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영화와 영화제의 가능성 - 이순학 광주독립영화협회 운영위원, 문화콘텐츠그룹 ‘잇다’ 대표
2024년 06월 10일(월) 21:30
작년 여름, 광주시 동구와 광주 영화인들이 함께하는 ‘광주극장 100년 프로젝트’ 고향사랑기부제 홍보협약식이 열렸다. 자리를 정돈하면서 단체 사진 촬영을 할 때 “여성 영화인들은 앞으로 서주세요”하고 이야기했더니 임택 광주 동구청장이 질문 하나를 던졌다. “어떻게 해야 여성 영화인이 될 수 있나요?” 우리가 ‘3F’라 칭하는 여성 감독, 여성 서사, 여성 출연자 등 많은 기준들이 있겠지만 이렇게 답했다. “광주여성영화제에 한 번이라도 다녀간 관객이면 됩니다.” 광주여성영화제, 광주독립영화제, 광주극장 개관 기념 영화제 등 광주 시민 누구에게나 문이 열려있는 지역 영화제에서 관객으로 시작해서 창작하는 영화인이 되는 케이스가 많다.

지역에서 영화제는 우리가 지역영화 크루를 발굴하는 가장 중요한 기회이자 발판이다. 4년 전 광주여성영화제 10주년 기념으로 ‘어쩌다 10년’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는데, 광주여성영화제 10년 동안 김경심, 허지은, 이경호, 김소영 감독 등 광주에서 여성 영화를 제작하는 크루들이 어떻게 성장하고 발굴되었는지 발자취를 돌아볼 수 있었다.

지역 영화제 개최는 지역영화 현황을 측정하는 바로미터다. 영화제 참여 작품과 참석 게스트를 카운팅하며 지역의 창작자 규모를 짐작할 수 있고 영화제에 다녀간 관객의 수로 지역영화를 향유하는 시민의 규모를, 지역 영화제를 구성하는 거버넌스와 재원 구조를 통해서는 지역 영화의 제도를 관측할 수 있다. 이것이 지역 중심 개최 영화제의 의의라 한다면 이를 넘어 외부 영화 관광객을 유치하는데 성공한 중소규모 이상의 지역 영화제들은 지역자원을 바탕으로 관광기반을 조성하는 관광산업으로 의의가 있는 사례도 많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생각하는 지역 영화제의 가장 큰 의의는 ‘누구나 쉽게 영화인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지역 영화제에서 가장 관객이 많은 섹션들은 역시 지역 작품을 상영하는 섹션이다. 지역영화의 관객으로 찾아왔던 사람이 다음 해나 그 다음 해에 자신이 직접 만든 영화를 상영하며 게스트로 재방문하는 수많은 사례들을 보아왔다. 그렇게 지역영화를 꿈꾸게 된 영화인들은 초등학생부터 초로의 노년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지역의 시간과 공간에 내가 상상한 인물과 다채로운 이야기를 접목하고, 상업적이고 전문적이지 않더라도 실현가능한 방법과 표현으로 영화를 만든다. 자신만의 그림과 목소리로 삶의 이야기를 펼쳐낸 임영희 감독의 ‘양림동 소녀’가 대표적인 예다. 그래서 지역 영화제에 담긴 다양성은 관객들에게 많은 영감과 감동을 줄 수 있다.

지역 영화제와 지역영화는 누구나 쉽게 ‘내가 필요한 영화제, 내가 만들 수 있는 영화’라는 문턱이 낮고 진입이 쉬운 대중성을 가지고 있다. 영화제의 역사가 쌓여갈수록 지역 영화인들의 숙련도와 전문성이 발전하게 되고 지역 영화제 역시 그에 걸맞게 상영 프로그램들과 교류 및 네트워크, 제작지원, 경쟁분야 등을 발전시키게 된다. 그 성과를 발판으로 최근 3년 광주독립영화협회의 회원수가 10% 이상 성장하고 있고 이러한 네트워크 발굴 기회가 창작기회로 확대되어 매년 광주에서 창작되는 영화 편수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지역영화와 지역 영화제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이 이처럼 많음에도 불구하고 2024년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역영화 예산 삭감과 광주시의 영화전담 공적기구의 부재 등으로 인해 우리가 앞으로 풀어가야 할 과제들이 많다. 특히 제작지원 제도들이 마련되어 있지만 지역을 뿌리로 성장하고 살아가는 청년 및 지역 감독들이 장편 제작 기회를 마련하는 길은 여전히 천장이 높다.

6월 27일부터 30일까지 광주극장과 광주독립영화관GIFT에서 13회 광주독립영화제 ‘영화로운 불빛을 썬텐을’을 슬로건으로 30여편의 지역 기반 신작들이 상영된다. 지역 영화인들이 광주 시민들을 만나는 방법이다. 광주 지역 영화와 영화제, 예술극장 및 독립영화관이 생존의 열쇠를 열어왔던 방법은 언제나 시민들의 관심과 사랑이었다. 올해 지역 영화가 새로운 활로를 모색할 수 있도록 객석에서 한 명의 시민이라도 더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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