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으로 성장하는 아이들 - 안선옥 광주 산정중 교사
2024년 06월 17일(월) 00:00
“선생님, 저희 4·16 연극 해보고 싶어요. 제가 대본 초안도 마련해놨어요.”

3월말, 연극 동아리 부장인 3학년 예은이가 나를 보자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어? 이동철샘도 안 계시는데 할 수 있을까?”

나도 모르게 이 말이 먼저 튀어나온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학교에서 학생들을 모아 연극을 지도하고 학교 강당에서 무대 공연까지 멋지게 완성한 이동철 선생님이 올해는 다른 학교로 이동했기 때문에 연극 공연은 작년으로 끝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국어교사이지만 연극 지도를 해보지 않았고, 이동철 선생님의 전문적인 지도와 열정을 곁에서 바라보며 감탄해왔던 나는 예은이의 소망에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몰라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산정중학교에서 근무하기 시작한 2022년에는 2, 3학년을 중심으로 학교 강당에서 5·18 연극을 공연했고, 작년에는 4·16 연극(도돌이표) 과 5·18 연극(봄볕 내리는 날)을 두 차례나 공연했다.

막막했던 나는 국어과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교내 연극 공연을 해보고 싶다는 아이들의 소망을 ‘지도교사가 없다’는 말로 일축하기에는 그동안 연극 공연이 아이들에게 선물한 협력과 성장의 경험은 엄청났다. 대본을 각색하는 작업은 지도교사가 주도적으로 했지만 무대 미술이나 소품 마련 등 자발적으로 공연의 일부분을 맡아 정성을 다해 준비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비록 작년과 같은 높은 수준의 공연은 힘들지라도, 어떻게든 아이들의 소망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 점점 강렬하게 다가왔다.

더구나 올해는 4·16 10주기가 되는 해이니 아이들 스스로 공연에 도전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하며 학교 선생님들과 공연 날짜를 의논한 결과 4·16 추모일 하루 전날인 4월 15일, 강당에서 공연을 하기로 했다.

이번 연극 대본은 작년에 2학년들이 국어시간에 읽었던 김탁환 작가의 소설 ‘눈동자’ 를 각색해 연극부 부장인 예은이가 초안을 마련한 것으로 연극의 제목은 ‘잊혀지지 않는 악몽’으로 정했다. 이후 학교 강당에서 연출할 수 있을 정도의 대본으로 몇 번의 피드백을 거쳐 대본을 수정했다. 극본과 연출, 배우까지 세 가지를 함께 담당하고 있는 연극부 부장인 예은이를 중심으로 또래 친구들, 후배들이 함께 공연 준비를 해나갔다. 공연 연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나는 ‘아, 이 연극은 누군가 한 사람의 지시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연극에 참여하는 아이들 모두가 서로 의견을 내 다듬어가며 만들어가고 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연 날짜가 임박하자 서로서로 소품을 챙기고 핀마이크 점검을 하고 음향에 도움을 줄 방송부를 섭외하는 등 한 편의 연극 공연이 완성되기까지 필요한 다양한 작업들이 펼쳐졌다. 연습하는 아이들 곁에서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하던 나는 단지 ‘아이들 곁에서, 아이들이 하는 활동을 바라볼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것이 어른인 교사로서 해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지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하루 앞둔 4월 15일, 2, 3학년 학생들이 공연을 보기 위해 강당에 모였다. 3주동안 정성껏 준비한 연극이 시작되었다. 모두 자기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실수 속에서도 흐름을 놓치지 않고 완성된 작품을 선보이려 애쓴 아이들의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연극의 마지막 장면 ‘천 개의 바람이 되어’를 부르는 연극부 아이들의 모습은 더 이상 어리디어린 존재가 아니었다. 해보고 싶은 것을 해냈다는 성취감, 어려움을 딛고 한 단계 도약했다는 자부심으로 빛나는 모습이었다. 그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아이들이 무엇을 해보고 싶다고 말할 때, 그것을 무시하지 않고 작은 싹을 틔울 수 있도록 다리를 하나 놓아주는 것이 어른의 역할이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해보았다.

3주 동안 수많은 걱정과 기대가 교차하는 가운데 무사히 연극 공연이 마무리되었고 올해의 경험을 토대로 아이들은 또 내년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해보겠다는 아이들 곁에서 어른인 나도 ‘성장’을 경험했으니 아이들에게 고마운 마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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