개월 된 손녀가 처음 왔는데, 증손주를 보신 어머니가 정말 좋아하셨습니다. 한 달 더 빨리 태어난 아이가 관심을 뺏겼다고 울어버린 일도 있었고요. 다양한 연령대가 모여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뿌듯합니다.”

처음 모임을 시작할 때는 온 가족의 이름을 알기도 어려워 큰 종이에 가족 관계표를 그려 벽에 붙여놓고, 각자 이름표를 걸고 다니기도 했다. 이 씨는 “토요일 점심부터 일요일 점심까지 4끼를 함께 하며 웃고 떠드는 그 순간이 참 좋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최근 그의 외갓집 식구들도 1년에 한 번씩 모임을 갖기 시작했다. 추석 2주 전 합동 제사하는 날 영광 백수읍에서 20여 명의 친척들이 함께 시간을 보낸다.

“요즘에는 명절에 내 식구끼리도 얼굴 보기 힘든 세상이죠. 저희처럼 육촌들까지 모이는 건 잘 들어보지 못했어요. 매년 모인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끈끈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얼굴 한 번 더 보고 이야기 나누는 따뜻한 시간이 되지 않을까요.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들도 더 마련해 볼 계획입니다.”

이 씨는 가족모임이 오래도록 이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양재희 기자 heestor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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