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개구리 울음을 듣는 밤 - 김향남 수필가
2024년 06월 16일(일) 22:00
문득 바깥의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밤하늘 가득히 울리는 크고 성성한 소리. 맹렬하게 들끓는 소리 같기도 하고 뭔가 기세 좋게 다가오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뭐지? 설마 개구리? 고개를 갸웃거릴 필요도 없이 개구리 울음소리가 분명했다. 너무나 익숙한 소리였으나 잊은 줄도 모른 채 잊고 있던 소리, 귀가 쟁쟁하도록 들었던 개구리 울음이었다. 뜬금없는 해후가 몹시도 반갑고 정겨웠다. 무담시 기분도 들떠 올랐다.

밖으로 나왔다. 좀 더 가까이 영접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천이 인근에 있으니 녀석들은 당연히 그곳에 있을 거다. 밤이 깊었지만 울음소리를 따라 천천히 천변길을 걸어봐도 좋겠다. 그러나 굳이 거기까지 갈 필요가 없어졌다. 승강기를 내려 불과 몇 미터도 못 가 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소리의 진원지는 뜻밖에도 아파트 안의 인공연못이었기 때문이다.

밤의 연못은 온통 개구리들 세상이었다. 와글와글 떠들어대는 소리가 귀청을 울렸다. 주민들 서넛이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으나 알아듣기 어려웠다. 한꺼번에 내지르는 우렁우렁한 함성에 누구도 대적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녀석들은 지금 세상의 모든 소리를 평정해버리고서 바야흐로 개구리 왕국을 건설 중인지도 몰랐다.

희미한 어둠 속, 개구리들은 울다 그치기를 반복하며 쟁쟁하게 세를 과시했다. 진두지휘하듯 먼저 한 녀석이 울기 시작하면 나머지 녀석들도 와르르 뒤따라 울었다. 운다고 했지만 실은 짝을 찾는 구혼가라고 한다. 세상의 수컷들은 모두 자식을 낳을 수 없다는 약점을 안고 있거니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암컷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게다가 선택권은 언제나 암컷에게 있는 것이어서 역시 경쟁력을 발휘해야만 한다. 수컷들의 온갖 복잡하고 다양한 구애 행위는 그로부터 비롯된다.

미끈미끈한 피부와 유난히 긴 뒷다리와 툭 튀어나온 눈, 큰 입과 날렵한 혀를 가진 개구리 수컷도 필사적인 구애 작전을 펼친다. 턱 밑에 울음주머니를 장착하고서 부풀렸다 오므렸다를 반복하며 더 크고 더 우렁차게 구혼가를 부른다. 그러나 독창이 아니라 와글와글 모두 함께 합창으로 부른다. 짝을 찾는 일도 중요하지만 잡아먹히지도 않기 위해서는 서로 힘을 모아야 한다. 사방에서 한꺼번에 와글거리게 되면 어느 놈을 조준해야 할지 포식자로서는 헷갈릴 수밖에 없을 거라는 전략이다.

맑고 서늘하고 촉촉한 밤, 한밤중의 세레나데는 그칠 줄을 모른다. 잠잠한가 싶으면 다시 터져 나오고, 한껏 고조됐다 싶으면 어느새 뚝! 그친다. 그러기를 밤이 새도록 계속할 모양이다. 삶은 이토록 애타는 사랑이며 세상은 처절하고 절박한 생존의 현장이라고 열변을 토하는 중일까. 이슥한 밤을 기다려 목청껏 외쳐보는 것인지도….

그 울음을 듣고 있노라니 은근히 걱정되는 바도 없지 않다. 도심과 떨어진 한적한 동네이기는 해도 아파트 한가운데가 아닌가. 지금은 물이 고여 있다고 해도 언제 말려버릴지 모르는 인공연못이 아닌가 말이다. 게다가 저놈의 개구리들 시끄러워 죽겠다고 툴툴거리며 지나가는 소리를 방금도 들었지 않은가.

몇 년 전 일도 떠올랐다. 어느 학교 연못에 개구리들이 모여 살았는데 바로 옆 아파트에서 민원이 들어왔다.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 없으니 개구리들을 없애 달라는 것. 그래서 학교는 연못의 물을 빼고 개구리들의 울음을 잠재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암만 ‘개구리 소리도 들을 탓’이라고 하지만 새삼 뒷맛이 씁쓸한 이야기였다.

개구리 울음소리를 읊은 장유(1587~1638) 선생의 글에도 개구리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책도 읽지 못하고 거문고도 타지 못한다며 개구리를 죽이려는 사람의 고민이 나온다. 그러자 다음과 같은 대답이 뒤따라 이어진다.

“이 우주에는 만물이 어울려 살면서 각자 형체와 기운을 받아 제 본연의 소리를 내거늘…어찌 그 많은 움직임과 모양과 소리를 그대가 즐길거리로 삼을 수 있겠으며, 어찌 저 만물이 제 천성을 바꾸어 그대의 눈과 귀만 즐겁게 해줄 수 있겠는가.”

한 나그네의 입을 빌려 자기중심적인 사고의 폭력성과 우주 만물이 평화롭게 공존해야 함을 짚어내는 것이다. 나와 타자의 차이를 이해하고 수용하려고 한다면, 개구리 울음은 다만 시끄럽게만 들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반성하고 각성케 하는 깨달음의 소리가 될 것이라는 말씀.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개구리들 합창 소리가 밤하늘에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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