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허그 쿠폰, 손주 돌보기 - 강정희 전 국어 교사·‘다정한 교실에서 20000시간’ 저자
2024년 06월 21일(금) 00:00 가가
“할머니, 어디서 왔어요?”
일신우일신, 날마다 새로워지는 중인 네 살 뉴뉴는 요즘 의문문에 빠져 있다.
(엥? 나 어디서 왔지? 이건 숭산스님이 주는 화두인가? )
아무래도 잘 모르겠으니, 되묻기로 한다.
“글쎄, 어디서 왔을까?”
“광주에서 왔어요. 그런데 왜 왔어요?”
“엄마 아빠 학교 가니까, 뉴뉴 봐주려고 왔지.”
뉴뉴가 갑자기 다가와 기름칠한 듯 빛나는 검은 눈동자로 내 눈을 들여다보며 묻는다.
“이렇게 눈으로 봐요?”
‘I see you’라고 말하는 ‘아바타’의 나비족이 떠오른다.
퇴임하고 지난 3월부터 손자를 돌보고 있다. 이제 학교 아이들의 명대사 대신 손자가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듣는다.
뉴뉴는 무거운 그림책을 다섯 권씩 들고 와 내 무릎에 털썩털썩 앉는다. 색채가 곱고 주제도 깊어진 그림책을 읽어주며 나도 잠시 유년으로 돌아간다. 어미 새가 지렁이 한 마리를 물고 아기 새들이 기다리는 둥지로 날아가는 그림이 있는 면을 못 넘기게 하더니 말한다.
“그런데 지렁이는 아프겠다.”
아파트 단지에 인공 바위로 꾸민 폭포와 분수가 있다. 호수에는 둥근 조약돌들이 가득 담겨 있고, 주변에는 키 큰 노송과 정원수가 어우러졌다. 며칠 전 시험가동을 하는지 물소리가 시원하게 들려, 서둘러 나갔다. 공중으로 솟구친 물줄기와 맑은 물속을 한참 바라보던 뉴뉴의 첫마디에 나는 가슴이 서늘해졌다.
“돌들도 시원하겠다.”
완도 정도리 몽돌해변에 가고 싶다고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 뉴뉴의 말에 나는 물에 잠긴 돌이 되었다. 그림 속 새와 물속 돌멩이에도 감정이입을 하는 존재가 인간인 것을.
바람이 불어와 나무들이 가지를 흔들면 따라서 두 팔을 벌려 춤을 춘다.
“뉴뉴는 나무에요!”
하늘에 흰 구름이 보송보송, 막 타 놓은 햇솜 같은 날이다. 유아차 등받이를 눕혀준다.
“뉴뉴야 하늘에 구름 좀 봐라.”
어떤 명화보다 책보다 보여주고 싶은 진경이 아닌가. 그런데 뉴뉴는 작은 두 손을 모아 팔까지 문지르고 있다.
“할머니, 구름이 비누 거품이에요.”
지쳐서 퇴근한 엄마 볼을 두 손으로 감싸며 말한다.
“엄마 볼은 말랑말랑 쑥떡이에요.”
영화 ‘일 포스티노’의 마리오처럼 메타포를 자유자재로 말한다. 네루다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메타포쯤이야 스스로 터득한다.
동백나무 아래 떨어진 붉은 꽃들을 주웠다. 바위 위에 수북이 모아놓고 뉴뉴는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른다. 다음날 동백꽃 케이크를 보러 간다. 당연히 꽃들은 누렇게 시들어 볼품없이 누워있다.
“할머니, 꽃은 왜 시들어요?”
“시간이 지나면 꽃은 시드는 거란다.”
“왜 시간이 지나면 시들어요?”
내 대답은 점점 궁색해져 간다. 곧 동어반복이 되고 말 터이다.
제 엄마나 내가 새로운 단어를 말하면 우리 입을 유심히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린다. 반복 연습을 하는 것이다. 공룡 퍼즐을 맞추면서 말한다.
“뉴뉴가 퍼즐 잘해서 할머니가 또 깜짝 놀라겠다.”
아기를 키우는 건 부모 조부모 이모 고모 삼촌 선생님의 감탄과 기대다.
겨우 뒤집기를 해서 어린 새가 날개짓 하듯 두 팔을 허우적거리던 녀석이 이제 운동화를 신고 공원에서 달리기를 한다. 곧 가방을 들고 학원으로 학교로 군대로 직장으로 떠나고 말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내 품에 있다. 동글동글 종아리랑 사과 같은 엉덩이를 맘대로 만져볼 수 있는 무한 쿠폰이 내게 있다. 보들보들 배에 등에 푸푸 간지럼을 태우고, 맘껏 안을 수 있는 무한 쿠폰이다.
하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아무튼, 그래도 아기를 돌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딸은 종종 말한다.
“엄마, 0.7명만 낳아야 하는데, 내가 1명을 낳아 버렸어.”
이제 빨간 배낭을 메고 노란색 버스를 타는 아기들, 유아차를 밀고 가는 젊은 엄마 아빠들이 모두 내 자녀 내 손주로 보여서 문득 불러서 말을 걸고 싶어진다.
“애들아, 조심해. 밥 많이 먹었니? 엄마 휴대폰 말고 나무랑 하늘을 좀 보렴.”
일신우일신, 날마다 새로워지는 중인 네 살 뉴뉴는 요즘 의문문에 빠져 있다.
(엥? 나 어디서 왔지? 이건 숭산스님이 주는 화두인가? )
아무래도 잘 모르겠으니, 되묻기로 한다.
“글쎄, 어디서 왔을까?”
“엄마 아빠 학교 가니까, 뉴뉴 봐주려고 왔지.”
뉴뉴가 갑자기 다가와 기름칠한 듯 빛나는 검은 눈동자로 내 눈을 들여다보며 묻는다.
“이렇게 눈으로 봐요?”
‘I see you’라고 말하는 ‘아바타’의 나비족이 떠오른다.
퇴임하고 지난 3월부터 손자를 돌보고 있다. 이제 학교 아이들의 명대사 대신 손자가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듣는다.
뉴뉴는 무거운 그림책을 다섯 권씩 들고 와 내 무릎에 털썩털썩 앉는다. 색채가 곱고 주제도 깊어진 그림책을 읽어주며 나도 잠시 유년으로 돌아간다. 어미 새가 지렁이 한 마리를 물고 아기 새들이 기다리는 둥지로 날아가는 그림이 있는 면을 못 넘기게 하더니 말한다.
아파트 단지에 인공 바위로 꾸민 폭포와 분수가 있다. 호수에는 둥근 조약돌들이 가득 담겨 있고, 주변에는 키 큰 노송과 정원수가 어우러졌다. 며칠 전 시험가동을 하는지 물소리가 시원하게 들려, 서둘러 나갔다. 공중으로 솟구친 물줄기와 맑은 물속을 한참 바라보던 뉴뉴의 첫마디에 나는 가슴이 서늘해졌다.
완도 정도리 몽돌해변에 가고 싶다고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 뉴뉴의 말에 나는 물에 잠긴 돌이 되었다. 그림 속 새와 물속 돌멩이에도 감정이입을 하는 존재가 인간인 것을.
바람이 불어와 나무들이 가지를 흔들면 따라서 두 팔을 벌려 춤을 춘다.
“뉴뉴는 나무에요!”
하늘에 흰 구름이 보송보송, 막 타 놓은 햇솜 같은 날이다. 유아차 등받이를 눕혀준다.
“뉴뉴야 하늘에 구름 좀 봐라.”
어떤 명화보다 책보다 보여주고 싶은 진경이 아닌가. 그런데 뉴뉴는 작은 두 손을 모아 팔까지 문지르고 있다.
“할머니, 구름이 비누 거품이에요.”
지쳐서 퇴근한 엄마 볼을 두 손으로 감싸며 말한다.
“엄마 볼은 말랑말랑 쑥떡이에요.”
영화 ‘일 포스티노’의 마리오처럼 메타포를 자유자재로 말한다. 네루다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메타포쯤이야 스스로 터득한다.
동백나무 아래 떨어진 붉은 꽃들을 주웠다. 바위 위에 수북이 모아놓고 뉴뉴는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른다. 다음날 동백꽃 케이크를 보러 간다. 당연히 꽃들은 누렇게 시들어 볼품없이 누워있다.
“할머니, 꽃은 왜 시들어요?”
“시간이 지나면 꽃은 시드는 거란다.”
“왜 시간이 지나면 시들어요?”
내 대답은 점점 궁색해져 간다. 곧 동어반복이 되고 말 터이다.
제 엄마나 내가 새로운 단어를 말하면 우리 입을 유심히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린다. 반복 연습을 하는 것이다. 공룡 퍼즐을 맞추면서 말한다.
“뉴뉴가 퍼즐 잘해서 할머니가 또 깜짝 놀라겠다.”
아기를 키우는 건 부모 조부모 이모 고모 삼촌 선생님의 감탄과 기대다.
겨우 뒤집기를 해서 어린 새가 날개짓 하듯 두 팔을 허우적거리던 녀석이 이제 운동화를 신고 공원에서 달리기를 한다. 곧 가방을 들고 학원으로 학교로 군대로 직장으로 떠나고 말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내 품에 있다. 동글동글 종아리랑 사과 같은 엉덩이를 맘대로 만져볼 수 있는 무한 쿠폰이 내게 있다. 보들보들 배에 등에 푸푸 간지럼을 태우고, 맘껏 안을 수 있는 무한 쿠폰이다.
하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아무튼, 그래도 아기를 돌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딸은 종종 말한다.
“엄마, 0.7명만 낳아야 하는데, 내가 1명을 낳아 버렸어.”
이제 빨간 배낭을 메고 노란색 버스를 타는 아기들, 유아차를 밀고 가는 젊은 엄마 아빠들이 모두 내 자녀 내 손주로 보여서 문득 불러서 말을 걸고 싶어진다.
“애들아, 조심해. 밥 많이 먹었니? 엄마 휴대폰 말고 나무랑 하늘을 좀 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