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시(詩) 초대 하기 - 문길섭 시암송국민운동본부 대표
2024년 06월 04일(화) 22:30 가가
지난 부처님 오신 날(5월 15일) 오후, 광주에 온 이해인 수녀님이 충장로 클래식 음악감상실 ‘베토벤’에서 여러 팬들과 함께 기다리신다고 하기에 갔다. 10여 명이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나도 수녀님 옆자리에 앉아 담소에 끼어들었다.
수녀님과의 인연을 궁금해 하는 분이 있어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일화를 들려 드렸다. 처음 수녀님께 관심을 가진 것은 프랑스 유학 시절이었다. 파리에서 지낼 때 우리 모국어가 그리워 한국문화원 도서관에서 몇 권의 우리 말 책을 빌려왔다. 그 중 한 권이 수녀님의 첫 산문집 ‘두레박’이었다. 숙소에 돌아와서 산문집을 읽기 시작했다. 단순하고 투명하고 따뜻한 글을 읽으면서 고향에 돌아온 듯 행복감에 젖어 들었다. 그리고 나서 귀국 후 광주의 어느 성당에서 수녀님의 강연이 있다기에 기대를 가지고 찾아갔다. 당시 40대 후반쯤 되셨을 수녀님이 ‘좋은 말 쓰기’에 대한 강연을 하셨다. 난 감명 깊게 듣고 돌아올 때는 사인도 받았다. 몇 달 뒤 우정사업본부 편지쓰기 공모에 수녀님에 대한 고마움을 담은 편지를 투고했고 입상했다. 나중에 원고를 수녀원에 보냈더니 반가워하시며 답장도 보내 주셨다. 나중에 광주 오는 길에 ‘베토벤’ 음악감상실에서 만나자고 연락을 주셔서 첫 만남을 가졌고 지금까지 교분이 이어졌다. 수녀님은 내 첫 저서인 칼럼집 ‘흔들릴 때마다 시를 외웠다’와 ‘명시 50편 시선집’에 추천 글을 써주시고 내 시운동에 힘을 보태 주셨다.
이 이야기 끝에 한 달에 한 번 꼴로 가서 강의하는 교도소에서 있었던 일을 소개했다. 그날은 여자 재소자 대상 강의였다. PPT로 소개하는 여러 좋은 시들 중 수녀님의 ‘어떤 결심’이란 시가 있었다. 오래전 수녀님이 투병 중에 쓰셨다는 이 시가 수녀원 ‘해인글방’ 벽에 인상 깊게 걸려 있었고 내용도 따뜻하고 위로가 되어 종종 소개하곤 했다. 이 시에 대한 얘기를 하고 화면을 넘기는데 재소자 한 분이 화면을 뒤로 돌려달라고 하였다. 돌렸더니 그 분은 그 시를 노트에 베끼기 시작했다. 난 강의를 멈추고 필사가 끝나길 기다렸다. 이 시를 소개한다.
“마음이 많이 아플 때/ 꼭 하루씩만 살기로 했다/ 몸이 많이 아플 때/ 꼭 한순간씩만 살기로 했다/ 고마운 것만 기억하고/ 사랑한 것만 떠올리며/ 어떤 경우에도/ 남의 탓을 안 하기로 했다/ 고요히 나 자신만/ 들여다보기로 했다/ 내게 주어진 하루만이/ 전 생애라고 생각하니/ 저만치서 행복이/ 웃으며 걸어왔다.”
‘베토벤’에서 수녀님과 참석자들의 자유로운 환담 후, 수녀님이 시를 한 편씩 낭독하길 권했다. 돌아가며 수녀님의 최근 신간들 중에서 마음에 와 닿는 시 한 편을 골라 낭독했다. 자기 얘기가 실렸다고 생각했는지 어느 낭독자는 읽다가 울먹이기도 했다. 수녀님의 시에 위로가 많이 담겨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책에 있는 시를 골라 낭독하는 대신 말에 관한 시 한 편을 암송했다.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정말 행복해서/ 마음에 맑은 샘이 흐르고// 고맙다고 말하는 동안은/ 고마운 마음 새로이 솟아올라/ 내 마음도 더욱 순해지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잠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마음 한 자락이 환해지고// 좋은 말이 나를 키우는 걸/ 나는 말하면서/ 다시 알지” (‘나를 키우는 말’)
언어오염이 갈수록 심해지는 이 시대에 국민 모두가 이 시 한 편만큼은 외우고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 외우기 힘들면 “행복하다, 고맙다, 아름답다” 이 세 마디만이라도 하루에 여러 번 되풀이하면 좋겠다. 또 ‘행.고.아’를 건배사로 쓰면 어떨까 싶다. 우리의 일상 만남에서도 시가 한 자리를 차지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마음이 많이 아플 때/ 꼭 하루씩만 살기로 했다/ 몸이 많이 아플 때/ 꼭 한순간씩만 살기로 했다/ 고마운 것만 기억하고/ 사랑한 것만 떠올리며/ 어떤 경우에도/ 남의 탓을 안 하기로 했다/ 고요히 나 자신만/ 들여다보기로 했다/ 내게 주어진 하루만이/ 전 생애라고 생각하니/ 저만치서 행복이/ 웃으며 걸어왔다.”
‘베토벤’에서 수녀님과 참석자들의 자유로운 환담 후, 수녀님이 시를 한 편씩 낭독하길 권했다. 돌아가며 수녀님의 최근 신간들 중에서 마음에 와 닿는 시 한 편을 골라 낭독했다. 자기 얘기가 실렸다고 생각했는지 어느 낭독자는 읽다가 울먹이기도 했다. 수녀님의 시에 위로가 많이 담겨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책에 있는 시를 골라 낭독하는 대신 말에 관한 시 한 편을 암송했다.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정말 행복해서/ 마음에 맑은 샘이 흐르고// 고맙다고 말하는 동안은/ 고마운 마음 새로이 솟아올라/ 내 마음도 더욱 순해지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잠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마음 한 자락이 환해지고// 좋은 말이 나를 키우는 걸/ 나는 말하면서/ 다시 알지” (‘나를 키우는 말’)
언어오염이 갈수록 심해지는 이 시대에 국민 모두가 이 시 한 편만큼은 외우고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 외우기 힘들면 “행복하다, 고맙다, 아름답다” 이 세 마디만이라도 하루에 여러 번 되풀이하면 좋겠다. 또 ‘행.고.아’를 건배사로 쓰면 어떨까 싶다. 우리의 일상 만남에서도 시가 한 자리를 차지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