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환초(남태평양군도)에 끌려간 삼촌 제사도 안지내고 기다렸는데”
2024년 06월 09일(일) 20:40
강제동원 80년만에 사망소식 접한 유족 “진실규명 제대로 해야”

지난 8일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과 밀리환초 일제강제노역 일본 연구가 다케우치씨가 유족 김귀남(87)씨를 만났다. 김씨의 삼촌 김기만씨는 ‘밀리환초 학살 사건’의 피해자로 확인됐다./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밀리환초에서 잘 살고 있는 줄만 알았습니다.”

일제에 의해 남태평양군도에 강제로 끌려간 김기만(담양·1945년 사망)씨의 사망소식이 80여년만에 유족에게 전해졌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시민모임)과 밀리환초 일제강제노역 일본 연구가 다케우치씨는 유족 김귀남(담양·87·사진)씨를 지난 8일 만났다. 김씨는 삼촌인 기만씨의 사망소식을 전해 들고 말을 잇지 못했다.

김씨는 시민모임이 밀리환초 학살사건<6월 5일자 광주일보 7면> 희생자 유족을 찾는다는 소식을 접하고 할머니의 생전 이야기가 생각나 시민모임에 연락을 취했다.

다케우치씨의 연구 결과 밀리환초에서 학살된 조선인은 담양출신 25명을 포함해 모두 55명이었는데, 김씨의 삼촌은 이 중 한 명으로 확인됐다.

제 4시설부 밀리환초·강제동원 사망자 명부의 426번째 ‘金山基萬’이 김씨의 삼촌이라는 것이다. 명부에는 기만씨는 1923년 생으로 ‘1945년 3월18일 사망(자사·自死)’으로 기록돼 있다.

기만씨의 부친은 김광오씨로 기록돼 있는 점에서 김씨의 삼촌이 맞다는 것이다.

김씨는 할머니로 부터 삼촌인 기만씨가 19세 나이에 3~4년이면 돌아올 거라며 일본군에 의해 ‘남양군도(밀리환초가 위치한 마셜 제도 일대의 당시 명칭)’로 강제동원됐고 들었다.

초반 2년간은 종종 편지와 약간의 돈을 보내왔지만 그나마도 곧 끊겼다. 해방 이후 강제동원됐던 사람들이 속속 돌아왔지만 기만씨와 밀리환초로 갔던 이들만은 감감 무소식이었다.

김씨의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막내아들 기만씨가 살아있다고 믿었다고 했다.

김씨의 할머니는 “기만이가 왜 안올까”라면서 “(남양군도가) 살기 좋아서 거기에서 결혼해서 사는가 보다”라고 입버릇 처럼 말했다고 한다. 이에 김씨 가족은 삼촌을 사망신고하지 않고 제사도 지내지 않았다고 한다.

김씨는 “간 사람만 있고 돌아온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돌아온 사람이 없으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채 시간이 지나 점차 잊혀졌다”고 말했다.

이국언 시민모임 이사장은 “김기만씨 유가족과의 만남이 밀리환초 학살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의 단초가 될 것”이라며 “유가족을 찾아 피해자들이 어떻게 동원됐는지 추가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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