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피어날 때 - 황옥주 수필가
2024년 06월 18일(화) 21:30
‘동백꽃은 한사(寒士), 박꽃은 노인’이란 말은 ‘해동가요’에서 김수장이 처음 썼다한다. ‘한사’는 가난한 선비란 뜻이다. 높은 학문과 고매한 인품으로 세인의 존경을 받으면서도 세속적인 힘이 없다. 붉은 정열을 품고서도 푸른 잎 뒤에 숨고자하는, 마치 동백꽃 같은, 얼굴 드러내기를 꺼려하는 사람이다.

내 고향은 남쪽 땅, 강진골이다. 동백꽃이 군(郡)화인 고장이다. 군목도 동백나무일까 싶어 관광과에 물었더니 ‘은행나무’라 했다. 동백나무가 군목이 되어선 안 될 이유라도 있나 되묻자 담당자도 모른단다.

동백꽃은 내가 무척 좋아했던 꽃이다. 무엇을 좋아한다는 감정은 사랑이 눈뜰 때쯤일 터, 철부지인 내게 그런 연민이 있을 턱이 없다. 오로지 한 가지, 동백꽃 속에 담겨있는 꿀맛을 알고부터다. 맨 처음 내게 단맛을 알려준 꽃이 동백꽃이다.

갈수록 행동은 줄어드는데 생각은 늘어간다. 늙은 탓이리라. 그 중 유독 잊어지지 않은 것이 고향이다. 동백꽃 때문이다. ‘지나가버린 생활을 즐기는 것은 인생을 두 번 사는 것이다’라더니 헛말이 아닌 것 같다.

나는 동백꽃이 필 무렵이면 조릿대로 만든 빨대를 준비하고 동백나무를 찾아 열심히도 싸댔다. 가는 봄비가 내린 다음날은 더욱 신났다. 몽환의 달빛아래 지금도 가슴속에서는 새빨간 꽃이 어지럽게 피어난다.

꿀은 벌 나비 식량이다. 꿀만 품었다면 아무리 먼 곳의 꽃이라도 노고를 불사하고 찾아간다. 그러나 동백꽃 꿀은 관심이 없는 듯하다. 꿀샘이 깊은 탓인지, 향내가 짙지 않아서인지, 꽃을 지킨다는 동박새 때문인지 아리송하다.

설화나 전설은 그냥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구전설화의 정형은 선과 악의 등장이고 결말은 선한 쪽 패배로 끝난다. 동백꽃 전설 역시 슬프고, 암연하고, 스산스럽고, 삭연하다. 옛날 형제가 있었다. 형은 임금, 동생은 한 고을의 성주로 살았다. 형은 심성이 궂은 반면 동생은 마음씨가 고왔다. 후사를 이을 아들이 없는 왕은 동생의 아들들이 왕좌를 탐할까 두려워 죽여 버리려 했다. 이를 눈치 챈 동생은 두 아들을 먼 곳에 숨겨두고 양자를 데리고 살았다.

결국 불안을 떨쳐내지 못한 왕은 동생 아들들을 잡아다가 죽여버렸다. 곧 뒤에 친자들이 살아있음을 안 왕은 전국에 신하들을 풀어 찾아낸 조카들을 궁궐로 끌고 오게 했다. 왕을 속였다는 이유로 동생에게 칼을 주며 직접 죽이라 겁박했다. 거절하면 가족 모두를 죽일 태세였다.

기왕지사 다 죽을 것, 동생이 칼을 들어 올리는 순간 아들들은 새가 되어 하늘로 오르고 궁궐은 벼락을 맞아 쑥대밭으로, 자신은 동백나무로 변해버렸다. 이를 본 새들은 아버지를 보살펴 지키고자 다시 돌아왔다. 효성스런 동박새들이다.

꽃 식물은 나비나 벌, 바람의 중매로 열매를 맺는다하여 충매화니 풍매화라 하는데 동백꽃은 조(鳥)매화라 한다. 동박새 도움으로 씨를 맺는다는 뜻이다.

고향집 우리 대밭이나 밭둑에는 크고 작은 동백나무가 몇 그루 있었다. 기름이 귀하던 시절, 할아버지가 심으셨을 것이다. 동구 밖 꽤 떨어진 밭두렁에도 오래된 동백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나는 어머니 얼굴도 모른다. ‘엄마’나 ‘어머니’란 단어도 책으로 익혔다. 자연히 거친 아버지 손을 잡고 따라다닌 날이 많았다.

아버지가 동구 밖 동백나무가 있는 밭으로 일을 나가실 봄날이면 날씨가 추워도 나는 소를 끌고 앞장을 섰다. 동백꽃 꿀을 즐기는 날이다. 일이 늦어지면 헛일임을 알면서도 같은 꽃을 두 번 세 번 빨았다. 출향 후 먼데 사람이 뜯어 갔다는 우리 집, 감나무 밭과 내 태가 묻혔다는 뒤 언덕은 너른 길이 된지 오래란다. 꼭 한 차례 찾아가 보고 많이도 울었었다. ‘산천 의구’란 말은 진정 옛 사람의 허사다. 사람이 아무리 오래 산들 여러 가지를 다 체험할 수 없고 내 체험이 남과 같을 수 없다. 때문에 개개의 경험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동백꽃 피어날 때면 더 간절한 고향의 동백꽃, 이보다 그리운 게 또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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